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에 역행하는 경범죄처벌법 폐지하라"3월 22일부터 과다노출을 하거나 무전취식, 구걸행위, 호객행위를 하면 처벌하는 '경범죄처벌법 시행령 개정안'이 시행되는 가운데, 3월14일 오전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홍성수 숙명여대 법학과 교수가 경범죄처벌법은 일제시대부터 계승한 권위적 시대의 개악이라며 국민의 삶을 규제하고 형사처벌 할 수 있다며 법 폐지를 촉구하고 있다. 이날 이들은 법률 조항의 모호성과 추상성 때문에 법률로서 자격미달이라는 평가를 받아온 경범죄처벌법을 경찰이 국민의 안전을 빙자해 자의적 판단으로 사법처리를 할 수 있다며 경범죄처벌법 폐지를 요구했다.
유성호
하지만 B씨의 행위를 형법이 아니라 개정된 경범죄처벌법의 잣대로 보면 유죄가 될 수도 있다. 경범죄처벌법의 '과다노출' 조항을 그대로 옮겨본다.
'여러 사람의 눈에 뜨이는 곳에서 공공연하게 알몸을 지나치게 내놓거나 가려야 할 곳을 내놓아 다른 사람에게 부끄러운 느낌이나 불쾌감을 준 사람.'그런데 언뜻 보기에도 의문이 샘물처럼 솟아오른다. '알몸'은 말 그대로 '아무것도 입지 않은 몸'을 뜻하는데 '지나치게' 내놓는다는 건 무슨 말인가. 또 사람의 몸 중에서 '가려야 할 곳'은 어디까지일까. '부끄러운 느낌이나 불쾌감'은 성적 수치심과는 어떻게 다른가.
또 다른 예를 들어보자. 한 여성이 아래로는 팬티가 보일 정도로 짧은 치마에, 위로는 '노브라'에 속까지 훤히 비치는 윗옷 하나를 걸치고 돌아다닌다. 그야말로 아찔하다. 이건 과다노출일까 아닐까. 솔직히 잘 모르겠다. 변호사에게도 물어봐도 마찬가지일 터이다.
확실한 건 단속경찰의 판단에 따라 범죄가 될 수도 있고, 안될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앞서 소개한 B씨의 사례처럼 법정에서 무죄를 받을 만한 사안도, 재판 대신 경찰의 단속을 받게 되면 처벌할 수 있다.
개정된 경범죄처벌법과 시행령이 3월 22일부터 개정되어 시행 중이다. 어떤 이들은 경찰이 기초질서 단속한다는 데 불편해도 좀 참고 협조해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경범죄처벌법은 단순한 불편을 넘어서는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
일제 경찰범처벌규칙 모태로 1954년 제정 경범죄처벌법의 역사부터 살펴보자. 일제 강점기 경찰범처벌규칙을 이어받아 만들어진 경범죄처벌법은 1954년 국회에서 만들어졌다. 처음에는 '일정한 주거를 가지지 않고 제방에 배회하는 자', '적, 주소, 성명, 연령, 직업 등을 사칭하고 투숙 또는 승선한 자', '공공장소에서 난폭한 언동으로써 공중을 소란하게 한 자' 등 45개 경범죄로 시작했다. 그러다가 10여 차례 법이 개정되었는데 금연장소 흡연, 무임승차, 무전취식, 비밀춤 교습 및 장소제공, 새치기, 암표매매 등까지 포함되면서 경범죄는 한때 58개까지 늘어났다.
현재는 금연장소 흡연, 정신병자 감호소홀, 비밀춤교습 등이 제외되어 총 45개가 처벌 대상이다. 주요 내용으로는 빈집 침입, 거짓신고, 노상방뇨, 자연훼손, 구걸행위, 인근소란, 물품강매·호객행위, 공무원 원조불응, 장난전화, 과다노출, 지문채취 불응 등이 있다. 이런 경범죄를 저지르면 10만 원 이하의 벌금, 구류 또는 과료의 형으로 처벌한다.
이들보다 처벌이 좀 더 무거운 경범죄도 생겼다. 경제적 부당이득을 목적으로 하는 출판물의 부당게재, 거짓광고, 업무방해, 암표매매 등은 벌금 액수를 20만 원까지 높였다. 또한, 관공서에서 술주정한 경우는 구류나 과료 처벌 외에 최고 벌금 60 만원형까지 처벌할 수 있다. 그렇다면 뭐가 문제란 말인가.
[문제①] 모호한 법조항 ... 명확성 원칙과 거리감첫째 모호한 법조항이다. 형법의 기본원칙 중 하나가 죄형법정주의다. 어떤 행위가 범죄인지, 그 범죄를 어떻게 처벌할지를 미리 법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원칙이다. 국가가 형벌권을 남용하거나 자의적으로 행사하지 못하게 하고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중요한 내용 중 하나가 명확성의 원칙인데, 어떤 행위가 죄가 되는지 쉽게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어린이 출입금지'라는 말보다는 '15세 미만 출입금지'가 법조문으로는 명확한 표현이 된다.
그렇다면 경범죄는 어떤가. 명확성과는 거리가 있는 조항이 적지 않다. 몇 가지만 소개한다(강조 표시는 기자가 했음).
[과다노출] 여러 사람의 눈에 뜨이는 곳에서 공공연하게 알몸을 지나치게 내놓거나 가려야 할 곳을 내놓아 다른 사람에게 부끄러운 느낌이나 불쾌감을 준 사람[업무방해] 못된 장난 등으로 다른 사람, 단체 또는 공무수행중인 자의 업무를 방해한 사람[무단출입] 출입이 금지된 구역이나 시설 또는 장소에 정당한 이유 없이 들어간 사람 [불안감조성] 정당한 이유 없이 길을 막거나 시비를 걸거나 … 몹시 거칠게 겁을 주는 말이나 행동으로 다른 사람을 불안하게 하거나 귀찮고 불쾌하게 한 사람 또는 … 공공장소에서 고의로 험악한 문신을 드러내어 다른 사람에게 혐오감을 준 사람경범죄처벌법에는 '정당한 이유 없이'가 10번이나 나온다. 그 밖에도 '몹시', '함부로', '지나치게'와 같이 추상적인 단어들이 등장한다. 경범죄도 엄연히 국가가 처벌하는 범죄이다. 누가 보더라도 알기 쉽고 명확해야 한다. 죄형법정주의의 원칙에 비춰볼 때 경범죄처벌법은 그다지 좋은 법은 아니다.
[문제②] 경범죄 상당수는 형법으로도 처벌 가능 둘째, 경범죄 중 상당수는 형법과 겹치거나 형법으로 충분히 처벌할 수 있다. 몇 가지만 보자. 거짓신고(있지 아니한 범죄나 재해 사실을 공무원에게 거짓으로 신고한 사람)는 사안에 따라 무고죄나 공무집행방해에 해당할 수 있다. 최근 112 허위신고를 한 시민에게 법원은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죄를 적용, 징역형을 선고한 사례도 있다.
또한, 무임승차나 무전취식은 판례로 볼 때 사기죄에 해당하기 때문에 굳이 경범죄로 분류할 까닭이 없다. 지속적 괴롭힘(스토킹)도 범칙금 8만 원을 내면 되는 가벼운 사안으로 여길 우려가 있다. 스토킹도 지나치면 중범죄가 된다. 짝사랑하던 여성에게 "만나주지 않으면 가만있지 않겠다"는 문자를 계속 보내고, 남들에겐 부부 사이라고 속이면서, 여성을 따라다니면서 위협적인 언행을 한 남성에게 법원은 징역 8월의 실형을 선고했다. 이 남성에게 적용된 죄는 경범죄가 아니라 명예훼손, 협박, 폭행, 정보통신망법위반이었다.
이번에 신설된 '관공서 술주정'도 마찬가지다. 만일 술에 취해 공무원에게 폭력을 행사했다면 공무집행방해나 상해죄로 처벌할 수 있다. 욕설을 했다면 모욕죄를 적용할 수도 있겠다. 그런데도 단순히 술주정하거나 시끄럽게 한 사람까지 처벌 대상으로 삼고 있다.
이렇게 형법상 범죄와 유사하거나 이에 약간 못 미치는 행동의 상당수를 경범죄로 규정한 의도는 인권보다는 단속의 편의를 우선순위에 두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엄격하게 따지면 죄가 될지 안될지 모호한 내용을 경범죄로 집어넣어 처벌이 쉽게 만들겠다는 것 아닐까. 정식으로 입건하기에 부담스러운 사건을 단속하기엔 경범죄가 제격이라는 말이다.
정말로 죄가 된다면 형법조항으로 엄중히 처벌해야 하고, 그게 아니라면 경범죄에서 삭제하는 것이 맞다.
[문제③] 처벌이 필요한지 의문이 드는 죄도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