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사람은 누구나 아파트를 꿈꾼다.
박정훈
그런 생활을 보고 자란 나는 집에 대한 큰 애착이 없었다. 집은 소유의 개념이 아닌 거주의 개념으로 최소의 공간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부모님의 생활을 보고 자라서 정말 근검절약이 몸에 밴 전형적인 짠돌이였다. 물론 지금은 아니지만.
군대를 다녀오고 대학을 졸업한 나는 사회생활을 하다가 결혼을 하게 되었다. 결혼 후 분당에 거주하던 나는 2년여 전 직장과 육아 문제로 고향 광주로 이사를 했다. 교통이 제일 편리한 위치에 있는 아파트 단지에 전세를 구했다.
원래 처음부터 이곳으로 오려고 계획하진 않았다. 가격은 기존에 비해 약 30% 정도 상승해 있었는데 전세 매물 자체가 없어서 고르고 말고 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원래 24평의 아파트나 빌라로 가려고 했으나, 매물이 없는 관계로 형편에 맞지도 않는 32평의 아파트에 가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전세만료기간 한 달 전에 집주인에게 연락이 왔다(참고, 물론 법적으로는 3개월 전에 집주인은 세입자에게 재계약여부를 통보해야 한다). 계속 살 거냐고 하셔서 계속 살고 싶다고 했는데 집주인은 그럼 변경사항이 있으면 추후 다시 연락을 주겠다고 하더니 전세 만료 2주 정도 전에 연락이 왔다.
"뉴스를 보니 시세가 3천 정도 올랐는데 젊은 사람들이니 뉴스 많이 보지 않나? 젊은 사람 들이 요새 전세 값 시세도 몰라?"집주인은 시세가 올랐으니 전세금을 올리겠다고 했다. 시세가 3천정도 올랐는데 다 받고 싶지 않으니 그 가격에 해당하는 '반 전세'를 하자고 했다. 나는 그게 무엇인지 몰라 주변에 물어보니, 간단히 말해 '억대 보증금을 내고 사는 월세'라고 했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집주인은 7개월 정도 반전세로 살다가 이사를 가달라고 했다. 난 너무 당혹스러워서 "그럼 이사비용은 주시냐?"고 물었더니, 알아서 하란다. 그 순간 나는 머릿속이 멍~ 해졌다. 그리곤 '아, 이래서 부모님 세대들이 내집, 내집 했구나'란 생각이 들었다.
최근 정부의 부동산대책 발표를 본 데다, 평소 경제뉴스를 자주 보는 편이라 취득세 감면과 대출금리 인하 소식은 이미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이 기회에 그냥 집을 사면 어떨까?"라는 아내 말에 은근히 솔깃했다. 내가 솔깃한 이유는, 그곳이 정말 가고 싶었던 아파트였고 취득세까지 면제가 된다고 했기 때문이었다.
'그래, 우리도 이 기회에 대출 받아서 집 사자'결국 우리 부부는 '그래 이번 기회에 대출 1억 원 정도 받아서 집을 사자'고 결심한 뒤, 이리 저리 집을 알아봤다. 그렇게 알아보다가 아내가 마음에 들어하는 집을 찾았지만, 집주인은 시세보다 높은 금액을 불렀다. 얼어붙은 부동산경기에 무슨 조화인지 모르겠으나, 그 집을 계약하려는 사람들이 왜 그렇게 많았던 것인지... 난 반대 했으나 아내가 너무 맘에 들어 해서 '마음에 든다면야 가격은 주관적이지 않은가! ', '그래 이 기회에 아내에게 선심 한 번 쓰자'는 생각에 덜컥 계약을 했다.
고통은 이미 시작되고 있었지만 우리 부부만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그 이유는 우리나라에 있는 '전세'라는 제도의 특성 때문인데 법적으로는 계약기간이 끝나면 무조건 전세금을 줘야 한다. 그러나 우리가 전세로 살고 있었던 집주인은 계약기간이 만료 되었지만 집이 나가야 돈을 줄 수 있다는 입장이었고 우리가 이사 갈 집은 무작정 기다릴 수도 없는 상태였다.
결국 '전세난' 기간임에도 집은 나가지 않았다. 이사철이 지나간 4월부터는 점점 전세가 나가지 않고 여름철에는 장마기간이라 이사를 가기 힘들다고 해서, 속은 점점 더 타들어갔다. 우리가 산 집 주인은 더 기다릴 수 없었는지 잔금 날짜를 확정해서 계약서를 다시 작성하자고 연락을 해왔다.
정신이 아득했다. 지금 살고 있는 집은 나갈 생각을 안 하는데 들어갈 집주인은 잔금 날짜를 압박하고... 30분이 멀다하고 부동산에서는 전화를 했다. 우리 때문에 양쪽집이 피해를 보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결국 보관이사라도 준비하라는 말에 정말 머리가 쿵하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계약서를 꼼꼼히 다시 살펴봤다. 그런데 계약서 내용에는 내가 살고 있는 집이 계약되는 시점부터 이사 날짜를 협의한다고 돼 있었다.
처음엔 다 서로 좋게 얘기해서 해결하려고 했다. 그러나 집도 비싸게 산 마당에 보관이사까지 하면서 이사 갈 순 없다고 판단했다. 다들 본인들이 피해자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들어갈 집 주인은 잔금날짜가 정해지지 않아서 마음에 드는 집에 못 들어간다고 난리, 전셋집 주인은 집이 안 나가서 적금을 깨야 할 지경이라고 난리였다. 결국 난 계약을 파기하자고 했다. 다들 우리 때문에 피해를 보고 있으니 서로 원하는 날짜에 이사 갈 수 있도록 상호협의 하에 계약을 깨자고 했다. 물론 계약금도 돌려달라는 말과 함께.
계약을 파기한다는 나의 말에 부동산은 전셋집주인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전셋집주인을 설득하여 계약 마지막 날에 집이 나가든 안 나가든 전세금을 빼주기로 약속했다. 그러나 확인서를 받으러 부동산에 갔더니, 집주인 왈, 장기수선충당금(아파트 관리비에 포함된 집주인이 부담해야 할 일종의 수리비)을 내라는 것 아닌가. 60여만 원 정도 됐지만, 지금껏 신경 쓴 것이 떠올라 그렇게 못하겠다고 했다. 결국 집주인은 없던 일로 하자고 했고, 아파트 매매 잔금 결제에 대한 걱정은 덜었다.
대출 상환 생각하면... 이제 시작일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