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옥에 있는 아빠, 우울증 앓는 딸... 만화가 살렸다

[서평] 용산참사 생존자 김재호의 <꽃피는 용산>

등록 2013.03.05 15:31수정 2013.03.05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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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과 생이별한 아빠가 그린 만화

 <꽃피는 용산> 표지
<꽃피는 용산> 표지서해문집
끔찍이도 아끼던 아홉 살 딸과 생이별한 아빠가 있다. 아빠는 3년 9개월간 감옥에 있었다. 아빠는 억울해서 자살을 생각했다. 딸은 아빠의 부재 때문에 우울증 치료를 받아야 한다. 학교에 가는 시간을 빼고는 늘 함께 있던 부녀였다.


너무 억울해서 죽고 싶었던 아빠는 딸과 아내를 떠올리며 버티기로 했다. 그리고 우울증을 앓는 딸을 위해 만화를 그려 보냈다. 그렇게 1345일간 감옥의 아빠와 바깥의 딸을 잇는 만화편지는 360쪽짜리 책이 되었다.

김재호의 <꽃피는 용산>은 '딸에게 보내는 편지'라는 부제가 달린 만화책이다. 저자는 1984년부터 용산에 터를 잡고 진보당이라는 금은방을 운영했다. 2007년 도시정비 사업은 그의 운명을 바꿔놓았다.

23년간 일터이자 삶 터였던 가게가 제대로 된 보상도 없이 철거될 위기에 처하자 그는 남일당 옥상에 올라가 시위했다. 경찰은 남일당에 있는 시위대를 진압하기 위해 특공대를 투입한다. 이 과잉진압은 대참사를 낳는다. 그렇다. 바로 용산참사다. 이때 철거민 다섯 명과 경찰특공대원 한 명이 목숨을 잃는다. 김재호는 그 아비규환의 생존자다.

슬픔을 삭이고 삭여서 얻은 명랑함

저자가 끔찍한 사건을 겪고 옥살이를 했다고 했지만, <꽃피는 용산>은 그 참혹함과 억울함을 삭여 낸 명랑함이 주조를 이룬다. 더러 용산참사와 관련된 억울한 심정을 토로하기도 하고, 옥살이의 어려움을 호소하기도 하지만 그런 부분은 매우 적다. <꽃피는 용산>은 짧은 에피소드가 만화 한 편을 이루는 일종의 만화 콩트집인데 대부분은 초등학생인 저자의 딸이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내용이다.


<꽃피는 용산>이란 제목이 암시하는 바와 같이 저자는 노총각으로 아내를 만나 늦둥이 딸을 얻은 뒤 오순도순 살던 시절을 그리워한다. 가족과 보냈던 소소한 일상이 감옥에 있는 아빠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한 추억이 되었다. 그 절절한 노스탤지어와 딸에 대한 사랑이 그림이나 만화를 따로 배우지 못한 저자에게 만화를 그릴 수 있는 힘을 주었다. 아빠를 끔찍이 따르던 딸이 우울증을 앓기 시작했을 때, 저자는 얼마나 애가 탔을까. 그 애타는 부정이 <꽃피는 용산> 어느 페이지를 펴보아도 절절하게 느껴진다.

이 책은 총 6부로 구성되어 있다. 프롤로그에서는 용산참사가 왜 벌어졌는지, 어떻게 저자가 감옥에서 만화를 그리게 되었는지 개괄적으로 알려준다. '법 없이도 살 사람'이라는 평을 듣던 저자가 순식간에 '폭도'가 되고 '도심 테러리스트'가 되어 감옥에 갔을 때, 당사자는 물론이고 가족들이 얼마나 충격을 받았는지 우리에게 생생하게 들려준다.


첫 번째 이야기 '우리가 살던 용산'은 저자가 어떻게 아내와 만나서 결혼했는지, 딸 혜연이가 태어나기까지 어떤 일이 있었는지, 그의 금은방이 가족에게 어떤 의미인지 가슴 뭉클하게 전한다.

두 번째 이야기 '아빠의 편지'는 소제목 그대로 감옥에서 아빠가 딸에게 전하는 여러 이야기를 담고 있다. 엄마 말씀 잘 들어라, 학교 공부 열심히 해라, 너무 살찌면 안 되니까 과식하지 말라 등등. 평범한 아빠가 딸에게 해주는 이야기들이다. 이 평범한 이야기가 감동적인 것은 그가 구치소에 들어가자마자 느낀 절망감을 극복하고 아빠로서 해야 할 일을 찾았기 때문이다. 그는 딸이 면회 오면 대화를 통해, 사정이 생겨 면회를 오지 못하면 만화 편지로 부녀 사이의 끈을 놓치지 않았다.

감옥에 있는 아빠, 우울증을 앓는 딸

 아빠가 보고 싶은 딸
아빠가 보고 싶은 딸서해문집

세 번째 이야기 '혜연이의 봄, 여름, 가을, 겨울'은 아내에게 들은 딸의 성장기를 부재중인 아빠가 그린 것이다. 특히 이 장에 있는 '10분은 너무 짧아요'는 읽는 이를 가슴 아프게 한다. 아버지를 만나러 전철을 타고 버스를 타고 간 구치소에서 부녀가 얘기할 수 있는 시간은 고작 10분이다. 그런데 남편과 상의할 일이 있던 아내는 딸에게 조금만 기다리라고 한다. 시간은 흐르고 결국 딸은 아빠와 한마디도 나누지 못한 채 면회시간이 끝나버린다.

네 번째 이야기 '아내, 그리고 혜연이 엄마'는 아내를 그리워하는 마음과 남편이 부재한 아내의 심경을 담고 있다. 아빠가 없고, 남편이 없지만, 아내와 딸은 서로 도와가며 꿋꿋하게 살아간다. 이 장에는 딸이 우울증을 앓게 되자 병원에 데리고 다니는 엄마의 심정과 그 사실을 전해 받고 감옥 안에서 우는 아빠의 안타까움이 묘사되어 있다. 자고 일어나면 옆에 있을 것만 같은 아빠가 곁에 없는 현실을 딸은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것이다.

다섯 번째 이야기 '세상의 모든 가족'은 저자의 가족이 아니라 가슴이 따뜻해지는 세상의 모든 가족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특히 이 장에는 '나눔'이라는 아름다운 에피소드가 나온다. 젊은 여자가 땅바닥에 떨어진 은행을 줍고 있는데 한 노인이 곁에 와서 은행을 따라 줍는다. 젊은 여자는 노인이 자기보다 많이 주울세라 열을 올려서 은행을 줍는다. 그런데 은행을 다 줍자 노인이 여자에게 자신이 주운 은행을 준다. 요긴하게 필요하니까 그렇게 줍는 모양이라며. 젊은 여자는 부끄러움을 느낀다.  

어디에서도 누구에게도 만화 그리는 법을 배우지 않았지만, 김재호의 만화는 딸을 향한 사랑이 듬뿍 담겨 있는데다가 '나눔'에서 볼 수 있는 숨은 재능이 더해져서 읽어볼 만한 가치가 충분하다. 마음이 따뜻해지는 만화를 찾는 분이라면 권하고 싶다. 특히 남일당 옥상에 올라가 시위하던 철거민을 도심의 테러리스트, 폭도라 매도한 사람들은 꼭 <꽃피는 용산>을 읽어야 한다. 그들이야말로 차가운 마음을 조금이라도 녹여야 하니까 말이다.
덧붙이는 글 김재호, <꽃피는 용산>, 서해문집, 2013.

꽃피는 용산 - 딸에게 보낸 편지

김재호 지음,
서해문집, 2013


#김재호 #꽃피는 용산 #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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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 씁니다. 문피아에 '천재 아기는 전생을 다 기억함'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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