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 게바라. 사진은 1960년 3월 5일 사진작가 알베르토 코르다(Alberto Korda)가 찍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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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언컨대, 나는 광복절의 취지에 가장 잘 부합하는 인물이 누구냐고 묻는다면 주저함 없이 체 게바라를 손꼽겠다. 부디 오해는 마시라. 우리나라에도 식민지 조국의 해방을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바쳤던 위대한 독립운동가들이 적지 않다는 건 많은 이들이 알고 있다. 체 게바라가 아니라 우리 독립운동가의 얼굴이 그려진 옷을 입고 출연했다면 문제삼기는커녕 앞 다퉈 상찬했을 것이다.
문제는 그들은 되고, 왜 체 게바라는 안 되느냐는 것이다. 공연장에서 맨 먼저 문제를 삼았다는 광주 보훈청장에게 묻고 싶다. 당신은 과연 체 게바라에 대해서 제대로 알고 있는가. 문제제기로 미뤄, 그의 인식 속에 체 게바라는 그저 쿠바를 공산화시킨 '빨갱이'일 뿐이다. 거칠게 말해서, 체 게바라는 여전히 타도해야 할 '적'으로 간주하고 있는 셈이다.
동지인 피델 카스트로와 함께 그가 혁명을 일으킬 당시의 쿠바의 상황과 일제 식민지의 질곡 속에서 헤매던 우리나라와 얼마나 다를까. 그를 단순히 '사회주의자'라는 틀로 규정하는 건 편협한 사고다. 저명한 프랑스 사상가 사르트르는 그를 두고 '20세기 가장 완벽한 인간'이라고 말했다. 이념적 사고로 재단하기에는 너무나 큰 그릇이라는 의미다.
주지하다시피, 체 게바라는 에스파냐와 미국으로 이어진 제국주의 침략에 맞서 쿠바 민중들과 연대해 혁명을 완수한 인물이다. 아르헨티나의 유복한 집안 출신의 의사로서 안락한 삶에 안주하지 않고, 가난에 허덕이는 민중의 해방을 위해 삶을 바친 혁명가다. 쿠바 혁명을 성공시킨 뒤에는 '쿠바에서 할 일은 다 끝났다'며, 권력을 탐하지 않고 홀연히 아프리카로 떠난 모습은 흡사 '성자'의 모습이다. 그를 '전사 그리스도'라 칭하는 이유다.
그의 '굵고 짧았던' 생애를 통해 우리 독립운동가의 모습을 떠올리는 건 나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그가 평생 추구했던 신념이란 일체의 억압이 없는 세상을 꿈꾼 것이었다. 곧, 남아메리카 민중의 비참한 삶을 만난 뒤 '인간에 대한 사랑'을 죽음으로써 실천한 숭고한 휴머니스트였다. 일제강점기 우리 독립운동가의 모습이 이러하지 않았을까.
항일투쟁은 사회주의 세력 빼곤 설명 불가능
체 게바라에게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이들은 대체로 광복의 의미와 과정을 독점하려 든다. 식민지 굴레를 벗어나기 위한 노력은 특정 세력의 공으로 돌릴 수 없다. 친일파를 제외한 비타협적 민족주의자들과 사회주의 세력을 아우르는 민족적 항일 투쟁의 결과가 바로 8·15 광복이다. 외세의 도움은 받았을지언정, 수많은 독립운동가의 피와 땀이 아니었다면 해방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런데도 반제 항일투쟁사에 있어서 사회주의자들의 몫을 인정하지 않은 채 오로지 일부 민족주의자들과 외세, 특히 미국의 도움으로 해방이 됐다고 단정하는 것이다. 광복절과 삼일절에 태극기와 함께 성조기가 펄럭이는 생뚱맞은 모습은 그렇게 이해될 수 있다. 분단과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사회주의자는 '빨갱이'고, '빨갱이'는 친일파라는 황당한 논리가 확산됐다.
요컨대, 광복절이 일제 식민지로부터 해방된 것을 기념하기 위한 것이라면, 사회주의를 신봉한 독립운동가도 기억돼야 마땅하다. 나아가 이념이야 어떻든 우리나라의 해방에 헌신한 외국인들까지도 애써 찾아 추모하고 기념해야 옳다. 단지 사회주의 혁명가라는 이유로 체 게바라의 숭고한 삶을 부정하고 내치는 나라는, 대한민국 외에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