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가 우리 노래를 듣고 '내 얘기를 해주는 민중가수다' 하면 그건 영광일 수 있는데, 우리가 스스로를 민중가수라고 호명하는 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라고 반문하는 꽃다지. 사진은 지난해 연말공연 당시 모습.
꽃다지 제공
꽃다지는 문화노동자인 동시에 노동문화를 이끌어가는 중요한 존재다. 20년 구력의 베테랑 문화일꾼이지만 '노동문화'라는 게 어떤 것인지, 고유한 노동문화가 있기는 한 것인지 여전히 의문이다. 집회 현장의 문선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시선으로 바라보고, 행사의 양념 취급할 때 회의가 들기도 한다. 조직 운동의 특정 노선을 따르지 않다 보니 노조나 학생운동의 권력이 바뀌면 자기 정파색에 맞는 가수를 부른다. 그때 깨달았다. '우리를 음악으로 부른 게 아니었구나, 꽃다지가 아니어도 상관없던 거였구나.'
그래서 더욱 음악 하는 꽃다지가 되려고 한다. 노동문화는 점점 설 자리를 잃어가고, 문화는 있으면 좋고, 없어도 그만인 무엇으로 취급당한다. 노동조합 안에서도 점점 문화 담당자가 줄어든다. 예전에 노동자대회 때는 지역본부별 문화제 겨루기가 있을 정도였다. 그 문화제를 위해 지역의 문화일꾼들과 노동자들이 모여 합동 무대를 연습하고 만나는 과정이 곧 조직이고 운동이었다. 이제 그런 풍경은 찾아보기 어렵다. 노동운동의 대중성을 말하며 문화의 중요성을 강조하지만, 정작 조직의 규모를 줄여야 할 때는 제일 먼저 '문화'가 잘린다. 꽃다지의 민정연 대표는 우리 사회에 지금 노동문화로 불릴 만한 건 없다고 말한다. 갈 길이 멀다는 것이다.
"민중가수라고 부르는 것도 부담스럽다. '음악 하는 꽃다지'가 제일 편하다. 지금 민중가요 진영은 존재의미가 80년대랑 다르다. 그때는 전노협 하나 만드는 게 얼마나 큰일이었나. <전노협진군가>를 부르면 관객들이 전주까지 다 함께 따라 불렀다. 근데 지금 관객들은 그런 그림을 못 만든다. 이젠 다른 종류의 공감대를 만드는 거다. 용어가 연성화된 것도 분명 있다. 거기에서 놓친 것들, 커진 일상의 비중들, 그런 걸 돌아보는 게 필요한 거다." - 정혜윤·정윤경"누군가가 우리 노래를 듣고 '내 얘기를 해주는 민중가수다' 하면 그건 영광일 수 있는데, 우리가 스스로를 민중가수라고 호명하는 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아마 <한결이> 같은 노래는 옛날 같으면 못 올렸을 거다. 민중가요는 집회가요라고 하는 인식. 인디 음악 하는 사람들도 민중가요라고 하면 우리가 지금 어떤 시도를 하는지 상관없이 일단 아래로 보는 경우가 많다. 그런 인식을 깨고 싶기도 하다. 우리 노래가 바뀌어야겠다고 생각했던 건 무대에 서면서 팔뚝질하는 노래가 교감이 안 된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더 마음을 울리고 남게 하는 게 무엇이냐 생각했다. 그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 민정연"이번에 오랜만에 <가자 노동해방>을 무대에 올리려고 연습하다가 결국 중단했다. 우리가 정말 그런 태도로 살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음악적인 모색을 할 때 '맛 갔다, 변절자다' 별소릴 다 들었다. 그런 얘기 다 듣고 버텨준 가수들한테 고맙다. 분명 박수받는 노래들 있다. 더 많이 현장에서 섭외되고 돈도 벌었을 거다. 근데 그렇게 우려먹는 방식은 오래 살아남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정직하지 못하다는 생각도 들고." - 정윤경민중가수라는 호명이나 투쟁가요 등 격한 구호들은 이른바 '노동문화'의 상징이다. 그런데 꽃다지는 실천할 수 없는 격한 구호나, 민중가수라는 이름을 지양한다. 투쟁 구호가 격하다고 해서 실제 투쟁을 격하게 하는 건 아니다. 결사투쟁을 외치지만 아무도 그럴 마음은 없다. 그렇게 감당할 수 없는 말을 뱉어내고 책임지지 못하는 일이 반복되면서, 노동문화가 가진 선명성과 투쟁성이 오히려 부작용이 돼 돌아온다.
그래서 꽃다지는 감당할 수 있을 만큼 하기로 했다. 그래도 이번 공연엔 때가 때이니만큼 옛날 노래를 몇 곡 준비했다. 옛날 노래도 부를 수 있을 만큼 됐다 싶을 때 부르자고 생각했고 이제 조금 자신이 붙었기 때문이다. 우려먹는 밴드가 아니라는 걸 스스로도 납득했고, 밖에서도 어느 정도 인정받기 시작했다. 가야 할 길은 아직 멀지만 이런 작은 성장들이 기쁘다.
이 길의 전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