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산의 어느 대폿집 냉장고에 붙여놓은 영화 <전쟁과 평화> 포스터
조종안
1950년대 극장들은 신문광고, 거리 선전, 삐라 살포 등 홍보를 다양하게 했다. 그중 비용이 가장 저렴하면서도 효과가 컸던 홍보는 천연색으로 인쇄된 포스터였다. 화려하고 멋진 남녀 배우 모습과 액션과 스릴 넘치는 장면이 인쇄된 영화 포스터는 남녀 고등학생들이 보관하고 싶어 하는 물건 중 하나였다.
당시 고등학생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배우나 장면이 담긴 포스터를 공부방에 걸어놓은 것을 자랑으로 여겼다. 대부분 학생은 외국의 미남미녀 배우를 좋아했는데, 단골 빵집이나 동네 가게 주인에게 부탁하거나 슬쩍(?)해서 반공영화의 전쟁 장면이나 김지미·최무룡 부부가 다정하게 포즈를 취하고 있는 포스터를 걸어놓는 학생도 있었다.
상영을 예고하는 영화 포스터는 사람이 많이 드나드는 대중음식점이나 다방, 당구장, 제과점, 이발소, 미장원, 자전거포, 동네 빵집, 재래시장 입구, 창고 벽 등에 붙였는데 주인과 언쟁이 일어나기도 했다. 어쩌다 포스터를 욕심낸 손님이 포스터를 몰래 떼어가기 때문이었다.
형님과 함께 사용하던 내 공부방 벽에도 나탈리 우드·워런 비티 주연의 <초원의 빛> 영화 포스터가 몇 년 동안 걸려 있었다. 고등학교 3학년이던 형님이 어디선가 구해왔는데, 남녀 배우가 포옹하는 장면이어서 아버지에게 혼나는 바람에 한동안 떼었다가 고개를 들어야 쳐다볼 수 있도록 천장 바로 아래에 붙이는 촌극을 빚기도 했다.
영화 마니아들에게 인기 최고였던 '할인권'영화 포스터는 세 사람이 한 팀을 이뤄 붙이고 다녔다. 그중 우락부락하게 생긴 스무 살 남짓 청년은 붙이는 장소를 알려주는 팀장, 17~18세 정도의 소년은 포스터를 벽이나 유리창에 붙이는 행동대원, 13~14세의 코흘리개 꼬마는 풀이 담긴 양동이를 들고 형들을 따라다녔다. 팀장이 꼬마에게 굼뜨다고 욕하면서 신경질 낼 때는 안쓰럽게 보이기도.
다방이나 식당에 영화 포스터를 붙이려면 주인에게 허락을 받아야 했다. 그럼에도 포스터를 붙이러 다니는 청년은 물론 꼬마도 인기가 좋았다. 왜냐면 그들이 아무 때나 사용할 수 있는 '할인권'을 한주먹씩 쥐고 다니면서 포스터를 붙인 가게 주인들에게 2~3매씩 나눠주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영화광들은 꼬마에게 빵을 사주면서 할인권을 얻었다.
할인권을 '반액권', '포스터 권' 등으로도 불리었는데, 극장 매표구에서 입장권을 구매할 때 입장료의 50%를 할인해주었다. 그러니 인기가 좋을 수밖에. 그러나 영화관을 찾는 사람이 늘고, 이용자가 많아지자 극장은 프로를 한정해서 20%~30%만 감해주었다. 처음엔 사람들이 불만을 터뜨렸지만 할인권이 사라지는 날까지 그 인기는 식지 않았다.
요즘엔 여드름이 덕지덕지 했던 사춘기 시절 가슴을 뜨겁게 달궈주었던 포스터도 보기 어렵게 되었고, 한 장이라도 더 주우려고 발이 닿도록 뛰어다니던 삐라도, 아버지 단골 이발소로 심부름 다니며 얻어오던 할인권도 구경조차 할 수 없게 되었다. 좋은 세상이 되어서 그런지, 헷갈릴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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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8월부터 '후광김대중 마을'(다움카페)을 운영해오고 있습니다. 정치와 언론, 예술에 관심이 많으며 올리는 글이 따뜻한 사회가 조성되는 데 미력이나마 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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