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테하우스괴테하우스를 알리는 간판. 아침부터 사람이 많았다.
김준식
친구였던 요한 케스트너의 비극적 자살을 소재로 하여 20대 후반의 괴테는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라는 소설을 썼는데 소설 속 베르테르의 행동을 따라하고 심지어 자살가지 하는 일이 생길만큼 유명해져 하루아침에 괴테는 저명한 작가의 반열에 오르게 된다.
그 괴테가 청년시절을 보낸 집을 다시 개보수하여 그의 손길이 묻은 여러 물건들을 전시해 놓고 괴테의 집이라 하니 많은 사람들이 괴테를 느끼기 위해 아침부터 줄을 서서 입장하고 있었다. 물론 괴테는 이십대 중반 이후에는 프랑크푸르트 암 마인을 떠나 바이마르에서 공직 생활을 했고 그 후 바이마르에서 83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무덤도 바이마르에 있다.
이제는 그가 살았던 시절의 흔적조차 지워진 그의 집이었지만 고등학생쯤으로 보이는 학생들이 그들의 위대한 선조를 배우기 위해 삼삼오오 모여 선생님으로부터 설명을 듣고 있는 태도는 매우 진지해 보였다.
괴테 하우스에 전시되어 있는 여러 예술품 중 괴테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준 이탈리아 여행의 한 장면을 묘사한 요한 하인리히 빌헬름 티슈바인이 그린 '캄파냐 평원에서의 괴테'라는 그림이 있었다. 괴테 하우스에 있는 괴테 그림이니 당연히 진짜라는 생각에 열심히 카메라 셔터를 누른 뒤 자세히 보니 진품은 이 도시에 있는 슈테델 미술관에 전시되어 있다고 적혀 있었다. 왠지 속은 듯 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어쨌거나 괴테의 이탈리아 여행은 괴테의 삶에 커다란 전환점이 되었는데 꼭 위대한 괴테가 아니더라도 보통의 우리에게도 여행은 삶에 수분과 영양을 공급하는 중요한 원천이 된다. 하물며 위대한 괴테의 여행임에야 말할 필요가 없다. 괴테의 이탈리아 여행기를 읽다보면 이런 말이 나온다.
'내가 로마 땅을 밟게 된 그날이야말로 나의 제2의 탄생일이자 나의 진정한 삶이 다시 시작된 날이라고 생각된다. 로마에 와보지 않고서는 여기서 무엇을 배우게 되는가를 전혀 알 수 없다.' 괴테 나이 37세 시작한 이탈리아 여행은 약 2년 동안 계속되었는데 이 여행의 경험을 책으로 펴냈음은 물론이거니와 그 뒤의 괴테 전 생애를 걸쳐 두고 두고 이 여행으로부터 많은 작품의 배경이 되는 고전주의의 영감을 제공받는다.
슈테델 미술관독일에서 가장 유명한 미술관 중의 하나로서 프랑크푸르트 은행가인 슈테델의 헌금으로 설립하였다. 앞에서 말한 '캄파냐 평원에서의 괴테' 진품이 전시된 곳으로서 약 10만점의 미술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괴테 하우스에서의 실망을 만회하기 위해 오래 그 그림을 보았다. 왠지 약간은 거만해 보이는 괴테 뒤로 폐허의 이탈리아 유적이 있는 그 그림은 1786년에 요한 볼프강 폰 괴테를 알게 된 티슈바인이 이듬해 괴테와 함께 나폴리를 여행하면서 그린 그림이다. 캄파냐 평원은 나폴리와 폼페이 그리고 소렌토의 근간이 되는 평원이다.
렘브란트, 모네, 르느와르, 꾸르베 등 중세 독일·네덜란드 회화, 14~18세기 이탈리아 회화 등의 작품들을 볼 수 있는데 필자가 방문했을 때는 20세기 초 독일 화가 한스 토마 특별전이 열리고 있었다.
한스 토마는 풍속·정물·종교·신화 등 여러 영역에 걸쳐 작업했으나 남독일의 전원·산악풍경화와 가족·농민·어린이 등을 묘사한 인물화를 주로 그렸다. 사실주의 기법으로 그린 그림이 많았는데 특히 그의 초상화가 매우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있었다. 그런가 하면 풍경화는 낭만적 분위기가 풍기면서도 약간은 소박한 느낌을 주는 그림들이 많았다. 그 풍경화 중 일부 그림은 어린 시절 아버지를 따라 읍내 이발관에 가서 한참 동안 아버지 면도를 지켜보다 지루하고 졸린 눈으로 바라 본, 이발관 벽에 걸려있는 풍경화와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그 그림들의 운명은 너무나 많은 차이가 있다.
미술관의 넓이와 전시 공간은 매우 크고 넓었으며 그 그림들에 맞춰진 조명과 적절한 컬러의 벽체로 꾸며져 있었다. 가끔 우리나라 미술관에서 느끼는 몇 몇 유명 화가의 작품 서너 점과 이름 모를 작가의 그림 여러 점을 섞어 전시하는 급조된 분위기와는 너무 달라 부러운 맘과 함께 척박한 우리 전시문화가 안타까웠다.
작센하우젠과 유럽중앙은행사과 농업으로 해서 생긴 사과주가 유명한 지역이 바로 작센 하우젠이다. 우리나라로 말하자면 사과주거리쯤으로 이해될 수 있겠다. 거리 입구 도로 바닥에 작센하우젠 거리 전체 지도가 그려진 황동쇠판이 있다. 거리에는 사람들이 이른 저녁을 먹고 있었고 보도블록 곳곳에는 사과모양의 황동판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