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민주당 의원이 16일 지난 대통령 선거 당시 출입기자들과 함께 북한산을 오르며 얘기를 나누고 있다.
남소연
평소 산행을 즐기는 것으로 알려진 문 의원은 빠르게 산을 탔다. 거침없이 발을 내디뎠고, 그럴수록 문 의원을 필두로 한 선두그룹과 후발 그룹의 차이는 점차 벌어졌다. 하산할 때는 더더욱 쉼이 없었다. 보좌진들이 나서 "후발대와의 차이를 좁혀야 하니 쉬자"고 해야 겨우 발걸음을 멈췄다. 쉬는 동안 겨우 후발대가 따라 잡을라 치면 "다른 등산객에 피해를 주니 움직여야 한다"며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덕분에 "다리가 후들거린다"며 체력 저하를 호소하는 기자들이 다수 나타났다.
등산을 하며 문 의원과 마주친 일부 시민들은 사진 촬영을 요청하는 등 반가움을 표했다. 그러나 대다수의 등산객은 문 의원을 '대선 후보 문재인'으로 인식하지 못하는 듯 했다. 실제 헐렁한 바지에 줄무늬 카라 티, 거기에 노란 수건을 목에 두른 채 윗 부분이 찢어진 모자를 쓴 문 의원은 '등산하는 60대 남성'으로만 보기에 충분했다.
시종일관 화기애애하게 이어지던 산행에서 유일하게 문 의원이 언성을 높인 때는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에 대한 입장을 밝힐 때였다.
하산 후 북한산 인근 식당에서 이뤄진 오찬 간담회에서 문 의원은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은 솔직히 분노가 치민다"며 격한 감정을 그대로 내비쳤다. 그는 "(대선 당시에) 국가 정보기관이 특정 후보 당선은 막아야겠다는 분명한 목적의식을 갖고 선거를 좌우하려고 했던 거 아니냐"며 "그 일각이 드러났는데 경찰이 수집한 증거자료까지 파기해 왜곡된 발표를 한 것도 파렴치한 행위"라고 일갈했다.
이어 화살은 박근혜 대통령을 향했다. 대선 당시 박근혜 당시 대선 후보가 '국정원 대선 개입 의혹'에 대해 "사실이 아니면 문재인 후보가 책임져야 한다"고 목소리 높인 데 대한 역공이다. 문 의원은 "(당시 박근혜 후보의 말을) 뒤집어 말하면, 사실로 드러나면 박근혜 대통령이 책임져야 한다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그러나 "이제 와서 박 대통령에 선거에 대한 책임을 물을 수는 없고 바람직하지 못하다"며 일부에서 불거지고 있는 '선거 불복' 움직임에 선을 그었다. 문 의원은 "박근혜 대통령이 국정원 사건을 제대로 수사하게 하고 엄정하게 처리해 국정원과 경찰을 바로 서게 만드는 계기로 만들어 주면, 그것으로 (박 대통령은) 책임을 다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문 의원은 김한길 민주당 대표가 발표한 당 혁신 방안에 대한 평가도 내놨다. 그는 "중앙당 당직자를 지방으로 내려 보내 지역위원회가 시도당 역량을 강화한다는 건 중요하다"며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민주당이 일반 시민이 보다 광범위하게 참여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 국민 정당으로 커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정당을 개방 구조로 만드는 걸 실천해낼 수 있느냐에 지도부의 성패가 달린다"고도 했다.
결국, 김 대표의 방안이 필요한 개혁안이긴 하지만 본질적인 문제를 건드리지는 않고 있다는 것이다.
문 의원은 "그나마 (모바일 투표 등으로) 마련했던 국민 참여를 다 잘라버리고 당원 중심으로 가는 건 현실적으로 옳은 방향은 아니"라며 "우리 당원은 몇 만 명이고 지역적으로 편중돼 당원 중심으로 갈 경우 일반 국민과 유권자들 의사와는 동떨어질 위험성이 많이 있다"고 지적했다. 최근 탈당한 문성근 전 상임고문이 강조한 '온·오프라인 네트워크 정당'에 대해 "전적으로 생각이 일치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산행 도중 전해진 북한의 '복미 고위급 회담 제안' 소식에 대해 그는 "북미 간에도 대화하고 관계 정상화가 돼야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도 남북관계가 풀려야 한다"며 "북한은 미국만 보고 남측을 소외할 게 아니라 남북관계에도 성의를 보여야 한다"고 밝혔다.
현 정부가 '격 문제의 관행을 바로 잡겠다'는 입장을 표하고 있는 것을 두고는 "급과 격도 중요하지만 남북 체제가 달라 급이 서로 안 맞는 게 있다"며 "특히 통일부의 경우 북 측 국장이 우리 장관보다는 낮고 차관보다는 높아 어중간하다, 결국 어느 한 쪽이 양보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에는 의욕이 앞서 급하게 추진되어 실무회담 논의가 부족했던 거 같다"며 "(남북 대화가) 오래 단절돼 신뢰가 땅에 떨어졌던 게 원인이다, 불신을 키우지 말고 차분히 대화로 마주앉아 풀어야 할 거 같다"고 조언했다.
간담회 자리는 '2017년 대선'을 기약하며 마무리 됐다. 문 의원은 "작년에 뜻을 이루지 못했고 작년의 희망이 2017년으로 미뤄졌는데 그때까지 우리가 또 건강해야 한다"며 운을 띄웠다.
문 의원은 대선 공약으로 발표한 '광화문 대통령'에 대해 "작년 대선 (실패가) 아쉬운 건 경제민주화·복지 국가 정책을 제대로 못하게 된 때문도 있지만 정직하고 품격있는 정치를 얼마든지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는데 못한 거였다"며 "또, 늘 국민과 함께 하는 대통령을 못해서 아쉽다, (그렇지만) 언젠가는 될 거라고 생각한다"며 묘한 여운도 남겼다.
이에 건배사로 '2017년을 위하여' 혹은 '광화문 대통령을 위하여' 등등이 나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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