▲<꽃피는 용산> 표지
서해문집
끔찍이도 아끼던 아홉 살 딸과 생이별한 아빠가 있다. 아빠는 3년 9개월간 감옥에 있었다. 아빠는 억울해서 자살을 생각했다. 딸은 아빠의 부재 때문에 우울증 치료를 받아야 한다. 학교에 가는 시간을 빼고는 늘 함께 있던 부녀였다.
너무 억울해서 죽고 싶었던 아빠는 딸과 아내를 떠올리며 버티기로 했다. 그리고 우울증을 앓는 딸을 위해 만화를 그려 보냈다. 그렇게 1345일간 감옥의 아빠와 바깥의 딸을 잇는 만화편지는 360쪽짜리 책이 되었다.
김재호의 <꽃피는 용산>은 '딸에게 보내는 편지'라는 부제가 달린 만화책이다. 저자는 1984년부터 용산에 터를 잡고 진보당이라는 금은방을 운영했다. 2007년 도시정비 사업은 그의 운명을 바꿔놓았다.
23년간 일터이자 삶 터였던 가게가 제대로 된 보상도 없이 철거될 위기에 처하자 그는 남일당 옥상에 올라가 시위했다. 경찰은 남일당에 있는 시위대를 진압하기 위해 특공대를 투입한다. 이 과잉진압은 대참사를 낳는다. 그렇다. 바로 용산참사다. 이때 철거민 다섯 명과 경찰특공대원 한 명이 목숨을 잃는다. 김재호는 그 아비규환의 생존자다.
슬픔을 삭이고 삭여서 얻은 명랑함 저자가 끔찍한 사건을 겪고 옥살이를 했다고 했지만, <꽃피는 용산>은 그 참혹함과 억울함을 삭여 낸 명랑함이 주조를 이룬다. 더러 용산참사와 관련된 억울한 심정을 토로하기도 하고, 옥살이의 어려움을 호소하기도 하지만 그런 부분은 매우 적다. <꽃피는 용산>은 짧은 에피소드가 만화 한 편을 이루는 일종의 만화 콩트집인데 대부분은 초등학생인 저자의 딸이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내용이다.
<꽃피는 용산>이란 제목이 암시하는 바와 같이 저자는 노총각으로 아내를 만나 늦둥이 딸을 얻은 뒤 오순도순 살던 시절을 그리워한다. 가족과 보냈던 소소한 일상이 감옥에 있는 아빠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한 추억이 되었다. 그 절절한 노스탤지어와 딸에 대한 사랑이 그림이나 만화를 따로 배우지 못한 저자에게 만화를 그릴 수 있는 힘을 주었다. 아빠를 끔찍이 따르던 딸이 우울증을 앓기 시작했을 때, 저자는 얼마나 애가 탔을까. 그 애타는 부정이 <꽃피는 용산> 어느 페이지를 펴보아도 절절하게 느껴진다.
이 책은 총 6부로 구성되어 있다. 프롤로그에서는 용산참사가 왜 벌어졌는지, 어떻게 저자가 감옥에서 만화를 그리게 되었는지 개괄적으로 알려준다. '법 없이도 살 사람'이라는 평을 듣던 저자가 순식간에 '폭도'가 되고 '도심 테러리스트'가 되어 감옥에 갔을 때, 당사자는 물론이고 가족들이 얼마나 충격을 받았는지 우리에게 생생하게 들려준다.
첫 번째 이야기 '우리가 살던 용산'은 저자가 어떻게 아내와 만나서 결혼했는지, 딸 혜연이가 태어나기까지 어떤 일이 있었는지, 그의 금은방이 가족에게 어떤 의미인지 가슴 뭉클하게 전한다.
두 번째 이야기 '아빠의 편지'는 소제목 그대로 감옥에서 아빠가 딸에게 전하는 여러 이야기를 담고 있다. 엄마 말씀 잘 들어라, 학교 공부 열심히 해라, 너무 살찌면 안 되니까 과식하지 말라 등등. 평범한 아빠가 딸에게 해주는 이야기들이다. 이 평범한 이야기가 감동적인 것은 그가 구치소에 들어가자마자 느낀 절망감을 극복하고 아빠로서 해야 할 일을 찾았기 때문이다. 그는 딸이 면회 오면 대화를 통해, 사정이 생겨 면회를 오지 못하면 만화 편지로 부녀 사이의 끈을 놓치지 않았다.
감옥에 있는 아빠, 우울증을 앓는 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