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골 할아버지지난 2007년 어느 봄날
김민수
이제 할머니는 홀로 그곳에서 살아가실 수 있을까? 당분간은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이제 그곳에는 노부부가 키우던 백구 두 마리 외에는 친구 해줄 벗이 없다. 그리고 밭일도 고되고, 노구의 몸으로 홀로 농사를 짓기에는 할머니도 너무 연세가 많으시다.
올해 지은 농사는 어찌어찌 자식들이 거둘 것이다. 옥수수를 위시해서 고추며, 백태, 들깨, 벼 타작까지 끝나면 내년엔 봄이 와도 농사를 지을 수 없을 것이다. 아무리 농사일에 단련되었더라도 할머니 혼자서는 고작해야 텃밭 정도를 가꾸실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할아버지 산소가 그곳에 있으니 묘지를 돌보며 그곳에 살겠노라고 하실지 모르겠지만, 물골의 밤은 너무 외롭고 쓸쓸할 것이다.
타인의 죽음에 대해 너무도 덤덤한 나 자신이 놀랍다. 그간의 정을 생각하면 장례식에 참석해야 마땅할 터인데도 그저 장례식장에 들른 것으로 나의 할 일을 다했다 생각한다. 그리고 스스로 인연의 끈도 다했다고 결론을 내린다. 그렇게 죽음은 나와 물골을 갈라놓는다. 그분들이 없는 물골을 찾을 이유가 여전히 있을까 싶기 때문이다. 너무 차가운 나를 보지만, 그게 나의 한계다.
그분들의 이야기가 실린 가사를 출력해서 가져다 드렸을 때, 이름 석 자와 사진이 활자화된 것이 처음이라며 신기해하시던 물골 노부부. 방송을 통해서 자신들의 얼굴을 보면서 신기해하시던 물골 노부부. 그들의 일상이 왜 다른 이들에게 특별한 것인지 그분들은 잘 몰랐다. 어쩌면, 내가 그들을 이용한 것이다. 이제 그 소용이 다했으므로 인연의 끈이 다했다고 스스로 결론을 내리는 것은 아닐까 싶어 나의 차가움이 스스로 무섭게 느껴진다.
오늘은 장맛비가 내릴 것이라 했는데, 다행히 소강상태에 접어들었고 장례식도 무사히 마쳤다고 한다. 장맛비라도 추적거리며 내렸더라면 얼마나 힘들었을까? 장마예고에도 비가 내리지 않은 것도 그 할아버지의 복일 터이다. 가을이 오기 전, 물골을 한 번은 더 찾아갈 것이다. 할아버지의 무덤에 소주라도 한 잔 부어 드려야 할 것 같아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