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장면한영진 관장의 경기장면이다. 그의 발차기가 일품이다
한영진
스승의 권유로 중3 때 프로선수로 데뷔했다. 하지만, 시작은 녹록지 않았다. 4전 전패였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자신에 맞는 체급을 찾지 못해서라 판단했다. 웰터급으로 자신의 체중을 맞췄다. 그 무렵(고1) 태국으로 무에타이 유학도 갔다.
4패는 전화위복의 도화선이었을까. 그 후 70연승을 거뒀다. 20세에 국내 챔피언 획득, 23세에 동양챔피언 획득. 그는 동급에선 그야말로 아시아의 천하무적이었다.
격투기가 국내에 알려지지 않았던 시절, 그는 배고팠다. 국내챔피언 때도 대전료는 고작 한 경기당 20~30만 원이었다. 국내 프로선수로선 1세대이기에 항상 경제적으로 힘들었다.
힘껏 상대방 때리는 게 링 위의 예절?
그는 15년 무에타이 인생에서 제일 기억나는 경기를 치렀다. 바로 동양챔피언 타이틀전. 상대 선수는 전설의 무에타이 파이터 리키다(태국)였다. 무에타이 종주국 선수답게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실력자였다.
7라운드 경기였다. 리키다는 챔피언답게 강했다. 주거니 받거니 난타전이 이어졌다. 서로 피범벅이 됐다. 승부는 팽팽했다. 이대로 가다간 그가 질 수도 있었다. 그가 종료 1분을 남기고 카운트 펀치를 날렸다. 리키다가 링 위에 쓰러졌다. KO승이었다.
가난한 그에게 절실한 승리였다. 하지만, 그 결과로 얻은 상처도 컸다. 눈 아래 뼈와 코뼈 등이 부서지고, 어깨가 탈골 되고, 머리가 찢어졌다. 워낙 큰 부상이라 그 후 3개월 동안 운동을 못할 정도였다. 그야말로 목숨 걸고 동양챔피언을 따냈다. 그는 말했다.
"링 위의 예절은 최선을 다해서 상대방을 때려주는 것이다. 만일 설렁설렁 때린다면 상대방은 그걸 알게 되고, 자존심을 생명으로 하는 파이터에겐 크나큰 모욕이 된다."그는 리키다에게도 최선을 다해 예의를 지켰다.
링 위에선 70연승, 인생에선 쓴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