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트페테르부르크의 카잔성당. 성모 마리아에게 축원을 비는 줄이 길게 늘어서 있다.
예주연
언제부턴가 관광객 외에는 잘 찾지 않는 곳이 되어버린 유럽의 오래된 성당들과 달리 러시아 정교회에는 성모 마리아에게 축원을 비는 줄이 길게 늘어선 등 신실한 신자들로 가득 차 있었다. 공산주의 체재 아래 종교가 오랫동안 금지되었기에 그 반동의 힘이 아닌가 생각한다. 어느 도시나 중심광장에는 그 도시를 대표하는 교회와 이들을 억압했던, 그러나 이제는 힘을 잃은 혁명의 상징물들이 함께 놓여 있곤 했다. 레닌의 동상이나 혁명전쟁에서 죽어간 이름 없는 용사들을 기리고 러시아의 영원한 영광을 바라는 '꺼지지 않는 불' 같은 것들.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는 한 신혼부부가 소비에트 시절부터 내려온 전통대로 '꺼지지 않는 불'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는 모습을 보기도 했고, 이르쿠츠크에서는 불을 지키는 군인들이 교대행진을 하는 모습을 보기도 했다. 하지만 그들의 함박웃음과 늠름한 자태에도 불구하고 왠지 쓸쓸한 분위기는 어쩔 수 없었다. 거기에 우리가 있었다. 영원할 줄 알았던 사랑이라는 혁명의 불은 꺼지고 재 같은 찌꺼기 감정만을 가진 S와 나.
각자 나라에서 러시아 여행을 준비하다 계획이 틀어지면서 우리는 헤어지게 되었다. 하지만 지난 5년을 정리하기에 먼 거리는 한계가 되었다. 하고 싶은 말은 많았지만 어떻게 시작해야 좋을지 몰라 나는 겨우 값비싼 국제전화를 걸어놓고는 그의 숨소리만 들으며 한참을 울기도 했다.
그렇게 우리는 이별 여행을 결정하게 되었다. 만나기만 한다면 얼굴을 맞대고 밤새도록 모든 걸 다 얘기할 수 있을 거라고, 모든 걸 이해하고 이해받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름다운 이별이란 환상일 뿐이었다.
처음 와 본 나라에서 관광을 겸해야 했기에 우리의 신경은 바짝 곤두서 있었다. 첫날 상트페테르부르크 날씨는 양호했지만 러시아의 겨울은 역시 러시아 겨울이었다. 거기다 물가가 비싸서 특히 카페나 레스토랑의 가격은 상상을 초월해 아무데나 들어가 몸을 녹일 수도 없었다. 우리는 한 관광지에서 다른 관광지까지 쉬지 않고 옮겨 다녔다.
길을 찾으면서도 길보다는 서로에게서 시빗거리를 먼저 찾아내 말다툼을 했다. 눈보라가 몰아치는 추운 길바닥, 바쁘게 오가는 사람들 틈에서 한참을 대치하기도 했다. 어렵게 닿은 관광지에서는 서로를 모른 척 따로 구경을 하고 나왔다. 겨우 시간을 내 자리를 잡더라도 마찬가지였다. 앉자마자 자기 이야기를 하기에 바빴고, 상대는 쉬지 않고 그것을 반박했다.
내 행동에 대한 그의 말에 순간 말을 잃고...한때 내가 내 안에 있는 생각들을 한 차원 높은 수준으로 표현한다고 느꼈던, 경외심을 가지고 들었던 그의 말들이 다 헛소리처럼 느껴졌다. 흥분해서 과장된 표정을 짓는 것도, 얼굴을 흔들어대는 것도 꼴 보기 싫었다. 급기야 나는 손으로 귀를 틀어막고 눈을 질끈 감기에 이르렀다. 그런 나에게 S가 말했다.
"내가 지금 너를 달래려 한다면 너는 짜증을 내겠지. 물론 잠자코 있는다 해도 마찬가지겠지만."다시 아니라고 무조건 반박해야 했지만, 나는 순간 말을 잃고 말았다.
러시아에서 S를 만난 이후로 나는 계속 괜한 트집을 잡고 있었던 것이다. 아직 정리하지 못한 내 마음을 알아달라고, 풀어달라고…. 하지만 S는 더 이상 나를 무조건 이해해야 하는 또는 내 식으로 맞춰야 하는 내 사람이 아니었다. 이 사실을 인지하자 그의 사소한 단점들 대신 그의 전체적인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소비에트가 무너지면서 공산주의는 실패라는 조롱의 대상이 되었다. 하지만 러시아 붉은 광장엔 여전히 레닌의 묘가 있으며, 도시마다 최고 중심거리 이름은 마르크스다. 스탈린의 과오는 척결하면서도 볼셰비키 혁명의 역사와 마르크스 사상은 존중하는 것이다. 나도 찌꺼기 감정을 털고 S를 그 자체로 인정하고 그와의 사랑을 추억으로 묻을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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