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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몇 권 샀다. 상자를 열고 차곡차곡 쌓인 책을 책상 옆 책꽂이에 채워 넣으면서 슬며시 행복감에 젖었다. 이번에는 '고전'이라 불리는 책들이 더러 섞여 있었다. 마지막으로 꽂아 넣은 책은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이었다. <데미안>을 꽂고 들여다보다 문득 아버지의 말이 생각났다.
"문학 공부한다는 애가 이 책을 안 읽어봤다면 좀 부끄러운 것 아니냐."
그 뒤로 책 속 인물에 대한 장광설을 늘어놓았던 것 같은데, 내용은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내 기억 속에 맴도는 것은 이 책에서 저 책으로 이어지는 아버지의 '독서 이야기' 발자국 정도다.
종종 아버지는 당신이 읽었던 책들 가운데 몇몇을 엄선해 소개해주기를 좋아했다. 예컨대 콘스탄틴 게오르규의 <25시>나 최인훈의 <태풍>같은 책들. 추천받은 책들을 호기심에 한두 장 넘겨보긴 했지만 솔직히 내게는 재미가 없었다. 그래서 추천해준 책을 읽어보라는 말에 어물쩍 넘기기 일쑤였다.
지금까지도 아버지가 추천해주는 책들은 대개 나의 입맛에는 맞지 않다. 그러나 아버지와 딸이 서로가 읽은 책에 대해 이야기하고, 핵심 쟁점으로 토론을 벌이는 일은 기쁘고 벅찬 일이다. 가끔은 주파수가 맞는 책이 있어 함께 감동받은 장면을 논하거나, 추천에 성공하는 경우도 있다. 확실히, 책을 좋아하는 성향은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것이 틀림없다. 책에 대해 진지하게 말하는 아버지의 얼굴에서, 나는 한 청년의 소박한 꿈을 읽는다.
언젠가 아버지에게 꿈을 물어본 적이 있다. 그럴 때마다 당신은 민망해하며 꿈은 무슨, 하고 대답을 피했다. 집요하게 말꼬리를 잡고 물었다. 끝까지 대답을 빙빙 돌리다, 졌다는 듯 아버지는 말했다. 책방 주인. 사람들이 많이 드나드는 대형 서점이 아니라, 집집 새의 골목에 하나 쯤 있을 법한 작은 동네 책방 주인. 손님이 없어도 좋다. 단지 사방이 책으로 둘러싸인 그 공간에 파묻혀 앉아 한 권 한 권 읽어가며 시간을 보내는, 그런 일이 젊은 시절 아버지의 꿈이었다. 벌써부터 청년의 손끝에 스쳐갔을 종잇장이 눈에 선연하다.
청년은 작은 공장에 다녔는데, 퇴근을 하고 나면 집으로 돌아가는 길목에 있는 책방에 들르곤 했다. 책방을 지키는 여주인 한 명 빼고는 인적이 드물었던 공간. 청년은 책들이 진열된 코너마다 발길을 옮기며 이 책 저 책 헤집어보았다. 월급을 받으면 그 중 반은 책을 사는데 쓰였다. 청년의 방에 책들이 가지런히 줄을 서서 놀러왔다. 그리고 오래도록 그 자리에 남아 청년의 벗이 되고, 스승이 되고, 고민 상담자가 되었다. 책을 사모아 읽고 자리에 꽂아두는 것이 청년의 낙이었다.
청년에게는 얕은 패기 내지 치기 어린 자신만의 '잣대'라는 게 있었다. 작가 누구는 문체가 너무 어지럽고, 작가 누구는 내용이 너무 진부하다는 식의. 그래서 소위 '겉멋'을 부리는 데 유용한 외국 소설들만 즐겨 읽었다. 그러다가 차차 다른 소설도 읽어보고, 시도 읽어보면서 청년은 자신의 독서 취향을 깨달아갔다. 그래도 책방을 들를 때마다 아쉬움이 진하게 남았다. 자신의 마음을 '탕' 하고 때리는 작품이나 작가를 만나지 못했던 탓이다.
그러던 어느 날, 책방에 들러 책을 고르고 있는데 여주인이 다가왔다. 그리고 책을 하나 건넸다. 이 책 한 번 읽어보라는 것이었다. 청년이 워낙 책방에 자주 들렀기에 여주인은 그의 취향을 잘 알고 있었다. 이번에 등단한 신인 작가의 작품인데 네가 좋아할 것 같으니 읽어보라고 권했다. 썩 내키지는 않았지만 권해주니 사들고 오기는 했다. 자기 전, 벽에 기대 앉아 여주인이 권해준 책을 펼쳤다. 청년은 놀랐다. 외국 소설만 뒤적이며 한국 작가의 작품에 큰 재미를 느끼지 못했던 터에, 자신에게 끼워 맞춘 듯 들어맞는 소설이 등장한 것이다. 그 신인 작가가 지금은 우리나라의 대작가로 알려진 이문열이다.
운명 같은 작가를 만난 청년은 이문열의 신간이 떴다 하면 언제고 책방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기쁜 마음으로 책을 샀다. 두고두고 읽었다. 그렇게 쌓아두고, 꽂아두고, 끼워두었던 책들은 지금 없다. 일에 치이다보니, 그리고 생활의 고달픔이 청년을 베어 물다보니 자신도 모르게 책들이 곁에서 사라진 것이었다. 그 책들이 어디에 가버렸는지는 아직도 기억나지 않는다고 청년은, 아니 아버지는 말했다.
새 책을 쓰다듬다 거리를 약간 두고 책꽂이를 바라본다. 적당히 배가 부를 정도로 꽂힌 책들이 빙긋 웃는다. 괜히 뿌듯한 기분에 나도 배시시 웃어보지만, '아버지'란 이름으로 자란 청년의 씁쓸한 얼굴이 생각나 웃고만 있기가 미안해진다. 다시 새로 산 <데미안>으로 시선이 간다. 아직 읽지 못한, 그래서 아버지에게 꾸지람을 들은 고전. 이름과 유명세는 알지만 정작 내용은 모르는 고전처럼, 이 시대의 아버지가 힘들다는 상투적인 표현은 알았어도 내 아버지란 책의 내용은 모르고 살았다. 아버지에게도 소위 '문청'이라 자부했던 시절이 있었음을, 그에 걸맞은 소박한 꿈도 있었음을, 그러나 지금은 저 상투적인 표현으로 수렴되고 말았음을. 나는 전혀, 몰랐다. 알고 싶은 생각마저도 없었다.
읽지 못한 책들을 헤아리기 시작한다. 읽어보았지만 기억이 희미한 책들도 함께 헤아린다. 바쁜 일정들이 훅훅 지나가고 나면, 헤아렸던 책들을 빼내 읽고 싶단 생각을 한다. 청년 시절 아버지가 그 시절의 감촉으로 했어야 할 독서를, 대신 해주고 싶다. 어떤 책 하나를 읽는 데에 있어 나이가 무슨 상관이냐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분명 사람마다 축적된 시간이 내뿜는 향기가 다르듯, 그 시간들이 지닌 감각 또한 다를 거라 믿는다. 청년이었던 아버지를 대신해 청년인 내가. 아버지를 그리며 독서를 한다. 첫 장은 시작되었다. 또 다른 청년은 자박자박 걸음을 걷듯 활자들을 읽어나갈 것이다. 지난 날 어느 청년의 못다 한 꿈을 상기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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