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중쉬는 시간 운동장 내다보며 이야기 중
이국향
저녁을 먹고 앉아 음악을 들으며 커피를 한 잔 마시며 휴식하고 있을 때 북북거리며 카카오톡(이하 카톡)이 계속 왔다. 무슨 일인가 싶어 봤더니 우리 반 아이들이 지들 단체 카톡방에 나를 초대한 것이다. 내일부터 긴장하며 아이들과 한 주를 보내리라는 가열 찬 맹세가 스르륵 힘을 잃는 순간이었다. 세상에, 지들 단체 카톡 방에 선생인 나를 초대하다니... 그것도 가장 말썽꾸러기 녀석들 서넛이 들어있는 그 방에... 지들이 하는 말, 행동, 전부 다 스캔할지도 모를 나를 불러들이다니... 아이들은 아이들이다.
이때부터 마음속에 불꽃 놀이하듯 멋진 그림이 팡팡 터진 것 같다. 행복했다. 초대를 받았으니 들어가 아이들과 한 참을 이야기했다. 빛의 속도로 올라가는 글을 따라가며 음악이며 이모티콘을 맘껏 날리며 아이들과 수다를 떨었다. 카톡방에서 본 아이들은 한편 순진하다. 한 녀석이 나 들으라고 음악도 보냈다. 어지간히 산만해 여러 번 꾸지람도 들었던 녀석이 그런다. 들어보니 내가 좋아하는 음악이다. 물어보니 일부러 나 들으라고 보낸 것이란다. 점심시간에 내가 듣는 음악을 기억했단다. 참 기쁜 날이다.
감동했고 행복했다. 삶의 기쁨이란 것이 바로 이런 것을 두고 하는 말인가 보다 생각한다. 마음이 새털처럼 날아갈 듯 가벼워진다. 심지어 사는 것이 참 멋진 것이란 생각마저 들 정도로 그 무겁던 마음이 눈 녹 듯 사라져버렸다. 아이들은 아이들이다. 지속적으로 알려주면 결국은 알아듣는다. 부모든 교사든 만약 반드시 변화되어야 할 어떤 일이 있다면, 특히 이런 충동이 잘 통제되지 않는 아이들과 함께 지낼 때는 끝까지 갈 수 있어야 한다. '우리 아이가 원래 그래요'라든가 '그 녀석은 어떤 애야'하고 단정 짓는 것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만약 아이의 행동이 개성으로 봐 줄 수 있는 종류의 것이라면 함께 어울려 그 개성이 꽃 필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어야 하고, 개선이 필요한 여지가 있다면 단호하게 시작하고 지속적으로 가야한다.
그러나 한 가지 잊지 않아야 하는 것은 그 아이의 본성을, 비록 실수는 했지만 잘 하려고 했던 의도는, 지금은 비록 실수 했지만 머지않아 그 녀석은 반드시 잘 하게 될 것이라 믿는다는 그 확신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이러한, 한 인간으로서의 사람 자체에 대한 선량한 확신과 믿음이 없다면 대상이 누구든 타인의 진정한 변화는 기대하지 않아야 한다. 더구나 자발적인 변화는 자신에 대한 존중 위에서 시작되는 것이기 때문에 더더욱 상대에 대한 존중과 이해는 중요하다.
만약 내가 아이든 그 누구든, 상대의 입장이 되지 않고 내 놓은 그 어떤 해결책이나 의견이나 도움 등은 그리 큰 효험이 없다. 억지로 올려놓은 자리에 사람은 그리 오래 머무르지 못한다. 스스로 올라가도록 의지를 북돋워 주고, 올라갈 수 있음을 믿고, 그것이 자신에게 도움이 된다는 확신을 보여주는 것이 필요하다. 그 것이 곧 상대에 대한 존중의 표현이며 지극한 애정의 표현이다.
사실 오늘 우리 아이들처럼, 내 앞에 있는 아이들은 나를 가르친다.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질문하도록 한다. 나는 이 아이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는가? 내 식의 잣대로 이 아이들을 살펴보지도 않은 채 댕강댕강 잘라 편집하는 것은 아닌가 하고 말이다. 타인을 있는 그대로 품으려는 노력은 학교에서만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학교에서는 필수적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있는 그대로의 존중, 애정이 담긴 이야기와 눈빛 그리고 끊임없이 믿고 기다리는 태도. 이것이 없다면 내가 아닌 타인의 자발적 변화란 기대하지 않는 게 좋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오히려 이것이 내게 부족하기에, 내 앞의 아이들을 통해 평생 이런 훈련을 해야 하는지도 모른다.
오늘 아이들과의 즐거운 수다는 내게 사는 기쁨이 무엇인가를 알려주었다. 애쓰면 애쓰는 대로 헛되이 보낸 시간은 없었다는 것을 알려준다. 내가 선생으로서 아이들과 너무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는 것을 알려주어 기쁜 날이다. 살아있어서 좋다는 것을 실감하게 해 준 좋은 날이다. 오늘 같은 날을 보면서 나는 내 안에 살아남은 고집스런 생각이나 교육적 편견을 되짚어보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내가 녀석에게 말했던 그 것들이 결국 자신을 걱정하고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는 것이 더욱 기쁜 것이다.
나는 내 아이들에게 있어, 가능하면 좋은 변화는 빠르게 일어나 오래도록 지속되기를 바란다. 그래야 녀석들과 내가 함께 써 가는 이 시간이 보다 밝은 그림으로 그려질 테니까 말이다. 내 아이들이 나를 떠날 때는 분노감이나 공격성은 줄어들기를 바란다. 인내할 수 있고, 부드럽고 다정하게 타인과 의견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그래서 그 어느 곳에 가서든 자신의 것을 나누고, 남도 나누게 하면서, 그러면서 좋은 세상을 만들어 갈 수 있기를 바란다. 나를 떠나 다른 사람과 만나도, 자신이 가진 멋진 색깔을 드러내며 마음껏 날개 펼치는 그런 사람들이 되기를 바란다.
나는 내 아이들이 정말로 그렇게 되기를 바란다. 그러나 나는 오늘 더 잘 알게 되었다. 내 아이들은 생각보다 유연하며 생각했던 것보다 더 잘 변화할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들을 위한 내 사랑은 간절하되 조용히, 따스하게 지치지 않고 오래 비추어야 덥혀진다는 것을. 그래서 그들이 입고 있던 외투를 스스로 벗어던지며 걸어 나온다는 것을 말이다.
좋은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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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아이들 카톡방에 초대... 참 기쁘며 감동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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