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주신 몸, 다시 돌려드렸을 뿐이에요"

고1 아들, 간암 말기 아버지에게 자신의 간 이식... "고맙다"

등록 2013.06.17 14:02수정 2013.06.17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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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버지와 아들의 아름다운 동행
아버지와 아들의 아름다운 동행박병춘

B형 간염에서 비롯돼 간경화·간암까지 더 이상 약물 치료가 불가능한 아버지. 마지막 남은 선택은 간 이식뿐이었다. 혈액형과 간 크기·혈액 검사 등 생체 이식 조건이 맞아야 간 이식을 할 수 있는 절박한 상황.


온 가족이 나섰다. 먼저 아내와 딸이 이식 검사를 했다. 환자의 형도 나섰다. 조건이 맞지 않았다. 고1 아들이 검사를 했다. 이식 조건이 딱 맞았다. 고1 아들은 기꺼이 자신의 간 3분의 2를 아버지에게 이식했다.

간경화·간암으로 신음 중인 아버지에게 간 이식을 한 주인공은 대전대신고등학교(대전광역서 서구 복수동 소재·교장 한상덕) 1학년 박지용 학생. 박군을 인터뷰하기 위해 박군의 담임인 정인선(44) 교사와 함께 지난 14일에 서울아산병원을 찾았다.

정인선 담임교사는 박군에게 학급 친구들의 응원 문구가 담긴 편지를 건넸다. 박군은 친구들의 편지를 읽으며 환한 미소를 짓더니 '지금 기분이 어떠냐'는 물음에 차분하게 말문을 열었다.

"어서 학교에 돌아가 축구 하고 싶어요"

 간 이식 수술을 마치고 회복 중인 박지용 군이 정인선 담임 교사와 함께 친구들이 보내준 응원 편지를 읽고 있다.
간 이식 수술을 마치고 회복 중인 박지용 군이 정인선 담임 교사와 함께 친구들이 보내준 응원 편지를 읽고 있다. 박병춘

"아버지가 주신 몸을 아버지에게 드렸으니까, 이젠 아버지가 절대로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이식 수술 후 처음에는 많이 아팠어요. 지금은 괜찮아요. 빨리 학교에 가고 싶어요. 친구들, 선생님들이 보고 싶어요. 당장 운동을 할 수 없지만 마음으로나마 제가 좋아하는 축구를 하고 싶습니다."


박군의 아버지 박희열(50)씨는 지금으로부터 3년 전에 B형 간염이 도져 간경화·간암으로 발전하는 바람에 약물 치료의 한계에 이르러 생체 이식만이 유일한 방법이라는 의료진의 판정을 받았다.

환자인 박씨의 혈액형이 AB형이어서 모든 혈액형이 가능했다. 지난 3월, 먼저 박씨의 아내 권연숙(49)씨와 대학 4학년 딸 박소옥(24)씨가 간 이식을 위한 조건 검사를 했다. 박씨의 형까지 나섰지만 조건이 맞지 않았다. 간 크기·혈액 검사 통과 등 조건이 맞아야 하지만 부적절 판정을 받았다.


만 16세 이상이 돼야 생체 이식이 가능한데, 박지용군은 두 달 차이로 만 16세가 됐다. 박군은 망설이지 않았다. 혈액 검사·조직 검사 등 다양한 조건을 알아본 결과 적절하다는 판정을 받고 이식에 도전해 성공한 것.

지난 4일 오전 7시부터 아들의 간 3분의 2를 아버지에게 이식하는 수술이 진행됐다. 아들 지용 군의 수술에 걸린 시간은 8시간, 아버지는 15시간이 걸렸다.

아버지의 한마디 "고맙습니다... 미안합니다"

아들과 다른 병실에서 입원 중인 아버지가 지용군의 병실에 찾아왔다. 큰 키에 야윈 모습, 마스크를 한 지용 군의 아버지에게 안부를 물었다. 박씨는 투병의 고통 속에 알아듣기에 불편할 정도로 목소리와 발음이 분명하지 않아 박씨의 아내가 먼저 듣고 내게 전해줬다. 우선 아버지로서 아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지용이가 도와줘서 새 삶을 살게 됐어요. 장할 뿐입니다(눈물). 고맙습니다. 미안합니다. 이 세상에서 우리 아들이 최고입니다!"

대학 4학년인 누나 박소옥씨는 아버지와 동생을 보며 눈시울을 붉혔다.

"제가 하고 싶었지만 조건이 맞지 않아 지용이에게 누나로서 미안했어요. 어린 애한테 너무 큰 고통이잖아요. 절대 아프지 말고 건강하게 지용이가 하고 싶은 일 찾아 꿈을 이루기 바랍니다."

 박희열씨 가족
박희열씨 가족박병춘

지용군의 어머니 권연숙씨는 애써 태연해하며 소회를 밝혔다.

"혹시나 잘못될까봐 얼마나 걱정했는지 몰라요. 마음이 너무 아픕니다(눈물). 수술이 잘 돼 다행입니다. 저 또한 새로운 인생을 사는 기분으로 더 치열하게 살아보렵니다. 간 이식 후 두 달이 지나면 80%, 석 달이 지나면 90%가 재생한답니다. 약 1년 정도 지나면 괜찮아진다니까 지용이가 건강하게 잘 회복되기만을 바랍니다."

지용군의 맞은 편에서 입원 치료 중인 은종한(57·동생에게 간 이식 받음)씨에게 상황을 바라보는 느낌을 물었다.

"대단하지요. 언젠가 제가 직접 본 일인데, 아들이 아버지에게 간 이식 수술을 하러 왔다가 두려움을 참지 못하고 도망간 적도 있어요. 어린 나이에 저 학생이 정말 대단할 뿐입니다. 이 수술 자체가 보통 힘든 일이 아니거든요."

박군의 담당 의사 황경연씨는 "박지용군이 생체이식을 할 수 있는 만 16세 최소 연령으로 힘든 수술을 견뎌냈다, 고통이 심할 뿐만 아니라 목숨을 걸고 하는 수술이었다"며 "아버지를 위해 기꺼이 수술을 결정한 박군이 정말 대견할 뿐이다, 아버지의 경과도 좋고 학생도 문제 없다"고 말했다. 이어 "다시 학교에 돌아가 잘 지내기 바라며, 아버지도 아들을 위해서라도 회복되기를 바란다"고 응원했다.
덧붙이는 글 박지용군은 지난 6월 16일에 퇴원했고, 지용 군의 아버지는 계속 입원 치료 중입니다.
#간 이식 #박지용 #박희열 #대전대신고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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