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로세움의 중앙 무대와 그 지하 모습, 지하실에는 각종 기계장치와 맹수 우리가 있었다. 교묘한 장치에 의해 경기 도중 맹수가 땅 속에서 솟구쳐 나오기도 했다.
박찬운
이제 콜로세움을 좀 설명해 보자. 이것은 5만 명 이상의 관중이 들어갈 수 있는 로마제국 역사상 가장 큰 원형경기장이었다. 바닥면적이 2만4천제곱미터, 길이 189미터, 폭 156미터의 타원형 극장이다. 외벽의 높이는 48미터이고 외벽 둘레 545미터이다. 콜로세움의 중앙에는 타원형 무대가 있는데 길이 87미터, 폭 55미터이고 이것은 높이 5미터의 담장에 둘러싸여 있다. 내부의 관람석은 가파르게 경사져 있어 관중은 중앙 무대에서 펼쳐지는 공연을 잘 볼 수 있었다.
콜로세움의 수용 인원이 5만명이 넘는다면 어떻게 그 많은 사람들이 경기장을 들어가고 나가고 했을까. 현대식 경기장도 쉽지 않을 텐데 말이다. 그 비밀은 출입구의 수에 있었다. 무려 76개의 출입구가 있어(각각의 출입구에는 번호가 매겨져 있었다. 현재도 그 흔적을 볼 수 있는데 23번부터 54번까지 문에는 그 번호가 아직도 보인다) 아무리 많은 사람이 들어와도 순식간에 빠져나갈 수 있도록 했다. 어떤 자료에는 화재가 나는 경우 관객이 콜로세움 밖으로 탈출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불과 15분 정도였다고 한다.
이 대목에서는 상상이 안 간다. 만일 우리나라의 잠실 스타디움에서 대형 화재가 났다 하자. 혼비백산한 수만 명의 관중이 어떻게 그 화마에서 단 15분 만에 빠져나올 수 있을까. 현대의 각종 소방시설도 콜로세움의 시설과 비교하면 유치한 수준에 불과하다고밖에는 말할 수 없을 것 같다.
인류의 위대한 문화유산
콜로세움의 관중석은 철저히 로마 사회의 신분에 따라 자리가 정해져 있었다. 남쪽과 북쪽의 가장자리에 있는 특별석은 중앙무대 전체가 가장 잘 보이는 곳으로 황제 가족의 전용 특별석이었다. 그 옆으로 같은 층에는 원로원 귀족들이 앉을 수 있었다. 이들은 자신들의 전용 의자를 가져올 수도 있었다. 지금도 일부 좌석에는 원로원 귀족의 이름이 보인다. 아마도 귀족들에겐 지정석이 주어졌던 모양이다.
원로원석 위로는 원로원 귀족 아닌 귀족들이 앉았고, 그 뒤로 로마의 자유시민이 앉았다. 일반 시민석도 둘로 나뉘어졌는데 중앙무대에 좀 더 가까운 아래쪽은 부유 시민이, 그 위는 가난한 시민이 앉았다. 관람석의 맨 위는 가장 나쁜 자리인데 여기도 일군의 사람들이 앉았다. 바로 여자와 노예들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신분이 아무리 낮다고 해도 그 재미있는 경기를 보고 싶었던 모양이다. 가난할수록 부자들이 열광하는 것에 대해 더 큰 욕망이 있었을 것이다.
콜로세움 중앙 무대 아래에는 지하실이 있는데 이것은 일련의 지하통로로 이루어진 것으로 공연에 쓰였던 야생 맹수와 기계장치가 보관되었던 곳이다. 조련사가 공연 중에 지하에서 맹수가 튀어나올 수 있도록 만들었다고 한다. 아마도 관중은 이 광경을 보고 깜짝 놀랐을 것이다. 더욱 재미있는 것은 콜로세움 꼭대기에는 240개의 구멍이 있는데 여기에 두꺼운 천을 달아 대낮 공연을 할 때 뜨거운 햇볕을 막았다고 한다. 지중해의 강렬한 태양 아래에서 공연을 관람하는 관람객들이 쾌적하게 관람할 수 있도록 로마식 돔 천정을 만들어 주었던 것이다.
이제 상상해보자. 2천년 전 로마의 한가운데서 검투사들이 죽느냐 사느냐의 싸움을 할 때 관중은 열광했을 것이다. 지중해의 뜨거운 햇살 아래 관중이 토해내는 뜨거운 열기가 하늘로 뿜어져 나갈 때 콜로세움의 하늘이 스르르 가려지기 시작한다. 거대한 천막이 쳐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것을 본 관중은 또다시 열광한다. 이것이 바로 2천년 전 콜로세움의 모습이다.
콜로세움은 로마를 여행하는 모든 관광객의 필수 코스다. 로마 시내 한가운데에 우뚝 서 있는 콜로세움을 보면 아직도 로마제국이 살아있다는 느낌이 난다. 그것이 수많은 노예들의 피와 땀의 산물일지언정 인류의 문화유산이 된 것은 틀림이 없다. 유네스코도 그것을 인정하여 1980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했다.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지구 상에 남아 있는 인류 문명의 불가사의 중 하나로 이것을 선정하는 데 인색하지 않는다.
로마 기독교 박해의 상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