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화 씨가 강의 통역을 하고 있다.
이현화
"부모님이 모두 어릴 때 열병을 앓고 청력을 잃으셨어요. 집에선 수화로 소통했죠. 그래서인지 농인들과 어울리는 데 다행히 큰 어려움은 없었어요. 사실 문화적 차이가 청인(비장애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매우 크거든요."
자연스럽게 수화를 익히고 통역사의 길을 선택한 자매를 어머니는 걱정했다. 농인으로서 청인과 농인의 간극을 누구보다 깊이 이해하기 때문이다. 평생을 눈으로 보고만 살아온 농인들 세상은 청인들과는 다르다. 옆 사람의 사소한 몸짓과 표정이 그들에게는 모두 소통의 도구다. 이 과정에서 의도하지 않은 갈등이 자주 빚어진다.
언어도 마찬가지다. 농인들에게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한국어를 완벽하게 구사하기란 쉽지 않다. 한국인들이 10년 넘게 교육받은 영어를 완벽히 구사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문해력(글을 읽고 이해하는 능력)과 작문력이 좀 부족할 수밖에 없고, 어순이나 표현방식이 한국어와 사뭇 다르게 느껴지는 것도 그 때문이다. 언어가 닫히면 세상도 닫힌다. 수화통역사들은 농인들의 창과 같다. 현화씨와 한나씨는 농인들이 통역사들의 수화를 보고 속 시원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일 때 가장 보람을 느낀다고 말한다.
"특유의 표정이 있어요. '아~' 하면서 끄덕이고 속 시원하다며 웃으시는 그 표정을 보면 보람을 느껴요. 간밤에 받은 문자메시지 한 통을 확인하러 아침에 통역사를 찾아오시는 것 보면 얼마나 궁금하고 답답하셨을까 하는 마음에 죄송한 마음도 들고요." 농인들이 이렇게라도 도움을 청할 수 있는 통역센터는 전국에 200곳 가량 설치된 사단법인 <한국농아인협회> 지부다. 그 외에 수화통역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곳은 그리 많지 않다. 방송, 교육, 의료, 법률 등 다양한 분야에서 농인들은 벽을 마주하지만 해결책은 없다. 장애인 복지에 대한 인식이 조금이나마 개선돼 공공기관을 중심으로 수화통역 서비스가 점차 늘고 있는 추세지만 여전히 갈 길은 멀다.
"푸대접받는 수화, 속상해""영국에 복지환경 연수를 갔다가 숙소에서 TV를 켰는데 수화통역 지원을 하더라고요. 통역 화면의 비율이 안 돼도 1/6정도로 컸고 작은 동그라미 화면에 통역사를 가둬놓지도 않았어요. 화면을 덧입혀 훨씬 눈에 잘 들어오고요. 수화는 손동작뿐 아니라 표정과 몸의 방향까지 문법체계에 포함되니 큰 화면이 이해하기 쉽죠."(한나)"우리나라에선 청각장애 자녀의 수화 사용을 극도로 싫어하는 분들이 계세요. 특수교육으로 어떻게든 구화(청각 장애인이 특수교육을 받아 상대의 입술 모양 따위로 그 뜻을 알아듣고, 자기도 그렇게 소리 내어 말하는 방식)를 하게끔 노력하죠. 그러다보니 특수학교 교육도 구화를 쓰는 방향으로 짜이는데 청각장애인들에게 구화 소통은 분명히 한계가 있어요. 수화의 위상이 높아지고 농인의 문화가 인정받아야 하는 이유기도 하죠."(현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