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땐 중고가 불티... 누가 그래?"

[현장] 소비 부진 '직격탄' 맞은 재활용센터 가봤더니

등록 2013.03.24 11:52수정 2013.03.24 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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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새 물건을 사야 쓰던 게 중고로 나오지. 경기가 안 좋으니까 지금 중고물품 사가는 사람도 줄고 팔겠다는 사람도 말라버렸어."

22일 서울 종로구의 한 재활용센터. 반색하며 반기던 점장 정 아무개씨는 기자임을 밝히자 "손님은 안 오고 기자들만 뻔질나게 온다"고 중얼거렸다. '손님이 그렇게 없느냐'고 묻자 "중고 장사 20년인데 체감경기가 IMF 때보다 더 안 좋다"는 답이 되돌아온다.

긴 경기 불황에 가계가 지갑을 닫으면서 서민 생활용품을 취급하는 중고품 재활용센터도 울상을 짓고 있다. 새 제품 소비가 급격히 줄면서 중산층과 서민 사이를 순환하던 2~3년 된 중고 제품들도 흐름이 막혔기 때문이다.

22일 여신금융협회에 따르면 지난 2월 신용카드 승인 금액 증가율은 전년동월대비 3.4%를 기록했다. 세계 금융위기로 소비심리가 위축됐던 2009년 1월보다도 낮은 수치다. 특히 가전제품, 일반병원, 공과금 등 생활밀접업종의 증가율은 2.8%로 더 낮았다. 가구당 월평균 소비지출도 지난해 3, 4분기 연속 2% 아래로 떨어진 상태다.  

"새 제품 사는 사람 없으니 중고품도 안 나와"

 22일 서울 종로구 재활용센터 매장.
22일 서울 종로구 재활용센터 매장. 김동환

정씨가 운영하는 재활용센터의 주 고객층은 서민과 중산층. 물품 비중은 인근에 사무실이 많다 보니 사무용 집기 쪽이 높다. 80평 크기의 매장에는 컴퓨터, 가스레인지, 냉장고, 책상, 의자, 소파 등 생활 중고품들이 빼곡했지만, 정씨는 "사 가는 사람도 없고 내놓는 사람도 없으니 있던 물건들이 있는 것"이라면서 "중고 물품은 회전이 중요한데 회전이 안 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요즘 경기도 그렇고 다들 어렵잖아. 그러니까 사람들이 물건을 안 바꾸는 거야. 예전에는 아파트 주민들이 이사 갈 때 쓸 수 있는 물건들 놓고 가고, 새로 사고 그랬거든. 그런데 요즘에는 아파트 재활용품장 가면 그런 걸 찾아볼 수가 없어."


종로구청과 연계되어 중고물품 수급이 비교적 쉬운 재활용센터지만 소비 위축에는 방법이 없었다. 2년 전에는 8명이 매일 바쁘게 움직일 만큼 일거리가 많았지만, 긴 불황을 거치며 사정이 달라졌다. 현재 이 업체에서 일하는 직원은 5명. 매출이 2년 내내 하향곡선을 그리면서 2/3 수준으로 줄어들자 직원 숫자도 그렇게 됐다.

정씨는 "중고 물품 사 와서 깨끗하게 손질하고 수리해서 내놓지만, 간혹 오는 손님들도 쉽게 사려고 하지 않는다"고 털어놨다. 그는 "정가 270만 원짜리 소파를 말끔하게 손봐서 55만 원에 내놨는데, 할머니 한 분이 다섯 번 보러 왔다가 결국 안 사고 그냥 돌아가더라"면서 "결국 이런 곳에 와서 물건 사는 사람들은 서민들인데 경기 회복 전까지는 계속 이럴 것 같다"고 말했다.


"새 가격 5%에 팔아도... 3년 만에 매출 1/3로 줄어들어"

 22일 서울 신수동의 마포구 재활용센터 매장. 다수의 세탁기와 에어콘, TV등 생활가전 제품들과 함께 복사기, 탁자 등 사무용품들도 보인다.
22일 서울 신수동의 마포구 재활용센터 매장. 다수의 세탁기와 에어콘, TV등 생활가전 제품들과 함께 복사기, 탁자 등 사무용품들도 보인다. 김동환

다른 재활용센터도 사정은 비슷했다. 마포구 신수동에서 재활용센터를 운영하는 서현철씨는 "3년 만에 매출이 1/3 수준으로 줄어들었다"고 말했다. 500평 규모의 매장에 현재 직원 수는 4명. 서씨는 "얼마나 장사가 안되는지 알겠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흔히 불황이면 중고 시장이 활성화되는 줄 알던데 전혀 그렇지 않다"고 덧붙였다.

서씨의 점포에는 세탁기, TV, 냉장고, 소형 에어컨 등 생활가전 제품이 다수다. 인근에 대학교들이 있어 자취 인구가 많은 까닭이다. 이곳에서 물건을 사 가면 6개월 동안 A/S(사후 책임)도 부담한다. 그러나 불황은 대학가 자취 촌도 마찬가지였다.

서씨는 "원래 매년 새 학기가 시작되는 2월 말에서 3월 초는 '대목'인데 올해는 새 학기 같지도 않게 그냥 지나가 버렸다"면서 "학생들이야 그렇다쳐도 일반 주택가도 많은데 뭘 새로 사는 사람이 없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얼마나 사람들이 쓰던 물건을 계속 쓰냐면요. 지금 LED TV 나온 지 2년 됐어요. 그런데 중고 재활용센터에 LCD TV나 PDP TV가 안 나와요. LCD나 PDP 전기 많이 먹고 열난다고 사람들이 싫어하거든. 그런데 이 사람들이 새 걸 안 사고 그걸 계속 쓴다니까."

그는 "우리 매장 물품은 새것보다 40% 이하 가격이고 아주 저렴한 것은 새 가격 5%대인 물건도 있는데 사 가는 사람이 거의 없다"면서 "7년 장사 중에 지금처럼 안 좋을 때는 없었다"고 덧붙였다.
#재활용센터 #소비부진 #민간소비 #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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