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정부에서 만든 '영해법'의 직선기점 기준. 박정희 정권 시절인 1977년 영해법을 만들면서 일본, 북한과의 마찰을 피하기 위해서 서해5도와 독도를 영해의 기점에서 제외하였다. 그래서 NLL영해 논란의 근본적인 원인제공자가 서해5도를 영해에서 제외한 박정희 대통령이라는 비판이 지난 대선 기간 동안 제기되었다.
김행수
박정희 정권 시절인 1977년 영해법(현행 '영해 및 접속수역법')이 정부 입법으로 통과됐고, 1978년 대통령령이 제정됐다. 당시 영해법 시행령에는 서해상 영해의 기준점으로 최남단은 북위 34도 06분의 흑산도 부속섬인 소국홀도, 최북단은 북위 36도 58분의 태안반도 앞 소령도를 삼았다. 이는 서해5도 최북단인 백령도의 북위 37도 52분에 비하면 한참 남쪽이다. 이때 만들어진 법령이 큰 수정 없이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다.
이렇게 법을 만든 이유는 헌법 3조의 한반도 부속도서 영토 조항과 주변국과의 마찰 우려 때문이라 한다. 독도 주변을 두고는 일본과, NLL 주변을 두고는 북한과의 마찰을 피하기 위해 이 수역을 영해 규정을 별도로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법적으로 영토와 영해는 엄연히 다른 것이며, 이런 논리라면 영해를 법으로 별도 규정할 필요성 자체가 없다.
박정희 정권에서 영해법을 제정할 때 서해5도와 독도를 제외한 것은 주변국과의 마찰을 피하자는 현실론일 수 있는데, 이는 박근혜 대통령이나 새누리당, 그리고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등 보수언론의 현재 시각과는 완전히 다르다. 굳이 따지자면 서해평화협력지대나 공동어로구역 같은 대안을 모색한 노무현 대통령의 인식과 훨씬 가까워 보인다.
물론 박정희 대통령이 서해5도 주변 수역을 우리 영해가 아니라고 선언한 적은 없다. 그러나 적어도 박정희 정권에서 법을 이렇게 만들면서 국내법인 '영해 및 접속수역법'에도, 국제법인 '해양법에 관한 국제연합 협약'에도 NLL이 우리 영해라는 명시적 법적 근거가 있다고 주장하기에 민망한 상황을 만든 것은 확실해 보인다. 이로 인해 NLL을 영해라고 주장할 수 있는 국내법적 근거 조차도 없애버렸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것이다.
국방부장관·미 국무부 대변인·UN사령부·CIA도 인정한 사실알려진 바와 같이 휴전협정은 서해5도를 비롯한 섬들의 관할권 문제는 서로 합의를 했지만 해상 분계선에 대해서는 아무런 합의를 하지 못했다. 즉 정전협정에는 한강 하구부터 군사분계선이 없다. NLL이 영해선이냐 아니냐의 논란은 이때부터 필연적으로 벌어질 수밖에 없었다.
이후 남북은 서해 해상 분계선을 두고 어떤 합의도 이루지 못하고 현재에 이르렀다. 그러나 최근까지도 우리 정부도 서해 NLL을 군사분계선으로 인정하지 않은 증거는 많다. 가장 잘 알려진 게 김영삼 정부 시절인 1996년 7월 사건이다.
당시 국민회의 천용택 의원이 "4·11 총선 후 북한함정의 서해상 도발에 대해 우리 대응이 왜 소극적이었느냐?"라고 묻자, 당시 이양호 국방부 장관은 "북방한계선은 (우리) 어선 보호를 위해 우리가 그어놓은 것으로 정전협정위반은 아니다"라고 답했다. 이어 "그렇다면 침범해도 문제가 아니냐?"라고 추궁하자 이 장관은 "상관하지 않겠다"고 답변해 논란이 일었다.
김대중 정부 시절인 1999년 6월 제1차 서해교전이 발생했을 때에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긴급 소집된 국회 국방위원회에서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하경근 의원이 조성태 국방장관에게 "이번 충돌이 발생한 해역이 영해입니까? 공해입니까?"라고 질의했다. 이에 장관은 답을 못했다. 배석한 합참 작전참모본부장은 "영토입니다"라고 했지만, 합참 차장은 "영해라고 답변 드리기는 곤란하다"고 답변했다. 국방부 장관은 난감해서 어쩔 줄 몰라했다.
미국에서 국제법을 전공했고, 국제정치학회장을 지낸 저명한 국제정치학자 출신인 하경근 의원은 "이 지역(NLL)을 우리의 영해 운운하기에는 국제해양법의 일반 원칙에 볼 때 약간의 무리가 있고 NLL은 어디까지나 휴전상태의 연장이기 때문에 우리의 관할수역이라 표현함이 가장 타당"하다고 소신을 밝혔다. 그는 민주당이 아닌 한나라당 의원이었다.
제1차 서해교전 직후 열린 기자 브리핑에서 미 국무부가 제임스 폴리 대변인은 "교전이 일어난 해역이 사실상의 공해(international waters)가 맞느냐"는 질문에 "나는 그렇게 이해하고 있다"고 대답했다. 그러니까 미 국무부 대변인이 서해교전 직후에 가진 공식적인 기자회견에서 NLL 수역을 우리 대한민국의 '영해가 아니라 공해'라고 답변한 것이다.
이런 입장은 미 중앙정보부(CIA)도 마찬가지였다.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에 의하면, 최근 해제된 CIA의 1974년 1월 내부 기밀문사에는 NLL의 목적에 대해 "유엔사령부 함정이 특별한 허가 없이는 NLL의 북쪽을 항해하는 것을 금지함으로써, 사고를 피하는 데 있었다"고 돼 있다. 또 NLL을 해상 경계선으로 설정하고 있는 남한의 입장에 "국제법적으로도 어떠한 근거가 없고 NLL의 일부는 영해에 관한 최소한의 조항에도 부합하지 않는다"고 적혀 있다고 한다.
정 대표에 의하면 박정희 정부 시절인 1973년 12월 NLL 문제로 한미 사이에 의견 대립이 있자 미국 정부는 "북한에게 NLL을 부과하려는 시도에 미국이 동참할 것이라고 한국 정부가 가정한다면 잘못된 것"이라고 미국 정부의 공식 입장을 주한 미 대사관에 보냈다.
1975년 2월 미 국무부장관이었던 헨리 키신저가 "미국이 전부터 말해왔듯이, 북방정찰한계선(Northern Patrol Limit line)은 국제법적 지위를 갖고 있지 않다... (중략)... 더구나 그 선은 일방적으로 국제수역을 분리한 것이기 때문에, 명백히 국제법과 미국 정부의 해양법에 반하는 것"이라는 외교문서를 주한미대사관과 주한미군사령부 및 유엔사령부에 보냈다.
NLL 문제에 대한 세계 최고의 전문가라고 할 수 있는 유엔군 사령관 정전담당특별고문이었던 제임스 리(한국명 이문항)씨도 1983년 저서 <JSA-판문점>을 통해 "어로저지선이나, 북방한계선이나, 영해가 3해리니 12해리니 논의하지 말라는 미 합참본부의 지침이 있었다"며 "유엔사는 항상 함선이나 사건의 위치가 서해5도의 3해리 밖일 때는 공해상이라는 입장을 취했다"고 적어놨다. UN사령관의 정전특별고문이 'NLL은 유엔사령부의 입장이 아니'라고 확인한 것이다.
또한 1989년 6월 유엔군 총사령관이 국방부장관에게 보낸 서한에도 "정전협정에는 유엔군 사령부가 북측 선박들이 단순히 북방한계선(NLL)을 월선한 데 대해 항의할 권한이 없음"이라는 내용이 나온다고 한다.
NLL의 이런 역사 때문에 "남과 북의 불가침 경계선은 계속 협의한다, 해상 불가침 구역은 해상 불가침 경계선이 확정될 때까지 쌍방이 지금까지 관할해 온 구역으로 한다"는 1992년 남북기본합의서가 채택된 것이다. 남북 사이에 NLL을 비롯한 어떤 해상분계선도 합의된 바가 없으니 기존 관할 구역을 존중하되 군사분계선 협의를 하자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NLL, 우긴다고 진실 되지 않는다... 노무현은 현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