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틀러의 성공시대 1,2> 겉표지
김병현
국민들의 정치혐오가 만연했다. 쿠데타를 일으켜도 보수 기득권층의 입맛에 맞으면 금세 풀려났다. 진보세력은 서로 나뉘어 반목했다. 고용불안과 대량실업으로 노조가 힘을 잃었다. 길거리 보수를 자처하는 세력의 선동적이고 폭력적인 행동이 늘어갔다. 반대자들을 빨갱이로 몰았다. 극심한 경제위기가 닥쳤다.
정치인들은 툭하면 안보를 부르짖었다. 영영 폐지된 것처럼 보였던 사형제가 부활했다. 신념은 없고 정치적 인기에만 몰두하는 정상배들이 판을 쳤다. 언론과 재벌, 권력이 결탁했다.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 특정집단에 대한 근거 없는 분노가 공공연히 표출됐다.
그렇게 히틀러는 무럭무럭 자라났다.
혹시 우리나라의 이야기라 착각하고 읽다가 깜짝 놀랐는가? 사실 나도 쓰면서 헷갈렸다. 이게 당시 독일인지, 지금 한국인지.
1933년의 독일, 2013년의 한국당시 독일은 지금 우리네와 상당부분 닮아있다. 아니, 어쩌면 지금의 상당히 많은 나라들과 닮아있다. 그렇다고 지금 대한민국에 히틀러가 출현할 것이란 주장을 하고 싶지는 않다. 오히려 히틀러가 다시 살아 돌아온다고 해도 집권하기는 힘들 것이라고 생각한다. 난 아직 건강하고 역동적인 시민의 힘을 믿기 때문이다.
설령 히틀러와 꼭 닮은 자가 어느 나라의 정권을 잡더라도 국제사회가 전쟁의 소용돌이로 빠져들지는 않으리라고 본다. 완벽하다고는 볼 수 없어도, 당시와 비교하면 상당히 탄탄한 국제조직과 기구가 갖추어져 있고 무엇보다도 깨어있는 시민사회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지금 히틀러를 논하는 이유가 뭔가. 중요한 것은 히틀러의 존재, 그 자체가 아니다.
당시 독일 국민들도 히틀러가 설마 권력을 거머쥐고 광기를 부리리라 생각했을까. 1928년으로 돌아가 독일 시민 아무나 붙잡고 '히틀러가 5년 안에 총리가 될 것'이라 말한다면 측은한 눈빛으로 당신을 바라보며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쯧쯧, 안 됐어요. 나이도 젊은 양반이…."도대체 5년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이 과정을 김태권 작가는 <히틀러의 성공시대>에 담았다. 히틀러가 정권을 잡는 과정까지를 그렸다. 딱 거기까지만. 어떻게 보면 가장 중요한 대목이다. 기존 히틀러 관련 저술들은 그가 집권한 후부터 자살하기까지에 치중했다. 사실 그쪽이 더 흥미는 있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이것이었다. 민주주의란 얼마나 부서지기 쉬운가. 민주공화국은 얼마나 어이없이 무너지는가. 독일에서 여러 세대가 염원하던 공화국이, 전쟁과 혁명으로 어렵게 세운 민주주의가, 지식인과 예술가들이 겨우 만들어놓은 바이마르 예술 문화가, 천둥벌거숭이 같은 선동가에 의해 몇 개월 만에 싹 사라졌다. 그때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여전히 가능할까? 함께 고민하고 싶다.(2권 333쪽)지금 우리에게 더욱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한 미치광이의 광기가 빚어내는 액션활극 블록버스터인가, 사회가 키워낸 괴물이 민주주의를 고작 몇 개월 만에 무너뜨리는 데 대한 반성적 정치 드라마인가. 대답은 간단하다. 당연히 후자가 아니겠는가.
결과의 참담함으로 교훈을 얻는 것도 중요하지만, 과정을 곱씹어 실체적인 방지책을 고민하는 과정도 필요하다. 우리는 이미 너무나 비싼 수업료를 지불했다. 챙길 것은 다 챙겨야지.
자, 정리하자. 앞서 지적한 바와 같이 히틀러가 배양될 수 있는 토양이 적당히 영글어가고 있다. 히틀러가 출현하기 힘들다는 예상은 지금의 것이다. 이런 추세 속에서 계속 이 예상이 지속되리라고는 장담할 수 없다. 분명한 것은 히틀러가 출현한 시대와 지금의 사회상은 꼭 닮아가고 있다는 점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듣보잡'이었던 히틀러가 독일의 총리가 되기까지의 5년을 알아야 한다. 특히 히틀러 개인보다는, 그 사회를 말이다.
히틀러를 키운 것은 무엇일까?히틀러 논란에서 검질기게 따라다니는 것 중 하나는 과연 제2의 히틀러가 등장할 수 있느냐는 물음이다. 저자는 히틀러가 다시 나오기는 힘들 것이라 예상했다. 앞에서도 밝혔지만 나 역시 마찬가지다. 건전한 민주주의 속에서 작동하는 정상적인 정치체계로는 탄생하기 어려운, 일종의 돌연변이였다.
사실 히틀러 자신은 능력도 없고 소신도 없었다. 그가 쓴 <나의 투쟁>이란 장광설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밑도 끝도 없는 논리의 대향연이 펼쳐진다. 도저히 스스로의 힘으로 클 수가 없는 초라한 인물이었다. 아니, 차라리 여러 차례 위기를 자초했다. 쿠데타가 실패했을 때, 나치당의 2인자 슈트라서가 모든 당직에서 사퇴했을 때, 1932년 총선에서 지지율이 하락했을 때, 파펜 전 총리와의 밀회가 들켰을 때 모두 히틀러의 정치 생명은 위태위태했다. 바꿔 말하면 히틀러를 막을 수 있는 기회가 많았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히틀러는 기사회생했다. 때로는 그놈의 정략적 판단 때문에, 때로는 사회의 무지 속에.
히틀러는 처음부터 신념 자체가 없었다. 그가 처음부터 유대인을 혐오했던 것도 아니었다. 군인 시절에도 유대인 장교가 밀어준 덕분에 철십자 훈장을 받았다. 나치 전체가 그랬다. 히틀러의 입이라 불렸던 괴벨스는 유대인 애인과 사귀었고, 유대인 탄압에 앞장섰던 아이히만도 유대인 친구가 많았다고 한다.
그러나 극우논객이 되어 안보장사를 시작하면서 얘기가 달라졌다. 가톨릭, 프리메이슨, 사회주의자, 자본가 모든 음모론에 손을 댔다. 그러다가 깨달은 것이다. 독일에서 유대인 음모론이 가장 잘 팔린다는 사실을. 계산이 끝나자 곧바로 유대인을 때리며 세를 불렸다. 증오를 키웠고 증오의 대상을 집요하게 물어뜯었다.
유대인 약발이 떨어지자 일체화라는 이름으로 끊임없이 먹잇감을 찾았다. 공산주의자, 온건 좌파 활동가, 중도 우파, 심지어 장애인까지 모두가 대상이 됐다. 이유는 아무렇게나 가져다 붙였다. 어차피 논리는 필요가 없었다. 증오의 힘으로 굴러가는 정권이었기 때문이다. 양자택일을 강요하고, 거부하는 이들을 잡아가두면 그만이었다. 그렇게 사회는 '통합'을 향해 달려갔다. '증오'라는 모터를 달고.
히틀러 전기를 쓴 이언 커쇼는, 히틀러라는 기괴한 인물이 분탕을 칠 수 있었던 것은 당시 '사회적 힘'들의 작용때문이었다고 봤다. 그렇다면 그 사회적 힘들이 비슷하게 존재하는 한 히틀러는 돌아올 수도 있지 않을까. 비록 그 가능성이 높지는 않더라도 말이다. 문제적 개인이 나타나도 사회가 건강하면 큰 탈 없이 넘어갈 것이다. 반면 사회가 증오와 편견으로 기우뚱거린다면 문제적 개인이 늘어나 사고 칠 가능성도 높아지리라.(1권 291쪽)이쯤 되면 우리 사회에 싹트는 '증오'와 '불관용'이 떠올라야 한다. 약자와 소수자, 특정집단을 이유 없이 공격하고 배척하는 모습을 심심찮게 목격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양상은 점점 커져가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우리 사회가 그리 관대한 편은 아니었다. 우리가 안고 있던 근본적인 취약점인 것이다.
혹 누군가가 의도적이든 의도적이지 않던 이 약점을 파고든다면? 거기다가 우리 사회의 분위기가 공존을 거부하고 편견에 빠져있다면? 브레이크 없는 질주가 시작될 수도 있다. 생각만으로도 모골이 송연해지지 않는가.
'홍어', '김치녀', '깜둥이', '짱깨', '개슬람'이란 말들이 존재하는 한, 우리는 히틀러의 망령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히틀러의 성공시대 1
김태권 글.그림,
한겨레출판,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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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틀러 때와 꼭 닮은 지금, 두려운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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