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족의 소박한 '시국선언'
김동수
"우리도 시국선언할까요?""시국선언? 우리가 어떻게 해요?""국정원이 불법선거를 저질렀는데 가만히 있으면 안 돼죠.""아무리 그래도 가족이 시국선언을 어떻게 해요. 시국선언이 애들 장난도 아니고."
지난 6월 5일 시민사회단체들이 시작한 국가정보원 불법적인 정치·대선개입을 규탄하고 개혁을 촉구하는 시국선언이 이어지자 아내에게 우리 가족도 시국선언을 하자고 말했습니다. 아내는 국정원이 불법선거를 저질렀고, 박근혜 대통령이 이에 대해 사과조차 하지 않는 것에 대해 비판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국정원 불법선거가 민주주의를 훼손하고 박 대통령이 사과를 하지 않았지만, 가족이 시국선언하는 것에 대해서는 반대했습니다.
아이들과 함께하는 것이 마음에 부담이 되는 것 같았습니다. 저 역시 시국선언을 꼭 장난처럼 여길 수 있다는 아내 말에 고민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한번씩 아내에게 시국선언을 이야기를 꺼냈지만, 돌아오는 답은 비슷했습니다.
하지만 지난 14일 우리나라에서 가장 보수이념이 강한 대구·경북지역에서 신부와 수도자 등 사제단 250여 명이 시국선언을 한 것을 보고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대구대교구 신부들이 시국선언에 나선 것은 1911년 출범 이후 102년 만에 처음입니다. 전두환 폭압정권이 종말을 고해가던 1987년에도 대구교구는 시국선언에 동참하지 않았습니다. 그만큼 이번 국정원 불법선거는 전두환 정권 때보다 더 심각한 상황임을 보여주었습니다. 이런 모습을 보고 목사인 내가 시국선언을 하지 않는 것은 신앙 양심이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사제단은 시국선언문을 계시록 21장 8절 "모든 거짓말쟁이들이 차지할 몫은 불과 유황이 타오르는 못뿐이다"로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교회는 이 세상 안에서 하느님 나라의 건설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면서 "하느님 나라는 진리와 정의가 존중받는 나라, 거짓과 부정에 대항하는 나라입니다. 교회는 정의롭지 못한 현실 앞에서 침묵하는 것을 죄악으로 규정하고, 우리에게 불의에 저항할 권리와 의무가 있음을 가르칩니다"고 천명했습니다.
"민주주의는 국민이 주인"... 초등학생 막둥이도 알고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