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만 원대 백화점 구두가 이곳에서는 '반값'

[협동조합 6개월①] 한국성수동수제화협동조합, '구두쟁이'들의 생존전략

등록 2013.07.06 20:52수정 2013.07.06 2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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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동조합 붐입니다. 지난해 12월 협동조합 기본법이 발효된 후 6개월 만에 국내 협동조합 수는 1200개를 돌파했습니다. 사업이 잘 진행되는 곳도 많지만 설립만 해 놓고 '개점 휴업' 상태인 곳도 많습니다. 지난 6개월 협동조합 현장의 모습을 담아봤습니다. [편집자말]
 3일 오후 성수동의 한 수제화 공장에서 노동자가 제화 작업을 하고 있다.
3일 오후 성수동의 한 수제화 공장에서 노동자가 제화 작업을 하고 있다. 김동환

"계속 하청 일만 할 수는 없지요. 저희도 오래 전부터 독자적인 브랜드를 가지고 싶었어요."

지난 3일 서울 성수동의 한 여성용 수제화 공장. 곳곳을 가리키며 구두가 만들어지는 공정과 협동조합의 가능성에 대해 설명하는 이재성(가명) 한국성수동수제화협동조합 사무국장의 음성에서는 '독자 브랜드'에 대한 열망이 읽혔다. 231평방미터(㎡, 약 70평) 남짓한 공장 안을 가득 채운 공업용 본드 냄새 만큼이나 뚜렷해 보였다.

지난 1월 시작된 한국성수동수제화협동조합은 국내 '수제화 1번지'인 성수동 구두 장인들이 모여 만든 협동조합이다. 디자이너, 가죽 수입상, 수제화 공장 등 완성 수제화 개발에 필요한 관련 분야 종사자 9명이 모였다.

이들의 오랜 꿈은 독자적인 브랜드를 가지고 세계 패션 트랜드를 선도하는 수제화를 만들어내는 것. 자신들이 만든 협동조합이 그것을 가능하게 해줄 거라고 믿는다. 이들은 현재까지 쌓인 디자인 50점 정도를 바탕으로 올해 8월부터는 협동조합 브랜드로 유통구조를 갖추고 본격적인 판매에 나설 계획이다.

각 분야 '수제화 전문가' 모여 "독자 브랜드 만들자"

성수동이 한국 수제화 산업의 중심지가 된 것은 약 20년 전. 서울 도심 개발과 함께 명동, 옥수동을 전전하던 수제화 공장들이 이곳에 둥지를 틀기 시작했고 지금은 국내 생산물량의 80% 가량이 성수동에서 만들어진다. 대부분 대기업에 제품을 납품하는 하청 공장들이다.

제화 경력 30년 이상인 장인들도 수두룩한 지역이지만 연이은 경기 침체와 중국제품 저가 공세에는 뾰족한 답이 없었다. 이재성 사무국장은 "하청 물량이 줄면서 이 지역 수제화 공장들 사이에서는 자연스럽게 협업 및 분업을 통한 독자 브랜드 구축 움직임이 3~4년 전부터 생겨났다"고 설명했다.


수제화 제조에 필요한 각 분야 전문가들이 한 지역에 모여 있으니 협업 환경은 상당히 좋은 편이었다. 추가 고용 비용 없이도 뜻이 맞는 사람만 있으면 '드림팀'이 만들어지니 비용절감 효과도 상당했다.

문제는 업체 간 협업을 담는 '그릇'이었다. '아는 사람' 식의 친분에 기댄 협업을 하다 보니 사정이 안 맞으면 사업 자체가 어그러지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또 그렇게 한 번 깨진 신뢰가 쉽사리 회복되지 않는 것도 문제였다.


이 사무국장은 "공동 브랜드 설립에 합의한 구성원들이 각자 책임과 의무를 다할 수 있는 합법적이고 체계적인 사업틀이 필요했는데 그때 알게 된 게 협동조합이었다"라고 말했다. 유일한 난점을 해결하자 사업에도 속도가 붙었다.

조합 내 가동 가능한 수제화 공장도 벌써 네 곳이다. 그는 "처음에 시작할 때는 출자금이 개인당 20만 원이었는데 지금은 사업 가능성에 대한 확신이 붙으면서 출자금도 늘었고 조합에 가입하려고 하는 사람들도 많아졌다"고 귀띔했다.

"국제시장 구두 트렌드 선도하는 브랜드 만들고파"

 한국성수동수제화협동조합 박경진 이사장이 자신이 디자인한 구두를 들고 설명하고 있다.
한국성수동수제화협동조합 박경진 이사장이 자신이 디자인한 구두를 들고 설명하고 있다. 김동환

박경진 한국성수동수제화협동조합 이사장 역시 협동조합의 가장 큰 장점으로 신뢰를 꼽았다. "협동조합을 한다고 해서 뭔가 획기적으로 변하는 것은 없지만 일단 '뒤통수 맞을' 위험이 없고 조합원끼리 주인의식을 가지고 함께 작업을 한다는 것만으로도 사업이 상당히 안정된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협동조합 기업이라는 점은 해외 바이어들과의 접촉에서도 장점으로 작용했다. 박 이사장은 "외국에서는 제품은 기본이고 기업의 도덕성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면서 "협동조합이 일상화된 나라에서는 조합 특유의 투명성 같은 특징들을 아니까 이런 형태를 유지한다는 것 자체에 신뢰도를 더 주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러한 이점을 인정받아 국제적인 온라인 경매 사이트인 '이베이(eBay)'에서도 투자를 받았다. 성수동 협동조합은 올 8월 중순부터 이곳에 브랜드관을 설치하고 본격적인 온라인 판매를 시작할 예정이다. 이 사무국장은 "이베이는 일반 소비자보다 해외 바이어가 더 많다"면서 "성수동 조합도 당분간 내수 시장보다는 세계 시장 쪽에서 좋은 브랜드로 인정받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이들이 세계 시장을 겨눈 이유는 그곳이 자신들이 가진 잠재력을 최대화 시키는데 적합하다는 결론 때문이다. 이 사무국장은 "한국 제화공들의 특징이 손재주가 좋고 제품 개발에서 생산, 납기까지가 굉장히 짧은데 이를 잘 활용하면 'ZARA'나 'H&M' 같은 '패스트 패션(유행에 맞게 제품 생산·유통을 빠르게 한 패션)'이 가능하다"면서 "구체적으로는 국제적인 구두 트렌드를 선도하는 브랜드를 만들고 싶다"고 설명했다.

해외시장 진출로 가닥을 잡은 탓에 국내 마케팅은 전무한 수준이지만 국내 소비자들도 성수동 협동조합의 쇼핑몰을 방문하면 제품을 구매할 수 있다. 백화점 수제화도 거의 성수동에서 만들어져 나가기 때문에 제품 품질은 비슷하지만 매장 수수료 등 기타 비용이 빠지기 때문에 가격은 절반 수준이다. 백화점에서 보통 20만 원 대에 팔리는 제품들을 이곳에서는 8~12만 원 선에 구입할 수 있다.

조합 내에서 구두 디자인을 맡고 있는 박경진 이사장은 백화점 제품과의 품질 차이를 묻자 "기본적인 부분은 같고 세세한 부자재 사용에서 차이가 난다"고 답했다. 백화점 제품은 대량생산이 가능하기 때문에 별도의 부자재를 대량으로 맞춰서 쓸 수 있지만 그게 안 되는 조합이나 소상공인들은 화려한 부자재 사용에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그는 "구두 내피나 가죽 같은 것도 좋은 것은 따로 주문을 해야 한다"면서 "공동 브랜드가 성공하고 찾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우리도 부자재를 대량으로 맞춰서 세부적인 질까지도 충분히 맞춰갈 수 있다"고 덧붙였다.

 한국수제화협동조합에서 만든 브랜드 크리스진(KrisJin)의 제품. 소재는 아나콘다 가죽, 가격은 10만 원이다.
한국수제화협동조합에서 만든 브랜드 크리스진(KrisJin)의 제품. 소재는 아나콘다 가죽, 가격은 10만 원이다. 김동환

"협동조합 성공? 분명한 사업계획, 수익 모델 필요"

한국성수동수제화협동조합은 협동조합 기본법 발효 이후 5월 31일까지 우후죽순 만들어진 1100여 건의 일반 협동조합 중에서도 단연 우수 사례로 꼽히는 곳이다. 이날 두 시간 남짓 취재하는 중에도 협동조합 관련 문의 전화가 잇따라 걸려왔다.

직접 협동조합을 겪어본 이들의 조언은 단호하다. 다른 곳과 차별화되는 콘텐츠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박 이사장은 "협동조합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수익 모델과 분명한 사업계획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저희가 지금 월 매출이 700~1000만 원 정도에요. 아직까지는 소규모 거래가 대부분이라 원가 빼면 이익금은 별로 안 남는 상태고. 다만 기술이 있고 비전이 보이니까 앞으로 3년 정도는 끊임없이 투자할 생각을 가지고 있지요. 협동조합을 돈을 벌기 위한 수단으로 생각하면 곤란합니다. 협동조합이 이익을 창출하는 데 걸리는 기간은 보통 기업들보다 더 길거든요."

실제로 이들은 모두 협동조합 이외의 생업을 가지고 있는 상태다. 이 사무국장과 박 이사장은 조합 회의에서 선출되어 직함을 가지고 있을 뿐 조합에서 따로 받는 임금은 없다. 오히려 매달 들어가는 사무실 임대료, 전화비 등등 실비용들을 출자금 이외에 공동 회비를 따로 걷어 부담한다.

이 사무국장은 "조합원들이 2~3년은 자기 사업을 한다는 개념으로 전력투구를 해야 하는데 전화 문의하시는 분들은 대부분 막연하게 조합을 시작하려는 분들"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협동조합도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이고 가격이나 품질 면에서 경쟁력이 갖춰지지 않으면 성공할 수 없다"면서 "일단 만들고 보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라고 충고했다.

이런 것도 있다 '이색 협동조합'
도시양봉 협동조합에서 무속인 협동조합까지
협동조합 설립 문턱을 대폭 낮춘 협동조합기본법이 발효되면서 갖가지 협동조합들이 쏟아지고 있다. 한국성수동수제화협동조합이 자리잡은 성수동 일대에만 비슷한 성격의 협동조합이 4개가 있을 정도.

현재 신고가 수리된 1200여 개의 전체 협동조합(일반 협동조합+사회적 협동조합) 대부분은 물품을 공동 구매하거나 판매하는 도매 및 소매업에 분포하고 있다. 그 다음으로 많은 것이 농림 어업 등 생산자 조합들. 제조업과 교육서비스업에도 기본법 발효 이후 조합 숫자가 크게 늘었다.

설립이 자유롭다보니 일반 기업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성격의 협동조합들도 눈에 띈다. 박아무개씨 등 5명은 지난 4월 서울시에 '도시양봉협동조합'을 등록했다. 사업 내용은 말 그대로 도시에서 양봉업을 하는 것이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무교도(무속인)들이 만든 협동조합이다. 조아무개씨 등 6명이 1월 서울시에 등록한 '한국무교협동조합'을 시초로 지난 2월에는 차아무개씨 등 8명이 같은 지자체에 '한국신교협동조합'을 등록했다. 무속인 배아무개씨 역시 7월 2일자로 경기도 고양시에 '산신각 협동조합'을 설립을 신고했다.

고인의 유품을 정리 및 소각해주는 협동조합도 생겼다. 하아무개씨 등 10명은 지난 1월 광주광역시에 이같은 사업을 하는 '사랑과나눔 협동조합'을 등록했다. 제사음식을 전문으로 다루는 '사랑마루 협동조합'도 비슷한 시기에 만들어진 조합이다.

#한국성수동수제화협동조합 #성수동 #수제화 #협동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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