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판 에셀은 진보와 퇴보가 반복하고 '집단의 압박과 개인의 돌파 사이에 심한 모순들이 뒤엉킬지라도' 인류의 진보를 믿는다고 썼다.
EBS
투쟁하면서도 지치지 않은 희망을 소유한다는 것, 패배를 숙명으로 받아들이되 진보가 소명인 삶을 산다는 것. 에셀은 위기에 처하거나, 좌절과 패배를 당할 때면 더욱 강렬한 희망으로 시를 읊고 뜨거운 사랑을 수행했다. 사랑은 궁극적으로 타자와 더불어 사는 삶을 갈망한다. 어쩌면 혁명가에게 필요한 한가지는, 굳센 낭만의 결기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그는 '불꽃 같은 혁명가'가 되었다.
그렇다, 나는 내가 어디서 왔는지 알고 있다!
불꽃처럼 가라앉을 줄 모르는 나는
타오른다, 나를 탕진해버리기 위해.
내가 손에 쥔 것들은 빛이 되고,
내가 방치한 것은 재가 된다.
나는 확실히 불꽃이기 때문이다! _프리드리히 니체, <즐거운 지식> 중에서(본문 36쪽)스테판 에셀은 유럽의 방식으로 살아가려면 두 개의 지구가, 미국의 방식으로 살아가려면 다섯 개의 지구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는 비관적 전망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하나의 지구에서 60억명의 인구가 공존하는 길을 모색하고 가난한 이들을 위한 시스템 구축에 헌신할 것을 강조한다. 그는 '민주주의는 자연 속에 완성된 상태로 존재하지 않는다'고 전제하고 온전한 민주주의의 구축을 위해 투쟁할 것을 요청한다. 그 투쟁의 방식은 분노하고, 희망하고, 사랑하는 것으로 실행될 것이다.
그대여, 멈추지 말고 진보하라!이 책은 자서전이면서도 일종의 유언 같은 책이다. 그러나 책의 갈피마다 흥미롭고 생동하는 열정으로 가득차 있다. 그런 탓일까, 책은 다소 산만해 보이기도 하고 동의하기 힘든 대목도 있다. 하지만 에셀의 불꽃같은 삶을 어찌 한 권의 책으로 담아낼 수 있겠는가. 그가 그토록 강조했던 연대의 부름 앞에, 작은 차이를 고집하며 어찌 홀로 고착될 수 있겠는가. '죽음도 차마 멈추지 못할 진보에 대한 그 간절한 희망과 신념을' 어찌 외면할 수 있겠는가.
역자 목수정이 쓴 대로, 사람들은 에셀을 이상주의자로 불렀지만, 그는 스스로를 현실주의자로 인식했다. 역사의 진화를 명백히 관찰한 결과가 에셀의 현실주의 속에 깃들어 있다. 어쩌면 이상주의와 현실주의는 하늘을 벗삼아 땅을 걷는 혁명가에게 요구되는 자질일지도 모른다. 그의 생전, 진보의 꿈은 실현되지 않았지만 그는 결코 멈추지 않았다. <분노하라>라는 작은 책의 놀라운 성공은, 그 자체로 '비현실적인 진보의 꿈'에 대한 '현실적인 갈망의 표현'이자 희망의 작은 증거일 것이다.
책을 읽으며 한때 '불꽃'같았던 이 땅의 혁명가들의 과거가, 그들의 무기력한 현재가 떠올랐다. 노무현 전(前) 대통령의 죽음을 희화화하고 조롱하는 '일베'의 젊디젊은 청춘들의 야만과 그 이름을 배타적으로 독점하려는 지지자들의 아집은, '노무현 정신'이 꿈꾸던 진보의 세계를 더욱 아득하게 한다. 5·18 광주항쟁을 왜곡하려는 음험한 시도 앞에, 그리고 강정과 밀양 등지에 계속되는 약자들의 투쟁과 그들을 거세하려는 온갖 폭력 앞에, 무관심과 망각의 시간을 견디는 비루한 나의 현실에게 에셀의 위로는 값지다.
결국 좋은 인생은 우리가 축적해온 그 모든 실패에도 불구하고 자신에게 믿음을 갖는 인생이라고.(본문 162쪽)우리의 혁명은 실패한 것일까. 스테판 에셀은 진보와 퇴보가 반복하고 '집단의 압박과 개인의 돌파 사이에 심한 모순들이 뒤엉킬지라도' 인류의 진보를 믿는다고 썼다. 만약 에셀이 이 땅, 우리 곁에 있다면 이렇게 말할 것 같다. 패배는 숙명일지라도 진보는 소명이라고, 그러니 '그대여, 멈추지 말고 진보하라'고, '사랑하고 감탄하며 다시 시작하라'고. 뜨겁게 생동하는 목소리로.
멈추지 말고 진보하라
스테판 에셀 지음, 목수정 옮김,
문학동네, 2013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공유하기
스테판 에셀, 죽음도 차마 멈추지 못한 진보의 꿈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