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애마, 자동차키, 그리고 나의 사랑그렇게 20여분을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자동차 키를 찾아 헤맸다. 추위에 떨고 있을 그녀를 빨리 차에 태워서 따뜻하게 해주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정경영
그렇게 20여 분을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자동차 키를 찾아 헤맸다. 추위에 떨고 있을 그녀를 빨리 차에 태워서 따뜻하게 해주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갑자기 핸드폰 벨 소리가 들렸다. 그녀에게서 온 것이다. 이미 부재중 전화가 여러 통 와 있었다. '아~, 그녀는'
그제야 그녀가 주차장에 혼자 서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갑자기 내가 뭔가 큰 실수를 하나 더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다급히 받았다.
"여보세요 ?" 핸드폰 너머로 정적이 흐른다.
"춥지? 지금 갈게. 사실 자동차 키를 잃어버려서 찾느라고....""지금 뭐하시는 거예요." 그녀가 감정을 억누르며 차분하게 말하고 있었다.
"미안해. 아니 자동차 키가 없어져서 찾느라고....지금 가는 중이야. 잠시만 기다려""자동차 키가 추위에 혼자 떨고 있을 나보다 더 중요한 건가요? 그래서 자동차 키는 찾았어요?""아니..""......" 전화가 끊어졌다.
일단 차로 뛰어갔다. 그녀는 아무 영문도 모르고 추운 주차장에서 혼자서 20여 분을 서 있었다. 그녀는 무척 화가 나 있었다. 자동차 키를 잃어버린 것보다 자기 혼자 덩그러니 남겨 놓고 간 것에 대해 화가 난 것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자기 자신을 먼저 지켜주고 함께 있어주기를 바랐던 그리고 그렇게 해야 할 남자친구가 자동차 키 찾겠다고 혼자 사라졌으니 얼마나 기막힌 상황인가.
나는 나름대로 그녀를 위해 혼자 뛰어 다닌 것이다. 그녀를 걱정시키기 싫었고 빨리 차에 들어가 따뜻하게 해주고 싶었다. 같이 뛰어다니면서 찾으면 시간도 더 걸리고 그녀도 힘들 테니, 내 마음은 이랬다.
그녀를 위해 급한 마음에 한 행동이지만 결과적으로 미처 그녀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 것이 나의 불찰이었다. 미안했다. 시간을 되돌리고 싶었다. 추운 주차장에 아무런 이유도 모른 채 홀로 남겨진 그녀. 20분의 시간이 얼마나 외롭고 긴 시간이었을까? 그 마음 충분히 이해가 갔다. 하지만 그녀의 감정에는 이미 큰 상처가 났고 그녀와 나 사이에는 겨울밤의 찬 기운만큼이나 차가운 기류가 감돌고 있었다.
현실로 돌아와 일단 자동차 키를 찾는 것이 우선이었다. 처음부터 생각을 가다듬어 여기저기 주머니와 자동차 키를 둘 만한 곳은 모조리 찾아보았지만 없었다. 스노우보드를 타다 넘어지면서 주머니 속에서 빠져버린 것 같았다. 혹시 안내데스크에 맡겨진 자동차 키가 없나 확인도 해봤지만 없었다.
날씨는 점점 추워오고 스키장 주차장에는 차들이 하나 둘 빠져나가고 있었다. 주차장 요원의 도움으로 우선 차문은 열었다. 그녀와 나는 일단 장비를 챙겨 넣고 조수석과 운전석에 나란히 앉았다. 차안은 추웠다. 그리고 우리의 마음은 더 차가워지고 있었다.
친구의 도움으로 구사일생(九死一生)이제 생각하기 시작했다. 이 난국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그녀는 내일 출근해야 한다고 투덜거렸다. 이해한다. 나도 답답했다. 견인해서 서울까지 갈까? 시간은 밤 10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외진 주차장에는 몇 대의 차량만이 주차해 있었다. 누구한테 부탁해서 집에 있는 자동차 키를 가져오도록 하는 수밖에 없었다.
일단 동네 사는 친구들에게 전화를 했다. 첫 번째 친구에게 전화를 했다. 주위가 굉장히 시끄러웠다. 어딘지 물어보니 경찰서란다. 교통사고가 나서 경찰서에 와 있단다. 내 사정은 이야기도 못하고 친구사정만 들어주고 전화를 끊었다. '잘 해결되길 빈다. 친구야~'
두 번째 친구에게 전화를 했다. 이 친구도 주위가 광장이 시끄러웠다. 오늘 연말 회식이라 2차로 노래방에 왔단다. 별 도움이 안 되지만 답답해서 내 사정을 이야기 했다. 진심어린 위로만 받았다. '술 적당히 마셔라. 친구야~'
세 번째 친구에게 전화를 했다. 일단 집이란다. 다행이다. 나의 사정을 이야기 했다. 자동차 키를 가지고 와 준단다. 눈물이 핑 돌았다. '고맙다. 친구야~'
불행은 곧 행복으로 전화위복(轉禍爲福)그러는 동안 밤 10시 반이 훌쩍 지나고 있었다. 이제 기다리는 일만 남았다. 적어도 2시간 이상은 걸릴 것이다. 그녀도 나도 너무 추웠다. 나는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그녀의 손을 꼭 잡았다. 그리고 조용히 안아 주었다.
얼었던 그녀의 마음을 진심으로 녹여주고 싶었다. 그녀의 화가 난 마음을 읽어 주고 나의 진심을 알려주고 싶었다. 그녀를 미리 배려하지 못한 나의 불찰과 그녀를 향한 나의 마음을 전하고 싶었다.
기다리는 시간 동안 우리는 서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동안 나누지 못한 진지한 이야기들. 서로에게 좋았던 감정들과 기억들. 그리고 우리들의 미래에 대해서. 친구를 기다리는 2시간 남짓한 시간은 너무 짧게 느껴질 정도로 우리 둘에겐 행복을 가져다 준 최고의 시간이었다.
차 안은 그녀와 나의 마음과 마음이 통하는 사랑의 온기로 점점 따뜻해져 갔다. 비록 나의 실수로 시작된 어이없는 일이었지만 결국 나에겐 그녀의 마음을 가질 수 있었던 황금과 같은 시간이었다.
그렇게 그녀는 내 인생에 동반자가 되어 지금 두 아이와 함께 내 옆에 앉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