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음봉사자들의 모습인터뷰에 참여한 녹음봉사자들.
왼쪽부터 장재희·김종옥·이은영씨.
유정아
"아뇨. 점자책보다 오디오북(음성도서)을 훨씬 많이 써요."인천 송암점자도서관의 김윤미 팀장(40, 여)은 "시각장애인들은 점자책을 주로 이용하냐?"는 기자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기자처럼 시각장애인의 독서를 떠올릴 때, 비장애인들은 보통 점자책을 먼저 생각한다. 그러나 실제 그들에게 더 친숙한 것은 육성으로 녹음된 음성도서다. 김 팀장은 "요즘 노환으로 시력을 잃는 분들이 예전보다 많아졌다"며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노인이 늘어나다 보니 노환으로 시력을 잃게 되는 분들도 많고, 사고로 중간에 실명하시는 분들이 많아요. 그런 분들은 아무래도 점자가 익숙치 못하다 보니까, 오디오북을 더 많이 이용하게 되죠. 한 권을 만드는 데 반 년 가량이 걸리는 점자책에 비해, 3~4개월 정도가 소요되는 음성도서가 더 많이 만들어져서 접하기도 쉽고요."그러나 음성도서를 구할 수 있는 경로는 많지 않다. 그래서 시각장애인복지관과 점자도서관들은 음성도서를 직접 제작해 필요한 이들이 무료로 이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도서의 육성 녹음이다. 이 일은 전부 자원봉사자들이 맡는다.
이들은 일주일에 1,2일 정도 기관을 방문해 녹음실에서 책을 소리내어 읽는다. 성우 못지않게 낭랑한 목소리다. 그런데 비장애인들에게 낯설기만 한 녹음봉사를 하는 이들은 모두 평범한 직장인이나 주부였다.
"80년대에는 시각장애인 집에서 음성도서를 만들었다"매주 금요일마다 인천 시각장애인복지관을 찾는 녹음봉사자 장재희(53, 여)·김종옥(61, 여)·이은영(55, 여)씨. 이들은 각각 1년·3년·20년의 경력을 가지고 있다. 한두 권의 책을 만들고 그만두는 봉사자들이 많은 환경에서, 5권 이상씩을 제작한 이들은 가장 성실한 녹음봉사자에 속한다.
각각 2011년·2012년에 일을 시작한 장재희씨와 김종옥씨는 봉사를 신청한 후 시각장애인 복지관에서 교육받은 뒤 녹음을 시작했다. 그러나 20년의 경력을 가진 이은영씨가 녹음봉사를 시작한 80년대 초에는 지금 같은 음성도서 제작 체계가 없었다.
"남산 근처에 시각장애인을 가족으로 둔 분이 직접 만든 녹음실이 있었어요. 녹음실이라고 해봤자 그 분이 본인 집에 기계를 설치해놓은 정도였죠. 녹음봉사라는 용어도 없었고. 그냥 찾아가서, 거기서 녹음하면서 처음 음성도서를 만들었어요."(이은영씨)
이들은 이 복지관에서 주로 제작 요청이 들어온 책이나 제작팀에서 배정해준 책을 녹음한다. 가끔은 본인이 선택한 책을 가져와 녹음하기도 한다. 김종옥씨는 자신이 감명 깊게 읽었던 톨스토이의 단편집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로 첫 녹음을 진행했다. 김씨는 "좋아하는 책을 오랜만에, 그것도 소리내어 읽으니 이야기의 의미도 새롭게 다가오고 참 재미있더라"며 웃었다.
소설을 주로 녹음한다는 장재희씨는 "많은 등장인물이 대화하는 장면에서, 목소리를 구분지어 녹음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고 신경쓰이는 부분이다"고 말했다. 이은영씨는 "한 안마사로부터 신청받아 녹음했던 <소설 동의보감>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며 그 특별한 사연을 들려주었다.
"우리(봉사자)는 녹음실에서 녹음만 하니까, 음성도서를 이용하는 사람들하고는 직접 마주칠 일이 없죠. 그런데 <소설 동의보감>을 녹음하고 얼마 있다가 그 책을 신청한 분하고 마주치게 됐어요. 안마사였는데, 제 손을 꼭 붙잡고 '덕분에 잘 들었다. 일하는 데 정말 큰 도움이 됐다. 고맙다'고 계속 말하더라구요. 이 일을 하면서 제일 뿌듯했었던 순간이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