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렌체미켈란젤로 광장에서 바라 본 피렌체 풍경
김준식
피렌체를 조망하기 위해 일행은 미켈란젤로 언덕에 올랐다. 피렌체 시가가 한 눈에 들어오는 그 언덕 위에는 비록 모조품이기는 하지만 다비드 상이 서 있었다. 구약성경의 영웅적 인물인 그는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으로 통일한 최초의 왕이었다. 그의 아들이 바로 솔로몬이다.
언덕에서 보이는 둥글고 붉은 돔은 바로 피렌체의 두오모이다. 아르노 강을 사이에 두고 많은 다리가 놓여 있는데 그 중 특이한 것은 베끼오 다리다. 지붕이 있는 이 다리는 아르노 강을 사이에 두고 있었던 베끼오 궁의 관리들이 비를 맞지 않고 건너기 위해 지붕을 씌웠는데 그 후 가장 아름다운 다리로 남아 2차 대전 중 독일군의 공습도 피해 우리가 지금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지금은 보석상들이 가득 들어서 있다 한다.
일행은 걸어서 시뇨리아 광장에 도착했다. 서양 어디나 모두 비슷하지만 이들은 모두 상(像)을 좋아한다. 광장에 많은 형상을 만들어 놓고 그것을 봄으로서 뭔가 문화적 일체감을 느꼈던 모양이다. 여기도 예외가 아니어서 언덕에서 보았던 다비드상이 또 있고 그 옆으로 헤라클레스, 페르세우스, 페르세포네, 아폴론 등의 신들이 다양한 포즈로 서 있었다. 이런 조형예술은 동양, 특히 우리나라의 정적이고 관조적인 문화와 반대편에 있는 것으로서 우리에겐 다소 어색한 면도 없지 않다.
85m 높이의 조토의 종탑은 가히 압도적이었는데 여러 번의 시도 끝에 완성된 것이라 한다. 두오모의 앞에는 산 조반니 세례당이 있었는데 단테가 세례를 받은 이곳의 정문 조각은 미켈란젤로가 천국의 문이라고 칭송할 만큼 정교하고 아름다운 것이었지만 지금은 모조품이어서 그런지 별다른 감흥을 주지 못했다.
골목골목을 지나 르네상스의 주인공 단테의 생가가 있었다. 그곳에 단테가 태어났다는 사실이 뭐 대수일까만 그곳에 특별한 의미를 두는 것은 후세 사람들의 순수하거나 혹은 상업적 의도로 보일 뿐이다. 우리가 아는 단테는 단지 '신곡'이라는 불후의 저작을 남긴 문학가로 알고 있지만 사실 단테는 정치가이며 군인이며 외교관이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삶을 망명자로 살았고 죽음도 망명지에서 맞이했다 한다.
다시 몇 골목길을 돌아 이제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열다섯 때 처음 피렌체에 와서 살았던 집을 본다. 참 무의미한 일인듯 싶었지만 그의 불행했던 어린 시절의 삶이 스쳐간 흔적을 보면서 르네상스를 완성한 위대한 천재의 유년기가 결코 행복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었다. 공증인의 서자로 태어난 그가 불세출의 인물로 성장하는데 이 피렌체라는 도시가 크게 작용했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메디치가피렌체를 돌아보며 도시 국가였던 피렌체 공화국의 실질적 지배자였던 메디치가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15~16세기 피렌체공화국에서 가장 유력하고 영향력이 높았던 시민 가문이며 공화국의 실제적인 통치자였다. 학문과 예술을 후원하여 르네상스시대가 피렌체에서 열리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이 가문은 토스카나 지방에서 농사를 짓던 선조 몇몇이 아무래도 성공하기 위해서는 농사보다는 그 시대에 막 발전하기 시작한 상업에 종사하는 편이 낫겠다는 판단 하에 가까운 상업도시 피렌체로 향한 것이 이 가문의 성공신화 출발점이다.
그 뒤 무역업과 은행업을 통해 부를 키운 이 가문은 교황청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세력을 확장하여 거의 400년 가까이 피렌체를 지배했다. 이 가문이 유명한 것은 그들이 문화와 예술을 장려하여 인구 300만의 피렌체를 세계적인 예술의 중심지로 만든데 있다. 그렇다면 메디치 가문이 수백 년에 걸쳐 예술가들을 후원한 결과 얻게 된 엄청난 양의 예술품은 어떻게 되었을까? 가문의 마지막 계승자 루이사는 메디치 가문의 모든 예술품을 토스카나 대공국과 피렌체에 기증하도록 유언을 남겼고, 그 결과 일체의 예술품들이 도시 밖으로 유출되지 않아 오늘날 피렌체는 세계의 관광객이 줄을 잇는 명소가 되었다.
문득 우리의 현실을 이러한 역사와 비교해보니 우울해졌다. 타의에 의해 우리의 엄청난 문화재가 외부로 유출되고 소실된 반면 후손들의 무지로 인해(자의에 의해) 우리나라 밖으로 반출된 문화재가 얼마나 많은가? 영국의 대영박물관과 미국의 스미소니언 자연사 박물관,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 그리고 세계 각처의 유명 박물관에 전시된 우리의 문화재와 피렌체의 문화재는 기막힌 대조를 이루고 있는 듯하다.
기적의 피사피사는 11세기 말에 제노바·베네치아와 대립하는 강력한 해상공화국으로서 번영하였다. 13세기에 이르러 제노바에 패하였으나 그 후에도 문예의 중심지로서 번창하여, 갈릴레이도 이곳 대학에서 공부하였다. 아르노 강 하구 부근에 있는 도시로서 도로·철도 등 교통의 요지이며 기계공업을 비롯한 많은 근대공업, 대리석 가공업 등이 성하다. 주변 농업지대에서는 포도·올리브·곡물 등의 재배와 목축이 활발하다. 특히 지나는 길가 어디든 대리석 가공 공장이 있었는데 멀리 보이는 산 전체가 모두 대리석이라 하니 이 나라 사람들은 조상 복이 참 대단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