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동 마을의 저수지
이상옥
가로수처럼 전지(剪枝)하지 않아도 스스로 굽어지기도 하고 그냥 서 있기도 하여 풍경을 만들어 가는 - 이상옥의 디카시 <감동(甘洞) 저수지>요즘 국도변을 자동차로 달리다 보면 가로수 전지한다고들 분주하다. 특히 창원에서 고성국도로 가다보면 가로수로 소나무가 즐비한데, 차창가로 비치는 소나무들이 가지런히 정제된 모습으로 단장된 모습이 한편으로 시야를 즐겁게도 하면서, 사람의 시각으로 인위적으로 가지와 줄기를 자른 것이 과연 옳은 일인가, 생각하게 한다.
며칠 전에는 동료들과 마산 가포에 있는 지중해라는 찻집을 갔는데, 그곳에는 수석과 조경수와 마산바다가 어우러져 절경을 이루고 있다. 내가 좋아하는 와플과 팥빙수 먹는 맛도 좋지만 그곳 풍경이 일품이라 가끔 가게 된다. 안주인은 그날따라 조경수들 전지를 하고 있는 것이다. 친절하게 소나무 전지에 대해서 말해주었다. 장마가 오기 전에 잔가지를 잘라주어야 새 순이 돋고 제대로 모양을 잡아간다는 것이다. 제아무리 아름다운 조경수라도 그냥 방치해두면 산발한 머리처럼 금방 자태가 망가진다.
나도 시골집 텃밭에 소나무, 은행나무 등 몇 그루 심어두고 가끔 가지치기도 하고 풀도 베고 하는데, 그냥 방치해두다 싶이 하니까, 나무 모양이 제대로 잡히는 것 같지가 않았다. 그래서 가지치기 방법 등을 책으로 인터넷, 혹은 주변 사람들에게 귀동냥 삼아 배우려고 한다. 사람도 그렇고 식물도 애정을 가지고 관리하고 돌보고 해야지, 무관심하면 제대로 되는 게 없다. 사람 몸도 그렇지 않은가. 음식도 가려 먹고, 운동도 하고 해야지, 체중조절 못하면 건강도 잃고 남 보기에도 좋지가 않다.
요즘 방학이라 비교적 자유롭다. 이틀 전에는 시골집에서 산책을 나갔다. 시골집은 고성 국도의 고성터널을 지나 배둔에서 곧이어 옥천사가는 길로 4킬로만 더 가면 장산숲이 있고, 교회가 있는 배산임수의 전형적인 농촌마을이다. 요즘 고향 마을은 고성군에서 중점 사업으로 시행하는 '고성생명환경농업' 덕분에 농약을 치지 않으니, 마을이 청정지역 같다. 마을 앞에는 논이 있고, 하천도 있고, 또 논이 있고, 그 논길을 따라 가면 감동마을이 나오는데, 그 마을 왼편 골에는 감동 저수지가 나온다. 마을 이름이 '甘洞'이니 물이 얼마나 청정 옥수이겠는가.
마을을 가로질러 감동 저수지까지 천천히 걸어갔다. 저수지 갓길로 가니, 소나무가 하나는 수면으로 굽어져 있고, 또 하나는 그냥 그대로 서 있다. 골짝 저수지 갓길이라 누가 나무를 돌보는 것도 아니고, 제 스스로 본성대로 자라고 있었다. 그런데, 고성가도의 가로수로 즐비한 소나무보다 훨씬 더 아름다운 자태라서 놀랐다. 저렇게 방치해 두어도 스스로 풍경을 만들어가는 것이 아, 무위자연이라는 말이 이런 것이구나, 그야말로 '감동'이었다.
無爲自然, 사전적 의미로는 사람의 힘을 더하지 않은 그대로의 자연. 또는 그런 이상적인 경지를 말한다. 감동 저수지에서 무위자연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보게 된 것이다. 노자는 춘추 전국 시대가 전쟁과 나라의 흥망이 격동하던 시대로 그 혼란의 원인을 자연의 본성에 위배되는 것, 즉 인위로 보고, 공자의 유가 사상을 반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 바, 무위자연은 그냥 건드리지 않고 자연적인 상태를 존중하는 것이다.
며칠 전 할리우드 배우 샤론스톤(55)의 근황 사진이 공개되어 인터넷을 달구었다. 샤론스톤이 이탈리아 로마에서 휴가를 보내는 모습이 파파라치의 카메라에 포착되었는데, 샤론스톤은 앙상한 몸매와 주름진 얼굴 등으로 급격히 노화된 모습을 보여 <원초적 본능>, <콜드 크릭>, <카지노> 등에서 보인 할리우드 섹시스타 이미지와는 격세지감을 느끼게 한 것이다.
샤론스톤은 1958년생으로 만 55세이다. 인터넷에서 본 얼굴은 그냥 55세의 모습 그대로였다. 의외로 서양여성의 노화가 급격하게 진행되는 점을 감안하면 클로즈업 사진으로는 자연스러운 상태가 아닌가 한다. 한때 전세계 남성을 설레게 했던 섹시 스타 샤론 스톤의 주름진 얼굴을 긍정적으로 보는 시선도 있다. 보톡스와 성형 등으로 어색한 모습으로 실망감을 주는 다른 할리우드 배우보다는 훨씬 더 자연스러운 모습이 오히려 낫다는 것이다.
감동 저수지 산책하고 다음 날 한국의 대표적인 인문학자 김열규 교수댁을 방문했다. 오랜만에 김교수님을 뵙고, 어떻게 나이 들어가야 하는지,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김교수님은 팔순을 넘기고도 여전히 집필활동에 매진한다. 그가 쓴 <노년의 즐거움>』에서 노년의 삶은 지성과 정신이 최절정의 경지로 그만큼 에 '왜 위인들의 초상화는 대부분 노년의 얼굴을 하고 있을까?'라고 물으면서, 노년의 삶이야말로 지성과 정신이 최절정의 경지로 인생 최고의 황금기라고 말한다. 그래서 노년의 얼굴은 노을빛, 흰 눈빛, 별빛의 3광으로 빛나는 청춘보다, 꽃보다 아름다운 시기라는 것이다. 김열규 교수는 그의 말대로 팔순을 넘어서 더욱 빛나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연륜이 더하면 더할수록 더 빛나는 노송처럼 무위자연 하여 늙어가는 최절정의 경지에서는 눈가의 주름조차 영화로운 것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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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디카시연구소 대표로서 계간 '디카시' 발행인 겸 편집인을 맡고 있으며, 베트남 빈롱 소재 구룡대학교 외국인 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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