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에 분노하면 진보편? 그랬다면 우리는...

[서평] <실패한 우파가 어떻게 승자가 되었나>

등록 2013.06.12 14:36수정 2013.06.12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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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패한 우파가 어떻게 승자가 되었나> 책표지.
<실패한 우파가 어떻게 승자가 되었나> 책표지.갈라파고스
2008년 미국 금융위기는 분명 부시행정부의 책임이었다. 그런데 2010년 부시가 속했던 공화당은 수십 년 동안 치러진 미국 의회 선거에서 역사상 가장 큰 승리를 거두었다.

2012년 이명박 정권은 바닥을 기었던 지지율만큼이나 실패한 정부였다. 그러나 그해 치러진 총선과 대선에서 여당인 새누리당이 승리를 거두었다. 실정을 투표로 심판한다면 민주 선거의 존재이유를 무색하게 하는 이런 일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대중은 이렇게 앞뒤 관계도 이해를 못하는 어리석은 존재란 말인가?


토마스 프랭크의 <실패한 우파가 어떻게 승자가 되었나>는 그런 모순적인 현실을 파헤친 책이다. 2010년 미국의 의회선거에서 실패한 공화당이 어떻게 압승을 거뒀는지를 분석한 이 책은 대중이 아니라 정치집단에 문제가 있음을 말해준다. 즉, 좌파는 무능했고, 그에 반해 우파는 유능하기보다는 교활했다. 이 차이가 분명해서 현실을 뒤바꿔 버렸다.

실패한 공화당, 새누리당이 선거에 이긴 이유

분명 2008년 금융위기는 1929년 대공황을 연상시켰다. 우파의 상징인 '자유시장'은 더 이상 신뢰할 게 아님이 명백해 졌고, 1932년 대 공황기에 그랬던 것처럼 왼쪽으로의 방향전환은 필연으로 여겨졌다. 프랭클린 루스벨트의 역할은 새로 선출된 버락 오바마의 몫이었다.

"정치평론가들은 공화당이 2010년 양원 선거에서 승리할 확률은 '제로'라고 확신했으며, 부시행정부시절의 재앙이 곧 보수주의 마지막을 가져올 것이라고 예측했다. 역사를 알고, 금융 위기의 원인을 이해한다면 이는 너무도 당연한 논리적 귀결이었다.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로 흘러갔다. 오히려 공화당은 자유방임주의 유토피아라는 깃발을 더욱 높이 치켜들었고 선거에서 대승을 거두었다." (15쪽)

왜, 이런 비합리적인 일이 발생한 것일까.


미국 민주당, 구제 금융에 대한 '대중의 분노' 가볍게 보다

'금융위기가 누구의 책임이냐'가 2010년 선거의 쟁점이었다면 민주당은 2008년 대선에 이어 또 다시 승리를 거두었을 것이다. 하지만 상황은 변하고 있었다. 대중들은 이해하기 힘든 금융위기의 원인보다는 눈 앞에서 펼쳐지고 있는 '구제 금융'에 분노하고 있었다.


"금융대재앙을 불러일으킨 장본인은 월가였다. 그런 월가에 보통 사람이라면 절대로 받지 못할 정부 차원의 어마어마한 지원이 주어졌다. 게다가 2009년 3월 정부로부터 구제받은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종합금융회사 AIG의 경영진이 한 부서에 무려 1억 65백만 달러를 보너스로 나눠주었다. 그것도 사실상 파산을 가져다 준 파생상품을 만들어낸 부서에..."(57쪽)

"경을 쳐도 시원찮을 마당에 정부는 국민의 혈세로 막대한 '구제 금융'을 제공했고, 월가는 반성은커녕 보너스 파티를 벌였다. 대중들이 분노하는 것은 당연했다. 문제는 오바마 정부가 이런 분노의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금융위기라는 재난 상황을 물려받은 오바마 정부로서는 이를 해결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판단했는지, 국민들의 분노보다는 재계와 원만한 협의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모습을 보이려 애썼다. 그리고 오바마와 민주당은 당시 주요한 쟁점이었던 구제금융, 경기부양책, 건강보험개혁 등에 있어서도 전문성에 기대어 기술적 설명만 내놓았다. 대중들에게 이런 모습들은 부자들의 힘 앞에 타협하려는 것으로 보였다." (208~9쪽)

미국 우파, 구제 금융에 대한 분노 이용해 부흥하다

 오바마를 히틀러에 비유해 탄핵하라는 티파티 홈페이지 화면 일부. 티파티는 2010년 의회선거에서 공화당의 압승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그러나 지나치게 강경 보수적 태도로 2012년 대선에선 중도 유권자들이 공화당에서 멀어지게 했다는 평도 듣고 있다.
오바마를 히틀러에 비유해 탄핵하라는 티파티 홈페이지 화면 일부. 티파티는 2010년 의회선거에서 공화당의 압승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그러나 지나치게 강경 보수적 태도로 2012년 대선에선 중도 유권자들이 공화당에서 멀어지게 했다는 평도 듣고 있다. 티파티 홈페이지

집권 여당이 실망을 주고 있는 사이, 우파 쪽에서 대중의 분노를 공감하는 설명이 나왔다.

""실패한 자들은 실패하도록 내버려 둬라." '티파티'라는 이름의 행사로 결집한 우파들의 슬로건이었다. 여기엔 실패한 월가는 실패하도록 내버려두라는 구제금융에 대한 분노와 함께 우파의 자유주의 철학이 집약되어 있었다." (75쪽)


결국, 대중들의 분노는 '티파티' 집회를 통해 타오를 수 있었다.

"'티파티' 행사를 통해 부흥한 우파는 윌가에 대한 분노를 워싱턴으로 돌렸다. 그들은 '지배계급'이라는 말을 만들었다. 누구든 정부에 관계되는 사람이면 '지배계급'이었고, 그 반대편에 평범한 사람들인 '국민계급'이 있었다. 구제 금융에서 보듯이 윌가나 정부나 가진 자들끼리 해 처먹는 한통속이고, 이들은 자신들의 지배력을 넓히기 위해 규제를 강화해서 국민들의 자유를 빼앗으려 한다고 위기감을 드높였다." (174~7쪽)

"이 위험에서 미국을 구할 것은 자유시장의 신이었다.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은 정실 인사와 구제 금융으로 초토화된 미국에 공정함이라는 가치가 다시 되살아나게 해줄 것이었다. 더불어 그것은 월가처럼 실패한 자들은 실패하게 둘 것이며, 보상은 시장의 따듯한 눈길 아래 성과에 따라 이루어지게 하고, 다시금 정의와 안정이 승리를 거두게 할 것이라고 역설했다." (94쪽)

우파에 대한 분노, 진보에 대한 지지로 안 이어져

"그런데 이렇게 티파티를 중심으로 한 신흥 우파가 억지스런 주장을 펼칠 때 민주당은 당하고만 있었을까? 사실 당하기보다는 무시했다. 티파티 운동은 대단히 요란하면서 유치했기에 맞서기보다는 무시해버리는 게 낫다고 생각할 만했다. 민주당은 티파티 운동에서 유치한 광기만 보았지만, 수 백만의 평범한 사람들은 월가에 대한 분노를 공감하고 있었다. "(217쪽)

"미국의 우파는 '티파티'를 앞세워 구제 금융에 대한 분노를 평범한 사람과 '정부 엘리트'간의 대결로 만들었고, 분노하던 대중들은 당연히 평범한 사람들의 편에 섰다. 그건 정치적으로 집권 여당인 민주당에 반대하고 공화당에 투표하는 것으로 귀결되었다. 그 결과 전통적으로 진보적이던 매사추세츠의 유권자들마저 아주 열정적으로 무명의 공화당 후보에게 표를 던져 버렸다. 미국 노총의 한 인사는 매사추세츠 선거를 '노동자 계급의 반란'이라 이름을 붙였다." (61쪽)

이렇게 미국의 우파는 구제 금융에 대한 대중의 분노를 구제 금융을 가져온 원인인 작은 정부와 자유시장, 결국 공화당을 지원하는 모순된 운동으로 만들었다. 어처구니없지만 이것이 현실이었다. 이 냉엄한(?) 현실 앞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워야 할까? 그건 대중들은 결코 자동적으로 진보가 옳다는 방식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대중은 그들의 처지에서 가장 공감하는 설명을 받아들인다. 거기엔 그럴만한 토대도 있다. 미국의 경우 관료적 기술성에 기댄 오바마 정부의 실수와 전통적으로 자유를 중시하는 미국민의 경향이 있었다.

이런 현실을 살피지 않고 이론적인 합리만 따진다면 대중과 괴리가 생길 수밖에 없다. 즉, 합리적이고 진보적이라고 여겨지는 정치적 견해가 대중의 생각과 괴리가 있다면 대중만 탓할 것은 아니다. 합리적이고 진보적이라는 정치적 견해가 어디서부터 대중과 멀어졌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한국의 진보, '이명박근혜'의 실패

이런 관점에 지난 한국의 대선을 살펴보자. 먼저 지난 대선에서 진보의 생각은 '이명박근혜'였다. 같은 당이었기에 당연해 보인다. 하지만 많은 대중의 생각은 달랐다. 그건 한국인들이 정치를 정당보다는 인물 중심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거기다 과거 공천문제를 두고 '공천학살'이니 하면서 대립한 기억도 한몫 했으리라.

진보의 '이명박근혜'라는 인식엔 여와 야 사이에는 넘을 수 없는 매우 뚜렷한 구분이 있음을 말해준다. 민주와 반민주의 구분이다. 여당은 그냥 여당이 아니라 민주주의를 후퇴시킨, 더구나 독재자의 딸이 후보로 나오는 비민주적인 정치 세력이었다. 대선 결과에 '멘붕'이 온 것도 이러한 인식의 발로였다. 민주당이 대선에서 과거사와 국정원 정치개입에 방점을 둔 것도 그러했다. 야권연대 자체가 이런 토대에서 나왔다. 내가 지지하는 후보는 아니더라도 민주주의 후퇴는 막아야겠다는 인식이 있었다.

문제는 꽤 많은 유권자가 이런 인식에 동의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특히 연령이 높을수록 더욱 그러했다. 그들의 생각을 요약해주는 것은 "그놈이 그놈이지"였다. 아마 정치의 필요성을 말하다보면 많이 들었던 익숙한 대답일 것이다. 정치인이란 결국 자기 잇속만 차리는 여나 야나 다 그런 존재라는 '정치 불신'이다.

여당의 문제점에 대해 말하면 많은 이들이 고개를 끄덕이고 분노도 한다. 하지만 선거철이 되면 다르다. 동의하면서도 "그런데 너희는?"이라는 질문이 뒤따른다. "정치인들은 다 똑같아. 내가 인생 살만큼 산 사람이라고"이런 인식이 작동한다. 안철수의 '새정치'가 '창조경제'만큼 모호하다고 비판받지만, 먹히는 지점이 여기다. 그는 정치권 밖에 있었고, 그의 인생 행로는 개인 이익보다는 그래도 나라를 위해 일할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이런 기대는 새정치의 기대를 가질 수 없는 형태의 단일화로 무산되었다.

한국 대중에게 중요한 것은 경제였다

여나 야나 다 그놈이 그놈인데 그래도 투표하려면 나름의 구분 기준이 있어야 한다. 그때 작용하는 것이 경제적 관점이다. 누가 더 경제를, 살림살이를 조금이나마 낫게 해줄 것인가를 생각한다. 그래서 지지난 대선에선 'BBK 논란'에도 불구하고 이명박을 찍었고, 지난 대선에선 경제민주화를 앞세운 박근혜를 찍었다.

민주당이 정치민주화에 앞장 섰다고 해서 경제민주화에도 우위의 정당으로 인식되지 않는다. 한국사회에서 서민의 삶이 힘들어진 것은 IMF와 그 이후 신자유주의의 물결이 본격적으로 도입되면서부터다. 공교롭게도 그 시기는 민주당의 집권시기와 겹친다. 민주당 때가 구 한나라당 때보다 서민 경제가 더 좋았단 기억이 없는 것이다. 역으로 이것이 민주당이 제기한 정치민주화에 무심한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게다가 민주당은 안철수와 새정치 논쟁을 벌이며 민생을 선거의 주된 쟁점으로 만들지도 못했다.

물론 대선을 종합적으로 분석한다면 고려할 변수가 많기에 다른 분석도 가능하다. 중요한 점은 대중의 생각이 진보의 생각과 달랐다는 사실이다. 취임 100일을 맞은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은 60%대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21%였던 이명박은 물론 40%였던 노무현 대통령보다 높다. 이것도 진보 진영과는 괴리가 큰 수치일 것이다.

이런 괴리 앞에서 계급 배반이니 대중의 우매함만을 거론한다면, 정치적으로 무력함을 털어놓는 것과 다름이 아니다. 대중이 어떤 집단적 견해를 가진다면 그럴만한 나름의 경험적 토대가 있는 법이다. 이를 연구하여 대중들이 공감할 메시지로 쟁점을 만들고 정치의 장을 펼치는 것이 정치적 능력이다. 그렇지 않고 기존 생각만 고수한다면 실패한 보수가 집권하는 쓰라린 기억은 되풀이 될 수밖에 없다. 이것이 여기에 소개한 책과 지난 대선이 주는 교훈이다.
덧붙이는 글 실패한 우파가 어떻게 승자가 되었나 |토마스 프랭크 (지은이) | 함규진 | 임도영 (옮긴이) | 갈라파고스 | 2013-02-14 | 원제 Pity the Billionaire (2012년)

실패한 우파가 어떻게 승자가 되었나

토마스 프랭크 지음, 함규진.임도영 옮김,
갈라파고스, 2013


#구제금융 #이명박근혜 #티파티 #오바마 #토마스 프랭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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