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혈사 삼층석탑과 소나무가 다정하게 산아래를 내려다 보고 있다
임재만
지난 12일 공주시 의당면 월곡리에 있는 동혈사를 찾았다. 천태산 중턱에 자리한 조그마한 사찰이다. 공주에서 전의 방향으로 가다보면 의당면 월곡리에 제법 높은 고갯길이 있다. 그 고갯마루에 올라서면 동혈사로 안내하는 커다란 표지석이 서 있다. 동혈사로 올라가는 길은 차가 다닐 수 있는 넓은 길이지만 제법 경사가 급하다. 공주 쪽에서 가다보면 동혈사로 가는 길이 180도로 되돌아 올라가야 하기 때문에 그냥 지나치기 쉽다.
숲으로 덮여 있는 포장되지 않은 산길을 따라 올라갔다. 산모퉁이를 몇 번 돌아 올라서자 차를 주차할 만큼 비교적 넓은 곳에 표지판이 하나 서 있었다. 예전에 동혈사가 있던 자리라고 적혀 있다. 가만히 절터를 살폈다. 절집은 온대간대 없고 방초만 푸르다. 마치 오래 동안 관리하지 않은 주인 없는 무덤 같았다.
날씨가 갑자기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또 비가 내릴 모양. 서둘러 산사로 걸음을 재촉했다. 얼마 가지 않아 강처럼 길게 구부러진 산길이 나타나고 그 위에서 동혈사가 나를 가만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작은 산사에 불과하지만 제법 운치가 있어 보였다. 대웅전 뒤로는 천태산이 하늘처럼 버티고 서 있고, 앞으로는 툭 터진 산 아래 풍경이 시원스럽게 펼쳐졌다. 산길을 걸어 오르면서도 예상치 못한 멋진 풍경. 그저 여느 절처럼 산속에 깊이 들어앉은 절로만 생각했다. 대웅전 위로는 산신각으로 이어지는 가파른 계단이 있었다. 산신각으로 올라가는 계단 길에 고려시대의 것으로 보이는 삼층석탑이 고풍스럽게 서 있었다. 오랜 세월을 말해 주듯 푸른 이끼들이 탑의 온몸 구석구석에 세 들어 살고 있었다.
드디어 산길을 내내 따라오던 먹구름이 비를 뿌리기 시작했다. 요란한 비 소리는 산사의 적막을 깨고 말았다. 다행히 산신각이 근처에 있어 어렵지 않게 비를 피할 수 있었다. 갑자기 내리는 걸 보니 금세 그칠 소낙비인 듯. 산사에서 우중에 내려다보는 산풍경이 색달랐다. 한 폭의 산수화를 펼쳐 놓은 듯 보는 재미가 솔솔했다. 나뭇잎으로 떨어지는 빗소리도 좋고, 비 사이로 뿌옇게 내려다보이는 산 아래 풍경도 수채화처럼 좋았다. 마치 신선이 된 기분이었다. 평화로움이 밀물처럼 마구 밀려왔다. 구름의 행세로 보아 비는 금세 그칠 것 같아 내려갈 걱정도 없다. 마음 놓고 쉴 수 있는 나만의 공간을 찾은 느낌이었다. 언제 이런 호사를 누릴 수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