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2 개그콘서트 한 장면 갈무리신보라 눈치를 살피며 박은영은 연신 '가실게요'를 말한다.
KBS2
개그맨은 부러 유행어를 만들어 퍼뜨린다. 일부러 운율을 넣거나 말을 되풀이해서 어떻게든 관객과 시청자에 기억을 오래도록 깊게 남겨야 그 판에서 살아남는다.
그런 점에서 보면, KBS2 '개그콘서트' <뿜 엔터테인먼트>라는 꼭지는 성공했다. '뿜 엔터테인먼트'는 연예기획사에서 볼 듯한 연예인의 허세를 꼬집고 비꼰다. 김지민의 '느낌 아니까~'나 박은영의 '잠깐만요, 보라언니 OO하고 가실게요'는 이미 많은 사람 입에 오르내릴 만큼 유행어가 되었다. 하지만 '보라 언니 OO하고 가실게요'라는 말, 어떤가?
하지만 인기있는 꼭지라고 해서 우리 말을 마구잡이로 비틀어서는 안된다. 인기있는 방송 프로그램은 우리 말에 다른 어떤 매체보다 큰 영향을 끼친다. 들어보면 알겠지만, '가실게요'는 말맛이 영 어색하다. 왜 그럴까.
'가실게요'는 '가시+ㄹ게+요'로 갈라서 생각할 수 있다. 이 'ㄹ게'는 어떤 행동을 하겠다고 약속하는 뜻을 나타내는 맺음씨끝이다. 그러니까 말을 내뱉는 사람의 의지를 나타낸다. 보기를 들자면, "거기엔 내가 갈게", "그 일은 내가 할게", "쓰레기는 내가 치울게"처럼 쓴다. 그런데 '보라언니, OO하고 가실게요'는 보라언니 의지를 다른 사람(박은영)이 대신 말하는 꼴이다. 하지만 'ㄹ게'는 말하는 사람의 의지를 나타내기 때문에 적절한 표현이 아니다. '갈게요' 하고 '가실게요'하고 말맛이 어떻게 다른가를 생각해보라.
이런 말을 이해 못할 바도 아니다. 코미디 속 이야기이지만, 속내를 들춰보면 강자와 약자라는 계급적 구조가 숨어있다. 눈알을 부라리며 거들먹대는 사람이야 말 한 마디면 되지만, '가실게요' 하고 연신 눈치 살피며 수발 들어야할 사람은 말 한 마디가 다 조심스러울 수밖에. 가는 사람이 나보다 윗사람이니 '갈게요'는 안되겠고, 그래서 '가실게요'라는 말이 나왔을 거다. 하지만 굳이 대신 말할 처지라면 "하시겠습니다"나 "가시겠습니다"처럼 말하면 좋겠다.
내가 이렇게 말하면 웃자고 하는 일에 죽자고 덤벼드는 격이라고 나무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말과 글을 올바르게 가꾸어야할 책무가 있는 방송 신문까지 '가실게요'를 마구잡이로 퍼뜨려서야 되겠냐는 생각이 크다. 더욱이 한번 비뚤어진 말법은 여간한 노력이 아니고서는 고치기 어려운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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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실게요' 말고 '가시겠습니다'로 바꿔 말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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