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박2일 마음과 함께 하는 여행

[길 위에서 쓰는 편지 39] 경남 밀양에서

등록 2013.05.28 18:24수정 2013.05.28 1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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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형이'를 찾습니다.
'일형이'를 찾습니다. 이명주

5월 25일


모처럼 사는 지역을 벗어나 경남 밀양으로 여행을 갑니다. 부산역에 도착. 만남과 헤어짐이 반복되는 장소 특유의 부산함이 설레임을 더합니다.

역으로 들어가는 에스컬레이터 앞에 사람 크기의 큰 풍선이 눈에 띕니다. 가까이서 보니 잃어버린 아이를 찾는 '착한 릴레이'를 위한 것입니다.

3년 전 잃어버린 '유형이'란 아이와, 유형이를 애타게 찾고 있을 아버지 사진입니다. 행여 우리 곁에 있을 지 모르니 잘 기억해둬야겠습니다.

 기차카페 안
기차카페 안 이명주

부산에서 밀양까지 기차로 40분. 서서 가도 무방한 거리라 입석표를 끊었습니다. 기차카페에 손수건을 깔고 앉으니 한층 여행 기분이 납니다. 즐겁습니다.

 밀양전통시장 쇼핑
밀양전통시장 쇼핑이명주

밀양에 도착해 가장 먼저 밀양전통시장 구경을 했습니다. 갖가지 먹거리와 모자·옷가지들을 구경하다 5000원짜리 밀짚모자를 샀습니다. 챙이 넓고 시원해 한낮 자외선을 피하는 데 이만한 게 없습니다. '전 소중하니까요~!'


 영남루
영남루 이명주

시장에서 길 건너 바로 있는 영남루입니다. 아름다운 야경으로 유명한 곳인데, 신라시대에 처음 지어져 이후 파란만장한 세월 탓에 여러 번 개보수됐다 합니다.

신발을 벗고 대청마루에 앉으니 풍경도 바람도 그만입니다. 도심 속 박제된 문화재가 아닌, 시민들에 개방해 사람들이 오가는 살아있는 공간이라 더 좋습니다.


 박시춘 선생 생가
박시춘 선생 생가 이명주

영남루 안쪽 끝에 있는 박시춘 선생 생가입니다. 1913년부터 1996년까지 생존한 한국 가요계의 거목이죠. 선생이 작곡한 <신라의 달밤> <이별의 부산정거장> <럭키서울>은 저도 어릴 적 들어 기억이 납니다.

사람을 본 적 없는데 그 사람이 만든 노래를 안다는 건 대단한 일 같습니다. 마당에는 <애수의 소야곡>이 "띵띵띠잉~ 띵띠리띵띵~" 하며 흐르고 있습니다. 비석에 그려진 악보 속 그 이노흥 선생이 쓴 가사 또한 절절합니다.

'운다고 옛 사랑이 오리오마는 눈물로 달래 보는 구슬픈 이 밤 고요히 창을 열고 별빛을 보면 그 누가 불어주나 휘파람 소리….'

 마음씨도 고운 사과장수 아주머니
마음씨도 고운 사과장수 아주머니 이명주

밀양전통시장·영남루를 보고 시외버스터미널에서 표충사행 버스를 탔습니다. 아니 탔다고 생각했습니다. 정신없이 졸다 운전기사에 남은 거리를 물었더니 "거기 안 가는데요"라고 했습니다. 분명 2번 승강장에서 탔는데 어찌된 영문인지 모르겠습니다.

여튼 내려서 보니 '얼음골' 근처였습니다. 한여름에 얼음이 어는 진귀한 명소입니다. 온김에 보고 가자 싶었지만 걷기엔 무리였습니다. 도로변 사과장수 아주머니에 조언을 구하니 멀기도 하거니와 지금 가면 볼 게 없다고. 얼음골 얼음은 한여름, 그러니까 7~8월이 돼야 언다고 했습니다.

그나마 갈 곳도 잃었으니 버스 기다릴 일밖에 할 수가 없습니다. 버스는 30분 후에나 올 예정. 이런 사정을 뻔히 아는 사과장수 아주머니가 건너와 사과를 먹으라고 했습니다. 됐다고 해도 얼른 오라고 손짓을 했습니다. 더운 날씨에 장사도 안 되는 것 같은데 그 고운 인심이 어디서 나올까 싶었습니다.

 버스를 기다리며
버스를 기다리며 이명주

금곡이란 곳에서 다시 버스를 기다리며 그림을 그렸습니다. 최근 그림에 취미가 생겨 기회될 때마다 그리고 있습니다. 나이들며 '그냥 좋아서' 하는 일이 점점 줄어드는 것이 아쉬워 시작했습니다.

정면 중화반점 옆으로 황제다방·처녀다방·어우동식당이 보입니다. 이름들이, 또 그 조합이 재미있어 혼자 웃습니다.

 숙소
숙소이명주

버스 종점인 표충사 인근에 숙소를 잡았습니다. 다음날 가려는 바드리 마을과 가깝기도 하고, 표충사 역시 유서깊은 아름다운 사찰이라 아침에 들러보려고요. 1층 가운데가 제가 묵는 곳입니다. 제법 너른 방을 마음 좋은 할머니가 3만 원에 줬습니다.

가격보다 다정한 주인 할머니가 좋아 추천합니다(직접 어디라 말할 수는 없고…). 표충사 버스정류장 놀이터 옆, 이름이 '로'로 시작하는 펜션입니다. 할머니가 "절대 3만 원에 묵었다 말하지 말랬"으니, 혹 오셔서 '이미 알고 왔다'라고 하진 마시길.

 '막걸리 맛배틀'
'막걸리 맛배틀'이명주

자, 여행하면 또 이 맛이지요. 고향 내려와 맛을 들인 부산 생탁과 오늘 처음 본 밀양 생막걸리입니다. 지역의 명예를 건 '맛배틀' 시작입니다. 가운데 김치는 주인 할머니가 주신 것입니다.

아…. 시음 결과 부산 생탁의 압승입니다. 물론 제 입맛이니 절대 평가는 아니고요. 그리고 탈락자는 밀양 생막걸리가 아닌, 할머니표 김치입니다! 주실 때 "이 김치 맛이 없을낀데~" 하고 주셨지만, 맛이 없어도 너~무 없습니다.

 휴식
휴식이명주

5월 26일

아침이 밝았습니다. 숙소 앞 나무의자에 앉아 햇살과 바람 맞으며 책을 읽습니다. 들를 곳이 여럿이라 서두를까도 고민했지만, 돌연 그럴 필요가 없음을 깨달았습니다.

흔히들 '마음대로 한다'고 하지만 그게 쉽지 않습니다. 여유를, 자유를, 나를 찾아온 여행에서마저 습관처럼 서두르고 의무감에 움직일 때가 종종 있습니다. 일부러 오래 앉아 마음에 관해 생각했습니다.

 표충사에서
표충사에서 이명주

표충사입니다. 654년에 원효대사가 삼국통일을 기원하고자 창건했다는데요. 절도, 절을 둘러싼 산세의 기운도 너무 맑고 푸근했습니다. 온몸을 휘감는 바람과 귓속 한가득 울리는 풍경소리에 영혼까지 시원해지는 기분입니다. 이런 청정한 휴식이 참으로 오랜만이었습니다.

 표충사에서
표충사에서 이명주

자, 이제 진정 맘껏 쉬었습니다. 다음 행선지는 요즘 초고압 송전탑 공사 강행으로 다시금 몸살을 앓고 있는 바드리 마을입니다(마을 주민도 한전 직원도 "서로 못할 짓" 기사로 이미 현장을 보여드렸습니다).

 신건희 님 소원돌
신건희 님 소원돌이명주

스물한 번째 소원돌 주인은 대구 달성군에 사는 신건희(35) 님입니다. 표충사 영정약수 앞에서 '태어날 둘째 아기 건강과 남편 분 하시는 일 잘 되게 해달라'는 님의 소원 빌었습니다.

영정약수에는 옛날 중병에 걸린 한 왕의 아들이 이 물을 먹고 건강을 되찾았다는 전설이 있습니다. 부디 소원 이루시길 바랍니다.

※ 소원돌 프로젝트란 ?
본 프로젝트는 고향 돌아와 게스트하우스를 열고자 소원하던 지난 겨울에 시작, 제 행복한 여정 안에서 다른 이의 소원도 함께 이뤄지길 빌어드리는 소박한 마음 보시입니다.

※  소원돌 접수방법
오마이뉴스 쪽지나 페이스북 메시지(/2012activist) 또는 gaegosang@naver.com 본인 메일로 연락처, 사는 곳, 나이, 이름, 소원 하나를 전해주세요.

찾는 즉시 소원돌 인증샷을 보내드리며, 해당 사진은 이제 현실이 된 제 게스트하우스 '소원벽'에 걸어둡니다.

 '소원벽'
'소원벽'이명주


덧붙이는 글 필자는 서른다섯 살이던 지난해 '진짜로 원하는 삶'을 살고자 결심하고, 현재는 고향에서 작은 여행자의 집을 운영하며 생계형 알바, 여행, 글쓰기, 그림 그리기 등을 병행하고 있습니다. (facebook /2012activist)
#표충사 #밀양 #밀양전통시장 #부산역 #부산생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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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보니 삶은 정말 여행과 같네요. 신비롭고 멋진 고양이 친구와 세 계절에 걸쳐 여행을 하고 지금은 다시 일상에서 여정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바닷가 작은 집을 얻어 게스트하우스를 열고 이따금씩 찾아오는 멋진 '영감'과 여행자들을 반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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