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구암 허준>의 선조(전노민 분).
MBC
임진왜란 때 선조 임금이 무책임하게 행동했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그는 나라를 지키기보다는 자기 안위를 지키기에 급급했다. 그는 일본군의 북상 속도 못지않게 신속히 북상했다. 그런 모습을 인공위성에서 지켜봤다면, 선조가 멀찌감치 앞장서서 일본군을 이끌고 북상하는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선조 임금 못지않게, 아니 훨씬 더 무책임한 통치자가 있었다. 일부 사람들이 아직도 대한민국의 국부로 떠받드는 대통령 이승만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실상을 알고 보면 이승만이 훨씬 더 무책임했다는 점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MBC 드라마 <구암 허준>의 선조는 마지못해 피난을 가는 듯한 인상을 풍기고 있다. 드라마 속의 선조는 일부 신하들의 간청에 못 이겨 한성을 떠나 개성에서 평양으로, 다시 의주로 이동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나라를 지키지 않고 자기를 지킨 선조역사 기록 속의 선조는 드라마와 달리 아주 명확하게 무책임성을 보여주었다. 임진왜란은 음력으로 선조 25년 4월 13일(양력 1592년 5월 23일) 발발했다. 선조는 전쟁이 발발한 날로부터 17일 뒤인 음력 4월 30일(양력 6월 9일) 새벽에 소수의 수행원만 데리고 한성을 탈출했다. 그의 탈출이 부득이한 행동이 아니라 무책임한 행동이었다는 점은 조선 백성들이 선조를 격렬히 비난한 데서도 잘 드러난다.
선조는 개성·평양·영변을 거쳐 음력 6월 22일(양력 7월 20일)에 최전방인 평안도 의주에 도착했다. 이쯤 되면 갈 데까지 간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았겠지만, 선조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에게는 아직도 갈 데가 더 있었다. 압록강 건너 명나라로 도망갈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선조는 명나라 망명 계획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 해 6월 26일자(양력 7월 24일자) <선조실록>에 따르면, 선조는 명나라에서 조선왕을 푸대접할 것으로 보인다는 첩보를 입수한 뒤 망명 계획을 포기하고 말았다.
명나라는 선조가 망명할 경우에 압록강 인근의 전방 군사기지인 관전보에 그의 숙소를 마련해줄 계획이었다. 이곳은 명나라와 여진족 군소 정권들의 경계지역이었다. 그래서 매우 위험한 곳이었다.
명나라가 그런 곳에 거처를 만들어주려 한다는 첩보를 입수한 선조는 그제야 체면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한성을 떠나는 순간부터 이미 체면은 땅에 떨어졌는데도, 선조는 관전보 같은 곳에 기거할 경우에 자신의 체면이 추락하리라고 염려했다. 이렇게 오로지 자기 자신을 기준으로 모든 것을 판단했기 때문에 선조는 무책임한 왕으로 기억될 수밖에 없었다.
선조를 무색케 하는 무책임의 극치, 이승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