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산다면 무슨 인권이 필요하겠는가?

'인·터·넷'으로 하는 짜릿한 상상

등록 2013.05.02 19:08수정 2013.05.02 1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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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시민인권학당을 마치고, 그 수료생 중 일부와 '인·터·넷(인권을 터놓고 이야기하는 네트워크)'이라는 인권세미나를 진행하고 있다.

여러 가지 역학적 관계로 인해 올해는 인권센터사업이 아직 개점휴업 중이었고, 그러한 돌파구로 시작했지만, 지금은 무엇보다 소중한 시간이 되고 있다. 그동안 위에 떠 있었던 듯 하던 활동이 대지에 발을 붙인듯 느껴지고, 무엇보다 세미나 과정의 역동을 통해 새로운 각오와 시민들의 건강함을, 힘을 흥분으로 느끼고 있다.

지난 3월 6일부터 매주 한 차례씩 진행하고 있는 세미나를 통해 '여성/인권, 장애인, 노동, 주거권, 청소년, 다문화/이주여성' 등의 주제를 함께 생각하고 이야기 나누었다. 함께 한 구성원은 10대부터 70대 어르신까지 다양한 연령층, 여성과 남성이 절반씩, 장애자녀부모, 제도권 밖의 학교 재학생과 선생님, 빈곤의 악순환에 시달리는 분, 시민단체 활동가 및 회원 등, 보편에서 제외되거나 보편을 거부한 소수자들이다.

그래서일까? 첫 시간부터 세미나는 지루할 틈이 없었다. 혹시 자칫 지루해지거나, 너무 다양해서 얘기들이 섞이지 않으면 어쩌나 했던 것은 기우일 뿐이었다.

처음부터 봇물 터지듯 자신의 경험과 소수자로서의 답답함을 토로하고 있다. 청소년인권을 다룬다고 청소년들만이 논의를 주도하지 않고 장애인 문제도 마찬가지이고, 빈곤의 문제도 모두다 자신과의 연관성, 즉 사회적 관계와 사회적 맥락 속에서 이해하고 있다.

나이도, 성별도, 지위도, 장애여부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 안에서 70대 어르신의 경험이 현재 청소년들에게 재현되고, 빈곤문제는 청소년의 미래이며, 현재 우리들의 모습으로 환원된다. 청소년들의 권리에 대한 침해는 다시 어르신의 분노와 만난다.

이 모든 인권침해와 차별들은 결국 서로 만나고 있다. 나이, 성별, 장애유무, 빈곤, 인종, 심지어 주거 및 보행권의 문제도 하나로 만난다. 그것은 이 국가가 누구의 국가이며 누구를 보호하기 위해 존재하는가? 에 대한 질문과 이로부터 오는 배신감이다.


그래서 '공분'한다. 그리고 그러한 공분이 서로의 연결됨을 확인하게 해주고, 그러한 유대감이 세미나의 활력과 역동의 배경이 된다. 나와 뜻이 같은 이들이 있다는 것, 내 아픔에 공감해주고 나의 분노에 지지해주는 타인들, 집단이 있다는 것은 내 존재, 정체성에 대한 존중과 확인이 된다. 인간이란 그런 존재이기 때문이다.

혼자 산다면 무슨 인권이 필요하겠는가? 혼자 산다면 존중받고자 왜 애쓰겠는가? 정체성의 확인과 존중은 함께 사는 인간의 필요충분조건 일 테다. 그래서 인권은 존중과 정체성대로 인정받고 그 정체성대로 살아가고픈 인간의 욕망이 아닐까 싶다. 그가 누구이든 간에 사람은 생긴대로 살아갈 수 있어야 한다. 그걸 제도화하는 게 인권일 것이다. 여전히 누군가는 별 근거도 없이 존중받는 집단의 구성원이 되고, 다른 어떤 이들은 '정체성' 때문에 무시받거나 경멸의 대상이 된다. 무시하거나 경멸하는 근거조차 없다. 근거없는 무시와 경멸이 현실 속에선 힘을 갖고 있다. 그런 면에서 국가와 인권의 만남은 이중적이다.


그래서 우리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 현재의 국가는 그리고 그 국가의 의무로 실현되고 있는 인권은 여기 모인 '우리'를 대상이나 주체로 하고 있지 않다고... 그래서 또 우리는 찾고 있다. 이러한 '공분'에서 오는 문제와 해답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고 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여성주의 상담의 원칙에는 '내담자의 문제는 내담자 자신이 해결할 힘이 있다'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 있다. 세미나를 진행하면서 그동안 나는 이 말을 얼마나 잊고 있었으며, 그리고 요즘 다시 재발견하고 있는 중인지 깨닫는다. 

세미나를 통해 변화하고 있는 것은 누구보다도 '나'인 듯하다. 문서자료와 토론석상, 워크숍을 통해서가 아닌 생활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서 문서의 정당성을 확인하고 나아가 오류를 발견한다. 그리고 한 동안 잊었던 '부정의에 대한 공분'을 온 몸으로 느끼며 살아있음에 감사한다. 매번 세미나가 끝날 때 나는 감동이 온 몸을 훑고 지나는 듯한 원기 충만함을 느낀다. 이것이 날 잡아끄는 매력으로 작용하는 한 아마도 나는 이 상황에서 쉽게 벗어날 수 없을 듯 하다.

배움을 다시 시작하면서 일과 배움 중 배움을 더 선택하고픈 욕망에 시달렸던 것이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이 자리에 있도록 하는 것은 완전히 이 세미나가 주는 사람들과 나에 대한 재발견과 감동이다. 내게도 사람들에 대한 애정이 충분히 있다는 것에 대한 기쁨이다. 사람들이 함께하면서 만들어내는 힘과 역동, 공동체성의 회복, 인간에 대한 긍정적 희망, 이런 것들을 관념이 아니라 실체로 확인하고 느끼는 나에 대한 감사함이다. 이를 통해 나는 내 삶 즉, 활동의 방식에 대해 성찰해보게 된다. 관념과 추상과 오만으로 얼룩져있진 않았던가... 나를 너무 내세우지는 않았던가... 하는.

겸손해지고 기다릴 줄 알아야겠다. 

세미나를 하면서 확인하는 또 다른 점은 우리는 누구나 다 소수자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그 소수자성들로 인해 다른 형태의 인권침해나 차별, 부정의에 대해 공감이 형성된다. 그 소수자성이 우리를 많은 다름에도 불구하고 하나로 묶고, '우리', '공통의 분노'라는 것으로 표현되게 하고 있다고 본다. 어떤 소수자성이 먼저 배려되어야 하는가? 누가 가장 사회적약자이고 그래서 가장먼저 인권의 정치학의 혜택을 보아야 하는가? 하는 이론적 문제가 여기서는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 소수자성이 한 개 이상으로서, 여성이고 장애아부모이고, 마땅한 직업은 없으나 사회활동은 하고 있다거나, 소상인이지만 빈곤하고 인권보장이 안 되는 학생자녀를 두고 있고 비정규직 가족이 있다. 노인이고 일자리 없고 병든 몸이거나, 탈 제도화로 인해 미래가 불확실한 청소년과 선생님이 있다. 정체성은 중첩되고 생애주기에 따라 변화는 것임을 서로를 보면서 확인한다. 따라서 무엇이 혹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단 하나라도 소수자정책이 제대로 실현된다면 이리저리 얽혀있는 정체성으로 인해 어딘가 에서는 만나게 된다. 그리고 내가 아닌 너의 문제해결이 선행된다고 해서 억울해하거나 질투하지 않는 것이 또한 소수자들의 연대의식임도 확인한다. 

그러니 기다려주겠다. '우리 모두의' 국가라는 확신이 들 그 날을... 모두의 국가가 아니라는  베일이 완전히 벗겨지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우리'의 국가적 정체성을 회복하기 위해 어떤 현상이 빚어질 지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는 일이지만, '공분하는 우리'가 늘어가는 이상 그것은 필연적이다. 상상만으로도 짜릿하지 않은가.
덧붙이는 글 이 기사를 쓴 신하영옥씨는 현재 광명시민인권센터장으로 재직중입니다. 이기사는 인권연대 주간 웹진 <사람소리>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인권 #공분 #소수자 #사회적약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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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연대는 1999년 7월 2일 창립이후 세계인권선언의 정신에 따라 국내외 인권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인권단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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