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근리 쌍굴다리노근리 사건이 일어난 현장이다.
최아람
사건 현장인 굴다리 벽에는 동그라미·세모·네모 등의 도형과 숫자가 빼곡히 적혀 있다. 동그라미는 총탄의 흔적이고, 세모는 총탄이 박혀있는 곳, 네모는 박격포의 흔적이다. 영문도 모른 채 3일 동안 총탄을 맞아야 했던 희생자들의 절규가 갖가지 도형과 숫자로만 표현될 수 있을까.
전시관서 봤던 영상 속 애니메이션에는 우는 아기를 물 속에 수장하는 아버지의 모습이 나온다. 결국 그 아버지는 사내무당이 됐다가 얼마 전 생을 마감했다고 한다. 역사책 속의 글자들이 한 사람의 삶 속으로 들어와 보여질 때, 그 충격과 아픔이 배가 됨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제 자식의 숨통을 자기 손으로 끊어야 했던 부모가 그 후에 온 정신을 붙잡고 살기에는 무척 힘들었을 것이다. 미 제1기병사단 제8기병연대 통신일지에 적힌 "전선을 넘으려는 자 모두 사살하라"는 한 줄의 명령이 몇백 몇천의 삶을 송두리째 바닥부터 헤집어놨다.
답사를 진행하고 있던 순간, 그곳 주민들은 비통한 표정을 짓고 있는 우리를 무심하게 지나쳤다. 수백의 삶이 억울하게 산화된 그 장소에서 현재의 삶이 계속되고 있는 장면이었다. 우리는 일 년에 한 번 이곳에 올 뿐이지만, 이곳 사람들에게는 일상의 풍경인 것이다. 마치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차량이 통제된 금남로만 보다가 금남로가 본디 차가 다니는 도로라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의 충격과 같다고나 할까.
커다란 죽음의 구덩이에 산화한 희생자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