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강정마을
노순택
이른바 '강정앓이' 중인 채 1년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아침에 눈 뜨면 제일 먼저 그곳이 염려되고, 밤새 별일 없었는지 안부를 챙기는 일부터 시작하게 된다는 거. 7년째 싸우고 있는 강정 사람들을 생각하면 고작 1년일 뿐인데도, 강정 때문에 어딘가 늘 아픈 듯해 사실 좀 고단하긴 합니다. 그러니 7년을 맞고 있는 그곳 사람들은 어떠할까요.
하지만 앓는 것이 꼭 힘들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앓이'를 해 본 사람들은 알 거예요. 앓는다는 건 일종의 사랑의 상태이지요. 사랑의 에너지는 삶에 '건강한 스트레스'를 줍니다. 절망이 삶의 다반사라 하더라도 끝내 희망을 잃지 않게 하는 긍정의 원천이기도 합니다. '앓이' 중인 사람들을 만나면 그래서 힘이 납니다. 덥석 포옹하고 싶어지고, "힘내요!" 말하고 싶어지고 "사랑합니다!" 고백하고 싶어집니다.
강정 마을에서 정말로 아름다운 사람들을 많이 보았습니다. 자신의 이익과 상관없는 일을 위해 몸과 마음과 시간과 돈을 쓰는 사람들. 점점 빛을 잃어가는 '인간의 품위'랄지 하는 말들에 새롭게 빛을 채워주는 사람들….
어떤 권력자들은 '앓이' 중인 이 사람들을 '그깟 것' 때문에 국가의 질서를 어지럽히는 '좌파 빨갱이'라고 매도하기도 합니다. 사랑의 순수한 에너지에 무지한 이 '사랑 불감증 환자들'에게 '앓이'에 대해 어떻게 설명해 주면 좋을까요. 하긴, 자신의 이익이 걸린 일이 아니면 손가락 하나 까닥하지 않는 위인들이 '그깟 바윗덩어리'를 살려 달라고 눈물 흘리는 사람들을 어떻게 이해할까요.
아름다움을 이해할 능력도 의지도 없는 자들이 권좌에 앉으면 세상을 급속도로 망가뜨려 추하게 만듭니다. 강정 마을에 가 보면 자연스럽게 알게 되지요. 이런 곳에 전쟁기지를 세우겠다는 발상 자체가 평화와 아름다움에 대한 전쟁포고임을. 설상가상, '평화의 섬' 제주도에 군사기지를 지어 놓으면 경제발전은 물론 '관광 명소'가 된다고 홍보하는 그들의 도착적 병증을 도대체 뭐라 이름 할까요.
천연기념물을 포함한 수많은 생명에 대한 끔찍한 학살. 주민의 민주적 의견수렴 절차가 완전히 생략된 반민주주의 폭거. 오랜 전통을 가진 마을공동체의 붕괴. 평화를 수호하기 위해 전쟁기지를 짓는다는 어불성설. 실제로 위협이 될 아시아의 평화. 건설공사를 수주한 거대 자본의 탐욕….
강정 마을을 살리기 위해 싸워야 하는 이 모든 이유들 저 바닥에는 '아름다움에의 의지'가 있습니다. 인간은 어떤 최첨단 공법으로도 구럼비 바위 단 1센티미터를 만들 수 없습니다. 수십만 년 지구의 시간이 농축된 이 근사한 자연의 예술품은 군대의 것이 아니라 이 땅의 아름다움을 향유할 권리가 있는 우리 모두의 것, 그리고 우리 아이들의 것입니다.
작년 3월 7일 구럼비 발파가 시작된 그날로부터 깊어지기 시작한 저의 '강정앓이 병'은 여러 골짜기를 거쳐 이 일 저 일 겪어 보다가 이제 새로운 국면에 접어든 것 같습니다. 일찍부터 싸워 온 사람들보다 한참이나 뒤늦은 걸음이었으므로 빚 갚는 마음으로 종종거리다 보니, 어느 틈에 여기까지 오게 되었네요. 생명에 대한 곡진한 경외와 평화를 위해 드리는 눈물겨운 기도의 대장정, 누군가 지쳐 떠나면 그 자리에서 누군가 다시 기도를 이어가는 강정 마을의 이 고통스럽고도 아득한 평화의 대장정에 대한민국의 412명 작가와 함께 새로운 꿈을 꾸기 시작했습니다.
이 땅의 작가들은 강정 마을을 책으로 포위하려고 합니다. 무기와 군함이 아니라 책으로! 전쟁이 아니라 평화로! 군대가 아니라 문화예술의 축제로! 강정 마을 전체를 평화의 도서관으로, 평화의 책 마을로 만들려는 꿈이 시작되고 있는 여기가, 또 한 번 기적의 자리입니다. 맨 밑바닥에 무릎을 모은 기도용 깔개 위로 강정의 노을이 지고 또 태어납니다. 어서 오세요, 당신도 함께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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