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번째 개똥은 과연 누가 먹을까

[서평] 김경미의 13인 인터뷰 모음집 <세 번째 개똥은 네가 먹어야 한다>

등록 2013.04.13 17:40수정 2013.04.15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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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번째 개똥은 네가 먹어야 한다> 책표지
<세번째 개똥은 네가 먹어야 한다> 책표지후마니타스
지금 우리나라는 젊은 사람들에게 제일 존경하는 기업인이 누구냐고 물으면 '이건희'라고 대답하는 사회이다. 재산을 상속하고 탈세하고 재판받고 얼마 안 돼 사면받고 또다시 재판받는, 우리나라 기업인 중에 가장 많이 재판받는 사람을 가장 존경한다는 것이다. 도착(倒錯)된 사회이다. 우리 사회가 돈을 우선시하며 물신(物神)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다. (47쪽)

대한민국에서 '최연소 비전향 장기수'라는 별칭으로 널리 알려진 강용주 광주 트라우마 센터 원장의 말이다. 10억을 벌 수 있다면 감옥살이 1년 정도는 감수할 수 있다고 말하는 고등학생이 상당수인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물신이 지배하는 나라답지 않은가. 참으로 엽기적인 사회다.


5·18 광주 민주화 운동 당시 고3이었던 강용주 원장은 도청에 남은 시민군 중 하나였다. 항쟁 막바지에 본능적인 공포를 이기지 못하고 도청을 빠져나온 그는 '비겁하게' 살아남은 자의 죄책감으로 평생을 시달린다. 1985년에는 구미 간첩단 사건에 연루되어 무기징역을 선고받는다. 이후 그는 20년 징역으로 감형된다. 수감 기간에는 수없이 많은 전향 공작을 당한다. 하지만 그는 14년 동안이나 전향하지 않았다.

대전교도소, 15사동에만도 비전향 장기수 70여 명

"감옥에 있을 때 나는 '내 전 존재를 걸고 전향 제도와 싸우겠다. 그리고 내 손으로 이것을 폐지하고 나가겠다'고 나 자신에게 약속했다. 전향 제도를 폐지하고 준법 서약서를 쓰지 않고 나오게 되었을 때 '아, 이제 나는 세상에 빚이 없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37쪽)

강용주 원장의 증언에 따르면, 그가 수감 생활을 하던 대전교도소 15사동에만도 비전향 장기수가 70여 명이나 되었다. 그중에는 한국전쟁 때인 1951년부터 감옥살이를 한 최주백이라는 장기수도 있었다. 당시 그는, 스물네 살의 꽃다운 청춘에 들어와 환갑이 될 때까지 옥살이를 하던 중이었다. 그 '끔찍한' 상황을 지켜보면서 강용주 원장은 "자기의 전 존재를 거는 중대한 결정"(42쪽)을 한 것이다.

그를 그렇게 이끈 것은 무엇이었을까. 바로 '자유'였다. 자유는, 이 책에 등장하는 13명의 인터뷰이들을 상대로 인터뷰를 진행한 김경미 선생이 그들 모두에게 공통으로 던진 질문의 핵심 열쇳말이기도 하다. 강용주 원장이 14년에 걸쳐 맞서 싸운 야만적인 '전향 제도'가 바로 사상과 양심의 '자유'를 옥죄는 대표적인 것이 아닌가.


김경미 선생이 인터뷰한 13명은 다양하다. 문화·예술인과 학자, 사회 활동가, 정치인 등이 두루 섞여 있다. 사회 메시지를 담은 노래로 유명한 가수 강산에, 인권재단 사람 상임이사인 박래군, 고려대 정치학과 교수인 최장집, <파리의 택시 운전사>로 널리 알려진 홍세화 전 진보신당 상임대표 등이 그들이다. 그 면면을 통해 짐작할 수 있는 것처럼, 이들은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진보주의자들이다.

그런데 왜 하필(굳이?) 자유인가. 엮은이의 말마따나, 자유는 공기와 같이 자연스러운 것이다. 우리는 공기에 문제가 없으면 그것을 특별히 의식하지 않는다. 자유도 마찬가지다. 한 사회에 진짜 자유가 넘친다면 우리는 자유를 굳이 이야기하지 않는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는 '자유, 자유'를 외친다. 자유에 문제가 생긴 것이다.


억대 출연료가 당연시되는 소수 연예인과 굶어 죽은 시나리오 작가가 공존하는 우리 사회는 진정 자유로운가? 갈수록 불평등해지는 현실에 분노하고 좌절하다 못해 자살과 범죄로 항의하는 사람들이 나날이 늘고 있는 지금 대한민국은 자유로운 사회인가? (9쪽, '머리말'에서)

홍세화 선생이 어렸을 때 외할아버지께 들은 이야기

이 대한민국을 위해 우리가 할 일은 무엇인가. 제목에도 등장하는 '개똥' 이야기를 통해 생각해 보자. 이 이야기는, "정치경영연구소의 자유인 인터뷰 1"이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에서 마지막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홍세화 선생의 입에서 나온다. 홍 선생이 어렸을 때 외할아버지께 들은 이야기라고 한다.

옛날 서당 선생이 삼형제를 가르쳤다. 어느 날 이 훈장이 삼형제를 앉혀 놓고 장래 희망을 말하게 한다. 첫째와 둘째는 각각 정승과 장군을 말한다. 이번에는 막내에게 묻는다. 그러자 막내는 자신은 장래 희망은 그만두고 개똥 세 개나 있었으면 좋겠다고 대답한다. 훈장이 그 이유를 묻자 막내는, 맏형은 책 읽기를 싫어하는데 정승이 되겠다고 하니 개똥 하나를 그 입에 넣어 주고, 겁이 많은 둘째 형이 장군이 되고 싶다고 하니 다른 개똥 하나를 입에 넣어 주고 싶기 때문이라고 한다.

훈장이 듣고는 표정이 일그러지면서 "마지막 하나는?" 하고 막내에게 대답을 채근하는 상황에서, 홍 선생의 외할아버지는 "세화야, 막내가 뭐라고 했겠느냐"하고 홍 선생을 향해 말머리를 돌린다. 그때 홍 선생은 "맏형이나 둘째 형의 엉터리 이야기를 듣고 흡족해했으니 서당 선생이 먹어야 하는 것 아니냐"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할아버지께서는 "그래, 네 말이 맞다. 하지만 앞으로 살아가면서 네가 그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할 때는 세 번째 개똥은 네가 먹어야 한다"고 하셨다. 이 이야기를 하도 여러 번 들어서 어린 나이에도 머릿속에 각인되었던 것 같다. 그래서 살면서 세 번째 개똥을 먹지 않으려고 최대한 노력했다. (310쪽)

나는 지난 시절에 홍 선생이 시대의 부름 앞에서 고난에 찬 저항의 삶을 선택한 것이 바로 이 "세 번째 개똥"을 먹지 않으려는 노력의 산물이었다고 본다. 그렇다면 우리는 과연 "세 번째 개똥"을 먹지 않기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하나.

'~를 향한 자유'와 '~로부터의 자유'가 있다. 전자는 쟁취하는 것이고 후자는 향유하는 것이다. 전자가 적극적이라면 후자는 소극적이다. '~를 향한 자유'에 대담한 용기가 필요한 이유다. 건강한 사회라면, 사람들이 전자를 위해 싸울 때 그 목소리에 적극 귀를 기울이고 좋은 제도로 그들을 뒷받침해야 한다. '~로부터의 자유'에 만족하는 이들 또한 '~를 향한 자유'를 외치는 이들에게 힘을 보태야 한다.

예를 들어 보자. 대한민국의 모든 국민은 차별과 배제로부터 자유로운 삶을 누려야 한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장애인들은 온전히 그런 자유를 누리고 있는가. 자유로운 이동의 권리를 '향한' 싸움에 수많은 장애인들의 목소리는 여전히 크게 들려오고 있다. 차별과 배제로부터의 자유가 보장되어 있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그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얘기다. 주어진 무언가를 누리는 자유뿐만 아니라 주어지지 않은(혹은 덜 주어진) 자유를 위해 부단히 싸우거나, 그런 싸움을 하는 사람들과 어깨를 나란히 해야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지 않을까. 우리가 "세 번째 개똥"을 먹지 않으려면 말이다.

'자유'라는 말은 가장 타락한 말 중의 하나가 돼 버렸다

199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라는 '망령'이 온 세상 사람들의 눈과 귀를 현혹하기 시작한 이래로 '자유'라는 말은 가장 타락한 말 중의 하나가 돼 버렸다. 자유를 말하면 책임과 의무부터 돌아보라고 을러대는 사람이 우리 주변에는 얼마나 많은가. 일사 분란한 질서와 규율을 강조하는 대한민국의 수많은 학교와 직장에서 '자유'는 일종의 금기어나 마찬가지다.

"선택의 자유"니 "경쟁의 자유"니 하는 '그들만의 그런' 자유가 있다. 분명한 사실은 '그런' 자유가 아닌 '우리들의 이런' 자유가 함께해야 우리 사회가 건강해진다는 것이다. "모두가 자유를 꿈꾸지만, 각자 꿈꾸는 자유가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아는 사회, '함께 또 따로'의 자유를 꿈꿀 수 있는 사회는 분명 특정한 사람만 자유를 꿈꿀 수 있거나, 한 가지 색깔의 자유만을 꿈꿔야 하는 사회보다 더 아름답..."(7쪽 '엮은이 서문'에서)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 책을 통해, 좀 더 많은 이가 자유로운 대한민국을 위해 '자유'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차분하게 돌아보는 기회를 가져 보았으면 좋겠다. '~로부터의 자유'에만 만족할 게 아니라 '~를 향한 자유'에 동참하거나 힘을 보태는 이가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이를 통해서 '나'의 자유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의 자유를 외치는 이들이 더 늘어난다면 더 바랄 게 없겠다.
덧붙이는 글 <세 번째 개똥은 네가 먹어야 한다> 김경미 엮음 | 후마니타스 | 2012.03 | 15,000원

이기사는 오마이뉴스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세번째 개똥은 네가 먹어야 한다

김경미 엮음, 정치경영연구소 기획,
후마니타스, 2013


#자유 #진보주의자 #<세 번째 개똥은 네가 먹어야 한다> #정치경영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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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민주주의의 불한당들>(살림터, 2017) <교사는 무엇으로 사는가>(살림터, 2016) "좋은 사람이 좋은 제도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좋은 제도가 좋은 사람을 만든다." -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 1724~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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