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바이 일본판 '4대강 보'... "한국 강도 살아나길"

은어 떠났던 쿠마강, 아라세댐 철거 진행 후 수질 나아져

등록 2013.06.16 16:04수정 2013.06.16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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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라세댐 건설 후 산사태가 잦아지면서 나무들이 쿠마강으로 쓸려내려왔다. 사진은 나무 등으로 뒤덮인 쿠마강의 모습.
아라세댐 건설 후 산사태가 잦아지면서 나무들이 쿠마강으로 쓸려내려왔다. 사진은 나무 등으로 뒤덮인 쿠마강의 모습.츠루 쇼토

홍수 피해가 줄고 지역 개발로 주민들의 삶이 풍요로워진다고 했다. 하지만 댐이 들어선 후 수해빈도는 늘었고 피해 규모도 증가했다. 조류현상과 악취는 심해졌다. 4대강 사업이 아니다. 일본 쿠마모토현 아라세댐 이야기다.

수력발전을 위해 1955년 쿠마강 중류에 들어선 아라세댐은 강에서 뛰놀던 은어가 자취를 감추게 만들었다. 14일 오후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에서 열린 대한하천학회(학회장 김정욱) 하계학술대회 '4대강 사업의 문제와 댐 확대 정책 검증' 초청강연자로 나서 츠루 쇼코씨(아라세댐 철거운동 활동가)는 수차례 "아라세댐이 만들어지기 전에는 이런 일이 없었는데"란 표현을 썼다.

홍수 때 토사가 흘러내려와 집 안으로 들어오고 잦은 산사태로 떠내려간 나무들이 하천을 뒤덮는 일, 은어와 김, 새우가 사라지고 조류만 가득해진 쿠마강은 이 주변에서 수십 년을 살아온 그와 이웃에겐 낯설었다.

츠루씨 등 지역주민들은 2002년부터 "아라세댐을 철거하자"고 외치기 시작했다. 1000명 이상이 모이는 대규모 집회가 거듭 열렸고, 국토교통성과 쿠마모토현 관계자 등이 함께한 대규모 토론회도 9차례 이어지자 시오타니 전 지사는 2004년 댐 철거 입장을 공식화했다. 2008년 취임 직후 이를 번복했던 가바시마 지사 역시 2010년 2월 "2012년부터 댐 철거를 시작하겠다"고 선언했다.(관련 기사 : 일본 아라세댐 철거 작업 시작... 일본 내 '최초')

지난해 9월 1일, 마침내 댐 수문부터 철거가 시작됐다. 8개 수문 가운데 다섯 개가 철거되는 동안, 아라세댐 주변 수생태계에선 놀라운 변화가 나타났다. 츠루씨는 "이 지역에 산 지 30년 됐지만, 지역에서 난 장어가 가게에 진열된 것은 처음 봤다"며 "2010년 10월 수문을 전부 개방한 뒤, 물이 깨끗해져 장어가 늘었고 은어도 많이 돌아왔다"고 말했다. 수질 개선 등을 입증하는 생화학적 산소요구량(BOD)등 각종 지표들도 계속 조사 중이다.

일본 최초의 댐 철거... "쿠마강 옛 모습 찾을 것, 지켜봐달라"

 2012년 9월부터 철거가 시작된 일본 쿠마모토현 아라세댐의 6월 10일 모습. 쿠마모토현은 올해 안으로 수문 모두를 해체하고 2018년에 철거작업을 완료할 계획이다.
2012년 9월부터 철거가 시작된 일본 쿠마모토현 아라세댐의 6월 10일 모습. 쿠마모토현은 올해 안으로 수문 모두를 해체하고 2018년에 철거작업을 완료할 계획이다.츠루 쇼토

그가 전하는 아라세댐의 건설비용은 약 29억 엔(1955년 당시). 쿠마모토현은 2018년까지 78억 엔(약 924억 원) 정도를 들여 아라세댐을 철거할 계획이다. 아라세댐은 구마모토현이 관리하고 있지만, 쿠마강은 국토교통성의 관리대상이기에 중앙정부도 그 비용 일부를 부담하기로 했다.


댐 철거가 예정대로 진행되면 아라세댐은 '일본 최초의 댐 철거 사례'로 남는다. 다만 쿠마강 상류에 있는 세토이시댐과 하류의 요하이제키보는 철거 대상이 아니다. 츠루씨는 "구마모토현 전체를 대상으로 한 (철거) 계획은 아직 없다"며 "다른 댐들도 철거하길 바라고 있다"고 했다.

보 설치로 조류 증가, 수질 악화 등 피해가 잇따르자 4대강 사업에 비판적인 학자·환경단체 등은 조속히 보를 해체하거나 최소한 수문을 열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아라세댐 철거 과정을 궁금해하던 참가자들은 츠루씨에게 다양한 질문을 던졌다. '철거 과정에 주민이나 민간 전문가들은 어떻게 참여하냐'는 물음도 나왔다. 츠루씨는 "철거 방법과 시기 등을 결정하는 위원회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구마모토현 관계자와 전문가들이고, 주민들은 방청만 할 수 있다"고 답했다.


주민 참여가 막혀 있다는 뜻은 아니다. 지역민들의 참여는 '구마모토현의 정보 공개'로 이뤄진다. 츠루씨는 "댐 건설과 철거는 굉장히 다르다"며 "(공무원들은) 댐을 건설할 때야 여러 자료를 숨기려고 하지만, 철거할 때는 모든 것을 공개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철거 관련 문제를 구마모토현에 물어보면 아주 친절하게 잘 대응해준다, 자료도 잘 제공해준다"고 덧붙였다.

츠루씨는 지난 10일 아라세댐을 찍은 사진을 공개하며 "올해 남은 수문 세 개를 철거할 예정이고, 이 작업이 끝나면 댐 본체 철거가 시작된다"고 했다.

"지금은 댐 본체에 뚫은 터널로 물을 흘려보내는 식으로 상류 쪽 수위를 조절하고 있습니다. 2주쯤 지나면 쿠마강 상류도 원래 모습을 되찾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어요. 물론 저희들은 아라세댐뿐 아니라 세토이시댐도 철거돼 하천이 원래 모습을 되찾는 것을 원합니다. 일본 전체에서 댐 철거 현장이 늘어나기도 기대하고 있고요. 아라세댐 철거를 지켜봐주세요. 여러분의 하천이 제 모습을 찾길 바랍니다."

 2010년 수문이 모두 열렸고, 지난해 9월 철거가 시작된 일본 아라세댐. 댐으로 김양식이 불가능해졌던 이곳에서 다시 김이 자라고 있다.
2010년 수문이 모두 열렸고, 지난해 9월 철거가 시작된 일본 아라세댐. 댐으로 김양식이 불가능해졌던 이곳에서 다시 김이 자라고 있다.츠루 쇼토

#아라세댐 #4대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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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정치부. sost38@ohmy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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