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편의 단편이 담긴 조용호의 새 책 <떠다니네> 표지.
민음사
이처럼 곳곳이 시적인 문장으로 축조된 조용호의 세 번째 소설집 <떠다니네>에 수록된 작품들은 더하거나 덜어낼 것이 없다.
가브리엘 마르케스의 '환상적 리얼리즘' 향기가 물씬 풍기는 '푸른바다거북과 놀다'는 마지막 대목이 압권이고, 책의 서두를 여는 '모란무늬코끼리향로'는 오페라 <카르멘>의 주제 '지독한 사랑은 파멸'이란 걸 소설적으로 변주해냈다.
그러나, 이번 소설집의 백미는 누가 뭐라 해도 연작소설로 읽히는 '베인테 아뇨스'와 '신천옹'이다. 왜냐? 이 두 작품엔 조용호가 시종여일하게 지향해온, '정주(定住)와 유랑은 결국 하나의 것'이란 세계인식이 가장 잘 드러나 있기 때문이다.
아내와 헤어져 혼자 사는 프리랜서 사진작가, 누군가 몰래 들어온 흔적이 역력한 집, 히스테릭한 여자친구, 썩지 않은 조모의 시체, 세상사에 초연한 늙은 수녀, 말기암 환자가 되어서야 다시 만나게 된 전처…(베인테 아뇨스)
동생들과 처자식 때문에 평생을 제 뜻대로 살아보지 못한 중소기업 간부, 살벌한 내용의 붉은 글씨 가득한 도심의 철거민촌, 히말라야 트래킹에서 만난 상처투성이 여자, '바람을 타고 바람을 희롱한다는 새' 앨버트로스가 산다는 남극 인근 캠벨섬, 상상을 뛰어넘으며 거칠게 요동치는 바다, 사라진 친구…(신천옹)
앞서 서술한 것들을 재료로 '세상사 가장 쓸쓸한 이야기'를 만들어낸 조용호. 여기서 굳이 줄거리를 성기게 주워담지 않는 이유는 조용호가 던져놓은 퍼즐조각을 맞춰가는 즐거움을 독자들에게서 뺏고 싶지 않아서이다.
책의 마지막. '작가의 말'을 통해 조용호가 들려주는 이야기의 핵심은 이런 것이다.
"몸이 뿌리를 내려도 마음은 떠돈다. 붙박였다고 갇힌 게 아니고, 떠난다고 늘 자유로운 건 아니다." 그렇다. 이 문장은 불혹의 가시밭길을 지나 가까스로 지천명의 강을 건너기 시작한 그의 철학적(또는, 문학적) 깨달음에 다름 아닌 것으로 읽힌다. 영원히 머물거나, 영원히 떠날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없다.
그리고, 마지막 하나.
내가 조용호를 만난 건 그가 불혹(不惑), 내가 이립(而立)이던 해다. 부끄럽지만 그때부터 지금까지 나는 단 한 번도 혼자 서본 적이 없다. 하지만, 조용호는 언제나 세상사 미혹에 흔들리지 않는 어른스러움을 보여줬다. 삶에 관해 그런 자세를 가지고 있다면 앞으로도 30년, 산수(傘壽)에 이를 때까지 끊임없이 전개될 조용호의 문학적 미래 역시 믿어볼 만하지 않겠는가.
떠다니네
조용호 지음,
민음사,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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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꽃> <한국문학을 인터뷰하다> <내겐 너무 이쁜 그녀> <처음 흔들렸다> <안철수냐 문재인이냐>(공저) <서라벌 꽃비 내리던 날> <신라 여자> <아름다운 서약 풍류도와 화랑> <천년왕국 신라 서라벌의 보물들>등의 저자. 경북매일 특집기획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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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하거나 뺄 것이 없는, '세상사 가장 쓸쓸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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