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기념물인 수덕여관은 이응로 화백이 1944년에 구입한 초가집이다.
하주성
1948년에는 홍익대학교 주임교수로 재직하였으며, 1962년 프랑스 파리 파케티 화랑에서 콜라주전을 열었다. 1965년에는 브라질 상파울루 비엔날레에서 명예상을 차지해 세상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1967년에는 한국 전쟁 때 헤어진 아들을 만나기 위해 동독의 동베를린에 갔다가, 동베를린간첩단 사건에 연루되어 옥고를 치르다가 프랑스 정부의 주선으로 석방되어 다시 프랑스로 건너갔다.
이 일로 인해 국내 화단과는 단절되다시피 했으며 주로 스위스와 프랑스 등에서 수십 차례의 초대전에 출품하는 등 꾸준한 활동을 계속하였다. 1975년 현대화랑에서 개인전을 가졌고, 1977년 문헌화랑에서 신작 '무화(舞畵)'로 개인전을 열었으나, 또다시 정치적 사건에 연루되어 국내와는 완전 단절이 되었다.
여류화가 나혜석도 살다간 수덕여관 이응로 화백은 집 앞에 있는 바위에 1969년 동백림 사건으로 귀국했을 때, 고향산천에서 삼라만상의 성쇠를 추상화하여 표현했다.
이 수덕여관은 수원 출신인 최초의 여류화가 나혜석이 묵었던 곳이기도 하다. 일설에는 나혜석이 수덕사에서 3년간 머물렀다고 하지만, 사실은 수덕사의 경내가 아닌 이 수덕여관이라는 것이다. 미술계 남녀 거장이 묵었던 이 수덕여관이야말로 우리 미술사에서 새롭게 조명해야 할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