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댓글 의혹 사건, 국정조사 못한다?

여야 합의했지만 "수사 중인 사건은 제척사유"... 국민들 눈속임 비판 제기될 듯

등록 2013.05.22 08:51수정 2013.05.22 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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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여야가 합의한 '국정원 댓글 의혹 사건' 국정조사는 법률상 실시하기 어려운 조건인 것으로 확인됐다. 여야가 실제 성사되기 어려운 국정조사를 벌이겠다고 합의한 것을 두고 '사실상 국민들을 눈속임한 게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될 전망이다.

특히 민주당은 당시 여당과의 협상에서 국정원 국정조사를 합의한 것을 상당한 성과로 꼽았는데 실제 이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당내에도 적지 않은 충격을 주고 있다. 불가능한 국정조사를 마치 협상의 성과로 강조한 이유가 무엇이냐는 볼멘소리도 터져 나온다. 

당시 여야는 '정부조직법-국회 운영 합의사항' 중 제4번 조항으로 '제18대 대통령 선거과정에서 제기된 국가정보원 직원의 댓글 의혹과 관련 검찰수사가 완료된 즉시 국정조사를 실시한다'고 합의했다. 따라서 다수의 국민들은 내달 19일 이 사건의 공소시효가 끝나는 대로 정치권의 대대적인 국정조사가 실시될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국정감사 및 조사에 관한 법률' 제8조(감사 또는 조사의 한계)에 따르면, "감사 또는 조사는 개인의 사생활을 침해하거나, 계속 중인 재판 또는 수사 중인 사건의 소추에 관여할 목적으로 행사되어서는 아니된다"고 밝히고 있다. 이 사건의 수사와 재판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면 사실상 국정조사는 어렵다는 얘기가 된다.

정청래 "수사·재판 중인 사건, 국정조사 할 수 없어"

 정청래 민주통합당 의원. 사진은 지난 2월 14일 국회 본회의장 대정부 질문 당시 모습(자료사진).
정청래 민주통합당 의원. 사진은 지난 2월 14일 국회 본회의장 대정부 질문 당시 모습(자료사진).남소연

이와 관련, 정청래 민주당 의원은 21일 <오마이뉴스>가 만드는 팟캐스트 '이슈 털어주는 남자'에 출연해, "수사 중인 사건은 국정조사의 제척사유가 된다"며 "수사 중이거나 재판 중인 사건은 국정조사 할 수 없다는 조항이 법률에 나와 있다"고 말했다.

"민주당이 새누리당과 합의할 때 법률적 검토도 없이 합의했다는 것이냐"는 시사평론가 김종배씨의 질문에 정 의원은 "그 합의 자체가 불만스럽다"며 "그 부분은 같은 당원으로서 노코멘트하겠다"고 말을 줄였다.


박범계 민주당 법률지원단장도 <오마이뉴스>와 전화 통화에서 "아주 미세한 영역에서까지 법률적 검토가 필요했었는데 당시 원내지도부가 그 부분을 정확히 보지 못했던 것이 아닌가 싶다"며 "국정감사를 하려면 증인심문 절차를 밟아야 하는데 해당 인물들은 재판이 진행 중이라는 이유로 출석 자체를 거부할 수 있고, 재판부도 출석에 동의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사실상 국정감사가 제대로 성사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우원식 "검찰조사 압박하기 위한 수단"


반면, 당시 원내지도부의 일원으로 새누리당과의 협상에 나섰던 우원식 최고위원(당시 원내 수석부대표)은 "법률 검토로 관련 내용을 알고 있었다"며 "당시 우리가 국정원 사건에 대해 국정조사를 하겠다고 한 건 검찰조사를 압박하기 위한 수단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우 최고위원은 "검찰조사 압박을 통해 여야 합의를 유효하게 만들려고 했던 것"이라며 "노사간 합의도 법률보다 단협안이 우선하는 것처럼 국회도 법률보다는 여야 합의가 우선한다"고 주장했다.

박기춘 전 원내대표(현 사무총장)도 "이 문제와 관련해 당시 이한구 대표와 심도 깊은 논의를 했다"며 "국회에서 법률적으로 불가능하고 물리적으로도 불가능한 일을 정치적 합의로 해낸 게 얼마나 많으냐, 이건 검찰조사가 끝나는 대로 즉시 실시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검찰 조사의 만료 시점에 대해서는 "그걸 내가 어떻게 아느냐"고 반문했다.

"대개의 국민들은 이 사건의 공소시효가 만료되는 내달 19일로 알고 있다"고 묻자 박 전 원내대표는 "그건 선거법과 관련된 것들만 해당되는 것이고 국정조사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며 "원세훈 전 원장의 경우 국정원법으로 처벌된다면 그와 관계없이 계속 수사 중인 사건이 되는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그는 "국정원 국정조사는 국민정서상 여당도 거부하지 못할 것"이라며 "지난 1월 이미 이한구 전 원내대표와 내가 합의한 것인 만큼 현 원내지도부가 얼마나 의지를 갖고 이를 추진하느냐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연이어 폭로되는 국정원 문건... 국정조사 못한다면?

 불법 선거운동 의혹을 받고 있는 국정원 직원 김아무개씨. 사진은 지난 1월 4일 오후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를 받기 위해 서울 수서경찰서에 들어서고 있는 모습.
불법 선거운동 의혹을 받고 있는 국정원 직원 김아무개씨. 사진은 지난 1월 4일 오후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를 받기 위해 서울 수서경찰서에 들어서고 있는 모습.연합뉴스

이 같은 민주당 전직 원내지도부의 입장에 대해 한 법조계 인사는 "민주당이 협상을 잘못한 것"이라며 "검찰 조사가 제대로 안 됐을 경우 민주당의 대비책은 전혀 없는 것이 아니냐"고 반문했다.

민주당 '국정원 헌정파괴 국기문란사건 진상조사특별위원회(위원장 신경민)'도 최근 비공개회의 석상에서 이 문제를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현재까지는 별다른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외부로 이 문제가 알려진 데 대해 상당히 곤혹스러워하는 분위기다.

실제 국정원 댓글 의혹 사건뿐만 아니라 최근에 잇따라 터진 박원순 시장 등 정치인 사찰과 반값등록금 여론 개입 의혹 등 상당한 수준의 국정원 문건이 폭로되면서 국정원이 상당히 조직적이고 체계적이며 광범위하게 국내정치에 개입해온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일고 있는 가운데, 이와 관련 검찰의 수사 여부가 불투명한 상태에서 국정조사마저 못하게 된다면 민간인 사찰 때와 마찬가지로 법률단계에서 표류하다 실종되고 마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만약 법률이 정한 대로 이 문제에 관한 국정조사를 실시할 수 없게 된다면 당장 정치권은 여론의 뭇매를 맞게 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민주당은 국정조사 카드가 살아 있지 않다면 검찰수사가 불충분할 때 이를 대체할 수단 자체를 갖지 못하게 된다. 국정원 국내정치 개입 의혹을 밝혀낼 상당한 동력을 잃게 되는 셈이다. 

파격적인 검찰 수사 행보, 하지만 성과는 없어

압수수색 받는 서울경찰청 '국가정보원 정치개입·대선개입 의혹' 사건을 수사 중인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팀장 윤석열)이 지난 20일 오전부터 국정원 댓글 사건 외압 의혹과 관련해 서울지방경찰청 사이버범죄수사대를 압수수색하고 있다.
압수수색 받는 서울경찰청'국가정보원 정치개입·대선개입 의혹' 사건을 수사 중인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팀장 윤석열)이 지난 20일 오전부터 국정원 댓글 사건 외압 의혹과 관련해 서울지방경찰청 사이버범죄수사대를 압수수색하고 있다.권우성

무엇보다 검찰 수사가 만족스럽게 매듭지어질지도 의문이다. 물론 검찰은 지난 2005년 '안기부 X파일' 사건 이후 두 번째로 국정원에 대한 압수수색을 실시하는 등 파격적인 수사 행보를 보이고 있지만, 현재로서는 수사 성과로 꼽을만한 내용이 전혀 없다.

민주당 안에서는 벌써부터 "검찰수사가 산으로 가고 있다"며 "이대로 검찰수사를 방치하면 국정원 사건의 진실은 물거품으로 끝날 것"이라는 비판도 제기된다.

정청래 의원도 "검찰조사 발표에 크게 기대할 게 없다"며 "검찰이 수사의지가 있다면 당연히 원세훈 전 원장을 국정원법과 선거법 위반으로 기소해야 하는데 그 부분 믿을 수 없다"고 말했다.

특히 정 의원은 "원 전 원장을 국정원법뿐만 아니라 선거법 위반으로 처벌하게 된다면 박근혜 대통령에게도 상당히 부담될 것"이라며 "벌써 SNS 상에서는 박근혜 대통령의 당선이 유효한 것이냐, 불법적인 선거개입과 부정선거로 당선된 거 아니냐는 비판이 일고 있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정 의원은 "대통령이 곤혹스러워할 일을 과연 검찰이 할 수 있겠느냐"라며 "검찰도 청와대 눈치를 보고 원 전 원장에 대해 국정원법으로만 기소하려고 하는 게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이어 그는 "원세훈 전 원장을 선거법으로 기소하는 순간 박근혜 대통령이 부정선거로 당선됐다는 것으로 직결되기 때문에 검찰은 그 부분을 놓고 심각한 고민에 빠졌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특히 정 의원은 "박근혜 대통령이 국정원의 불법적인 도움으로 당선된 것은 맞기 때문에 이와 관련돼 박 대통령의 입장 표명이 분명히 있어야 한다"며 "검찰이 건드릴 수 없는 영역은 박근혜 대통령 스스로 책임져야 할 몫"이라고 진단했다.

한편, 전병헌 민주당 원내대표는 21일 국가정보원의 잇따른 정치개입 문건 폭로와 관련, "검찰수사가 마무리되는 즉시 국정조사를 하겠다는 약속을 새누리당은 철저히 지키라"고 압박했다.
#국정조사 #국정원 댓글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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