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유공자' 국립묘지 안장 퇴짜, 왜?

[단독] 1978년 'DJ 세배사건' 집행유예 판결 탓... 유족 반발

등록 2013.04.12 09:40수정 2013.04.12 1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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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종완 전 의원
김종완 전 의원유족
한국전쟁 참전 유공자이자 5·18 유공자인 고 김종완 전 민주당 의원이 국립묘지 안장을 거부당했다. 지난달 7일 별세한 김 전 의원의 유해는 국립이천호국원 임시안치실에 잠들어있다.

국가보훈처 국립묘지안장심의위원회가 고인의 국립묘지 안장을 거부한 이유는 "공무방해의 정도가 중한 경우로 판단됐다"는 것이다.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은 사람은 안장심의위원회에서 영예성 훼손 여부를 심의한다. 1978년 그가 신민당원들과 함께 서울대병원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세배를 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구하다, 특수공무집행방해와 업무방해로 집행유예 선고를 받은 점이 문제가 됐다.

김 전 의원의 사위인 문승원씨는 "유신 법정이 괘씸죄 판결을 내린 것 때문에 고인이 국립묘지에 안장되면 안된다고 한 판단을 수긍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유족은 지난 3일 국민권익위원회 중앙행정심판위원회에 국립묘지 안장 비대상 결정처분 취소 청구를 냈다.

"DJ에게 세배하려고 교도관과 실랑이했더니, 국립묘지 안장 거부"

김종완 전 의원은 1960년대부터 권위주의 정권과 맞선 민주투사다. 그는 1960년 3·15 부정선거 규탄 시위, 1970년 긴급조치 9호 위반, 1980년 5월 김대중 내란음모사건 등으로 수차례 구속됐다. 민주화 이후 13~14대 민주당 국회의원을 지냈다. 문씨는 "고인은 한국전쟁 참전 유공자이자 5·18 유공자로, 국립5·18민주묘지 등 국립묘지에 묻힐 수 있다는 사실을 자랑스러워했다"고 밝혔다.

김 전 의원이 지난달 7일 별세하자, 유족들은 김 전 의원의 부인인 이성자씨가 살고 있는 서울 송파구와 가까운 이천호국원에 안장 신청을 했다. 하지만 이튿날 이천호국원으로부터 "신원조회를 해보니 걸리는 부분이 있다"는 답을 들었다. 유족은 고인의 유해를 이천호국원 임시안치실 납골함에 보관하고, 3주마다 열리는 안장심의위원회 결과를 기다렸다.

3월 20일 열린 안장심의위원회는 김 전 의원의 안장을 거부했다. 그의 안장은 국립묘지의 영예성을 훼손한다는 것이다. 1978년 대법원 판결을 근거로 공무방해의 정도가 중하다고 판단했다. 보훈처는 행정심판이나 행정소송을 제기하라고 공문을 유족에게 보냈다. 유족이 반발하자, 같은 달 29일 국가보훈처 사무관 2명이 부인 이씨와 문씨를 찾아 "처장님이 찾아뵙고 (안장 거부에 대해) 잘 설명을 드리라고 했다, 유감스럽다"고 말했다.


유족은 "유신 법정의 판결을 이유로 고인의 안장을 거부한 것을 이해할 수 없다"고 강하게 반발했다.

문제가 된 '김대중 세배 사건'은?


판결문을 통해 당시 사건을 재구성해보자. 1978년 1월 1일 한화갑·김옥두·김종완 전 의원 등 신민당원 20여 명은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수감된 뒤 서울대병원 2층 병동에서 치료를 받고 있던 김대중 전 대통령을 찾았다. 교도관들이 막자, 김옥두 전 의원이 "세배하러 갑시다"라고 소리쳤고, 신민당원들은 복도에 진입했다. 이 과정에서 신민당원들은 교도관들의 가슴과 등을 손으로 밀어젖혔다.

이들은 김 전 대통령의 병실 앞에서 "세배를 시켜라", "책임자 나와라", "동교동에 지금 당장 전화 한 통하면 수백 명이라도 올 수 있다"고 말했다. 누군가 칸막이벽을 1회 주먹으로 쳐 문에 끼어있던 유리를 떨어뜨리기도 했다. 1시간 30분 뒤 이들이 연행되면서, '김대중 세배 사건'은 끝났다.

법원은 신민당원들이 '교도관들에게 어떤 위력을 가할 듯한 태도를 보여 폭행·협박하고 간호원이 병실에 출입하는 데 지장을 초래해 입원환자들을 불안하게 했다'며 특수공무집행방해와 업무방해를 적용했다. 대법원은 그해 12월 김옥두(징역 1년)·한화갑(징역 8월)·김종완 전 의원에 대한 선고를 확정했다.

문승원씨는 "세배를 하게 해달라며 교도관들과 실랑이를 벌인 것이 어떻게 공무방해의 정도가 중한 것이냐"며 "집행유예 판결은 민주화 이후 고인이 두 차례 국회의원을 하는 데 전혀 문제가 없었는데, 갑자기 국립묘지에 안장되지 못한다고 하니 황당하다, 얼마 전 5·17 김대중 내란음모사건 관계자들 모임에서 만난 한승헌 전 감사원장은 제게 '민주화운동 전과가 저승까지 따라다닌다'고 한탄했다"고 밝혔다. 

민주화 이후인 1988년 고인을 제외한 한화갑·김옥두 전 의원은 사면 복권됐다. 문씨는 "고인은 집행유예의 경우 사면 복권을 받지 않아도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사면복권을 신청하지 않았다"며 "또한 당시 김 전 대통령이 위반한 긴급조치 9호에 대해 최근 위헌결정이 내려진 것을 감안하면, 안장심의위원회의 결정을 더욱 받아들일 수 없다"고 강조했다.

5공 실세는 국립묘지 안장, 5·18 유공자는 안장 거부

유족은 5공화국 실세였던 안현태씨가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된 것과 비교해 형평성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안씨는 1979년 12·12 군사반란에 참여하고 전두환 전 대통령의 경호실장을 지낸 인물이다. 1996년 전 전 대통령의 비자금 조성에 관여한 혐의로 징역 2년 6월과 추징금 5000만 원의 실형을 선고받은 그는 2011년 8월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됐다.

당시 안장심의위원회 우무석 위원장(국가보훈처 차장)은 "고인이 뇌물죄 등으로 징역형을 선고받았지만 1998년 복권됐고, 베트남 파병으로 국위를 선양한 점, 대통령 경호실장을 역임하고 1968년 청와대 침투 무장공비를 사살하는 등 국가안보에 기여한 점 등을 고려해 국립묘지 안장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정호준 민주통합당 의원은 "보훈처의 안장심의 기준이 그때그때 달라지는 것이 문제다, 징역을 살았던 사람은 안장되고 집행유예를 받은 사람은 제외되는 것에 대한 형평성은 무엇으로 설명한 수 있느냐"면서 "안장심의위원회가 무소불위의 권한을 가진 것처럼 비춰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문승원씨는 정치적인 의혹을 제기했다. "국가보훈처는 쿠데타 세력으로 권력형 비리를 저지른 안현태씨는 5·18 단체의 반대에도 서둘러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하더니, 5·18 유공자인 고인은 안장을 거부당했다"며 "고인은 지난해 12월 지인들에게 박근혜 대통령 반대 입장을 표명한 적이 있는데, 박근혜 정부가 유신반대 인사들의 국립묘지 안장을 부결시키는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한편, 국가보훈처 관계자는 "안장심의위원들이 여러 가지 기록을 종합적으로 보고 판단한 것"이라며 "유족이 행정심판을 청구하고 소송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더 이상 답변을 할 수 없다"고 말했다.
#김종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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