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울어진 저울> 표지
한겨레출판
지난해 8월 어느 날, 기자는 한 대기업 CEO출신 인사를 만난 적이 있다. 그의 사무실에서 차를 마시며 '세상 돌아가는 일'로 이야기를 나누던 중 안대희 전 대법관이 화제의 중심에 섰다. 그는 며칠 전 새누리당 정치쇄신특별위원장에 임명된 터였다. 기자가 "안대희 전 대법관뿐만 아니라 '반삼성 강골검사'인 남기춘 전 검사까지 새누리당으로 간 것은 의외다"라고 했더니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원래 검사 출신들은 권력지향적이다. 아무리 개혁 성향으로 보인다고 할지라도 그들은 권력이 있는 쪽으로 가기 마련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안대희나 남기춘이 새누리당으로 간 것은 전혀 이상하지 않다."
기자가 갑자기 수개월 전의 일화를 꺼낸 이유는 최근 출간된 <기울어진 저울 - 대법원 개혁과 좌절의 역사>(이춘재·김남일, 한겨레출판) 때문이다. 이 책은 노무현·이명박 정부 10년간 진행돼온 "대법원을 중심으로 한 사법개혁의 시도와 굴절"(한승헌 변호사)을 다루고 있다. 그런데 뜻밖의 일로 여겨졌던 안대희 전 대법관의 새누리당행 비밀을 풀어줄 실마리가 책 속에 들어 있었다.
'독수리5형제'와 대립한 안대희, 대법관 퇴직 48일 만에 새누리당행안대희 전 대법관은 서울중앙지검 특수부장과 대검 중앙수사부장을 지낸 검찰의 '대표 칼잡이' 가운데 한 명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 사법고시 동기였던 그는 참여정부가 출범한 직후인 지난 2003년 대검 중수부장에 임명됐다. 이후 2002년 대선자금 수사를 지휘하면서 '국민검사'라는 애칭을 얻었고, 팬클럽이 생겨날 정도로 전국적 인기를 얻었다.
하지만 검찰총장에는 오르지 못했다. '차떼기당'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쓴 한나라당은 물론이고 안대희 전 대법관을 대검 중수부장에 발탁한 청와대도 반대했기 때문이다. 이후 부산고검장을 거쳐 서울고검장으로 자리를 옮긴 그가 대법관 후보로 거론됐다. 검찰 수뇌부와 이용훈 당시 대법원장이 '검찰 몫 대법관'으로 그를 적극 밀었다. 그런데 청와대는 그의 발탁에 소극적이었다. 그 이유는 이랬다.
노무현 대통령은 애초부터 검찰 출신 인사가 대법관이 되는 것을 탐탁지 않게 여기고 있었다. 법조인 출신인 노 대통령은 검찰 출신 인사를 대법관으로 임명하는 관행이 박정희 정권 때 법원과 검찰을 길들이기 위한 목적으로 만든 것임을 잘 알고 있었다. 민주적 정통성이 취약한 5공화국 때는 검찰 몫을 두 자리로 늘리기도 했으나, 6·29 선언 이후 개헌 과정에서 한 자리로 줄인 것에서 알 수 있듯이 '검찰 몫 대법관'의 정당성은 매우 취약했다.(94쪽) 그러자 이용훈 대법원장이 청와대를 설득했고, 노무현 대통령도 결국 '안대희 카드'를 받아들였다. "사법부 과거사 정리 작업을 추진하고 있는 이 대법원장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안대희 전 대법관은 자신을 적극 천거한 이 대법원장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그는 김태환 제주도지사와 문국현 창조한국당 대표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등에서 철저하게 친정인 검찰 편에 섰다.
검찰의 압수수색 과정이 위법이었던 전자의 사건에는 다수의견과 다르게 "지나치게 엄격한 기준으로 위법수집증거의 배제원칙을 선언함으로써 자칫 실체적 진실 규명을 통한 형벌권의 적정한 행사를 불가능하게 한다"는 별개의견을 냈다.
또한 '공소장일본주의'(재판부가 예단을 갖는 것을 막기 위해 공판이 시작되기 전에는 공소장만 제출하도록 하는 원칙)를 위반한 후자의 사건에는 "여러 이념 가운데 하나에 불과한 공소장일본주의를 형사재판에서 절대적으로 지켜야 할 이념으로 승화시킴으로써 전체를 보지 못한 부분적인 성찰에 그쳤다"고 주장했다.
이런 안대희 전 대법관을 두고 <기울어진 거울>의 저자들은 "수사과정의 절차적 합법성을 엄격하게 해석하려는 (사법부의) 시도에 맞서 검찰의 권한을 확보하기 위해 무던히도 애를 썼다"고 표현했다. 그런 과정에서 대법원내 진보성향 대법관을 가리키던 '독수리 5형제'(이홍훈·박시환·전수안·김영란·김지형)와 치열하게 대립할 수밖에 없었다. 그를 강력하게 천거했던 이용훈 대법원장도 크게 실망했다.
안 대법관의 가세로 대법원에서 보다 다양한 의견이 논의되기를 기대했지만, 형사재판절차와 증거 능력에 관련된 재판에서는 결과적으로 검찰의 기존 태도에서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는 이후 대법원에서 '검찰 몫' 대법관에 대한 강한 회의가 일어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102쪽)물론 안대희 전 대법관에게도 전향적인 면모가 전혀 없지는 않았다. 국가보안법 사건에서는 기존 공안검사 출신 대법관과는 확연하게 다르게 전향적인 의견을 내놓았다. 하지만 "피의자 인권과 검찰의 수사관행이 부딪히는 사건에서는 어김없이 '친정' 편에 섰다"는 것이 저자들의 평가다. 그런 점에서 그가 대법관에서 물러난 지 48일 만에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 캠프로 달려간 것이 이해될 듯하다.
'신영철은 남았고, 조용환은 떠났다'는 씁쓸한 촌철살인만 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