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서 또 가까이서... '밀당'으로 공감 만든다

[사이다③] <한가윗날 '단식 열흘째'인 그들과 나눈 악수>를 읽고

등록 2013.09.24 18:58수정 2013.09.30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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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 다시 읽기(사이다)'는 오마이뉴스 편집기자들이 오마이뉴스에 최근 게재된 '사는이야기' 가운데 한 편을 골라 독자들에게 다시 소개하는 꼭지입니다. '모든 시민은 기자다'를 모토로 창간한 오마이뉴스의 특산품인 사는이야기의 매력을 알려드리고, 사는이야기를 잘 쓰고 싶어하는 분들에게는 좋은 글의 조건에 대해 알려드리고자 합니다. [편집자말]
쌍용차 해결 촉구 '집단 단식농성' 돌입 10일 오후 서울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쌍용차 해고노동자를 포함한 12명이 쌍용차 문제 해결을 촉구하며 집단 단식농성에 돌입했다.
쌍용차 해결 촉구 '집단 단식농성' 돌입10일 오후 서울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쌍용차 해고노동자를 포함한 12명이 쌍용차 문제 해결을 촉구하며 집단 단식농성에 돌입했다.이희훈

독자님들, 추석 명절은 잘 쇠셨나요? 명절 연휴가 끝나고 다이어트를 다짐하신 분들도 많을 텐데요, 저도 연휴 동안 너무 많이 먹는 바람에 살이 쪄서 큰일입니다. 하지만 명절에 가족들과 맛있는 음식과 따뜻한 정담을 주고받는 것은 포기할 수 없죠. 저처럼 명절 연휴가 끝나자마자 살 뺄 걱정부터 하게 되더라도 일단은 가족들과 잘 먹고 잘 즐기는 게 먼저입니다.


그런데 명절이 모두에게 이렇게 배부르고 즐거운 시간이 되지는 않았나 봅니다. 유정열 시민기자님이 쓴 사는이야기 <한가윗날 '단식 열흘째'인 그들과 나눈 악수>에도 그런 이들이 등장합니다. 바로 서울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단식농성을 하고 있는 쌍용차 해고 노동자들입니다. 모두가 배불리 먹는 명절에 길거리에서 단식농성 중인 노동자들 이야기를 썼다, 뻔한(?) 주장글 아닐까 싶지만 글은 예상과 다르게 시작합니다.

추석 날, 글쓴이는 작은누나에게 줄 송편을 들고 서울로 갑니다. 작은누나는 명절에도 일을 합니다. 큰누나의 집에서 모두 모이기로 한 남매들은 작은누나가 일을 끝내고 오기를 기다립니다. "비록 송편에 불과하지만 한가위의 대표적인 음식인 송편을 온 가족이 한 개라도 먹어야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작은누나까지 모두 함께 "그동안 쌓인 정담을 나누고 맛있는 명절 음식을 같이 먹"고 나서, 저녁이 되자 글쓴이는 먼저 자리에서 일어납니다. 바로 단식 중인 쌍용차 노동자들을 찾아가기 위해서입니다.

가족이 모두 모이기를 기다려 맛있는 음식을 함께 먹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바로 이어서 그와 대비되는 쌍용차 노동자들 이야기가 나옵니다. 아마도 글쓴이는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도 내내 마음에 걸렸겠지요. 쌍용차 노동자들이 안쓰러웠을 겁니다. 좀 미안했을 수도 있고요. 그래서 그날 저녁 대한문 앞 미사에 참석합니다.

쌍용차 문제의 해결을 바라며 천주교 신부님들이 매일같이 열고 있는 저녁 미사. 글쓴이는 "명절날에 고향도 가지 못하고 맛있는 한가위 음식도 먹지 못하고 10일째 단식농성을 하는 쌍용 노동자들에게 퍽 미안한 마음"이라는 한 신부님의 발언 정도만 소개하고는 이야기를 빨리 전개시킵니다. "미사는 평소처럼 조용하면서도 뜻있게 진행되었"다고 한 뒤, 바로 '평화의 인사'를 나누는 시간으로 넘어갑니다.

아, 신부님들이 일렬로 걸어가면서 그들과 일일이 정겨운 악수를 하며 격려와 위로의 말을 건네는 것이었습니다. 노동자들도 일어나서 비록 단식하느냐고 몸이 말할 수 없이 초췌해졌지만 환한 모습으로 신부님들과 한 명 한 명씩 악수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글쓴이는 그 모습에 "마음이 찡해져옴"을 느꼈다 합니다. 그에 앞서 다른 순서들도 있었겠지만 글쓴이는 그 얘기들을 구구절절 늘어놓지 않습니다. 보통 어떤 현장을 다녀와서 글을 쓰는 경우, 필요도 없는 얘기를 너무 상세히 늘어놓느라 독자를 지루하게 만드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글쓴이는 자신에게 의미 있었던 순간만을 강조하면서, 독자가 흥미를 잃지 않고 글쓴이의 정서에 계속 집중할 수 있게 해줍니다.

글쓴이는 그 모습을 보며 진정한 '연대의식'에 대해 생각합니다. 그것은 "바로 누군가가 곁에 함께 있다"는 느낌이라고 말이죠. 그러고 나서 "몇 년 동안 명절을 모르고 이렇게 밖에서 지내느라고 가족들 볼 면목이 없다"는 한 노동자의 바람을 소개합니다. "돌아오는 설 명절은 사랑하는 가족들과 함께 보내고 싶다"는 소박한 바람에 박수를 보내는 것으로 글쓴이는 자신의 주장을 대신합니다.


주장부터 내세우지 않고 차분하게 '이야기의 힘'을 보여준 글

 9월 22일 게재된 사는이야기 <한가윗날 '단식 열흘째'인 그들과 나눈 악수>
9월 22일 게재된 사는이야기 <한가윗날 '단식 열흘째'인 그들과 나눈 악수>오마이뉴스

이어 글쓴이는 다시 한번 시간을 건너뛰어서 미사의 마지막 순간으로 갑니다. 진행자가 참석자들에게 한 가지 부탁을 전하는 장면이죠. "그냥 가지 말고 가능한 한 단식 농성하고 있는 노동자들의 손을 잡고 위로와 격려를 해주면 좋겠다"는 말을 듣는 순간, 앞서 신부님들의 모습에 감동을 받은 글쓴이는 "흥분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줄지어 서서 노동자들의 손을 잡습니다. 그 짧은 시간을 글쓴이는 이렇게 기억합니다.

나도 내가 할 수 있는 한 가장 밝은 얼굴로 그들과 눈을 마주쳤습니다. 그리고 힘을 내시라고 말한 뒤에 옆에 있는 다른 노동자로 옮겨갔습니다. 그들도 한결같이 잔잔한 미소를 보이며 고맙다고, 열심히 투쟁하겠다고 말해주었습니다.

그 시간은 정말 얼마 안 되었습니다. 하지만 나에게는 그 노동자들과 일일이 악수하는 시간이 그렇게 따뜻하고 흐뭇할 수가 없었습니다. 비록 그들과 똑같이 단식을 하며 부당한 현실에 맞서 강력하게 투쟁하지는 못하지만 그들 곁에 다가가서 손을 잡았다는 사실이 나에게 큰 감동을 주었습니다.

매초, 매분, 시간은 똑같이 흐르는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즐겁게 대화하는 시간은 너무 빨리 흘러가고, 재미없는 일을 하며 퇴근을 기다리는 시간은 너무 천천히 지나가는 것처럼 말입니다. 글쓴이는 이처럼 주관적인 정서에 따라 달라지는 시간을 글의 구성에 잘 녹이고 있습니다. 별로 의미 없는 시간을 빨리 흘려보내고, 중요한 순간만 찬찬히 묘사합니다. 시간을 다루는 기술이란 딴 게 아닙니다. 내가 느낀 것처럼 독자도 느낄 수 있게, 버릴 것은 버리고 택할 것은 택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글쓴이는 미사 현장의 모습이나 발언을 '멀리서' 보여주다가, 또 금세 글쓴이의 마음속을 '가까이서' 보여주다가 하면서, 독자들이 지루해하지 않게 계속 주의를 환기합니다. 현장을 객관적으로 전달하기만 하면 이 글은 현장기사가 될 것입니다. 또 자신의 주장만 거듭하다 보면 이 글은 좀 흔한(?) 주장글이 되고 말 것입니다. 하지만 글쓴이는 현장에서 보고 겪은 것과 자신이 느끼고 생각한 것을 적절히, 그리고 충실히 보여주면서, 이 글을 흔하지 않은 사는이야기로 훌륭히 써냈습니다.

글쓴이가 자신의 주장을 직접 드러낸 것은 마지막 문단에 있는 "날이 추워지기 전에 정부가 약속한 대로 국정조사를 실시하고 무고하게 해고당한 노동자들이 수 년 동안 몹시 원했던 정든 일터로 되돌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라는 문장 정도가 전부입니다. 하지만 독자들은 이 문장을 읽기 전에 이미 글쓴이의 마음을 잘 알게 되고도 남습니다. 사는이야기의 힘이란 바로 이런 것입니다.

흔히 노동문제 같은 무거운 사회 이슈를 가지고 글을 쓰다보면, 주의·주장만 넘치고 '이야기'는 부실하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는이야기의 목적은 이야기를 통한 공감이죠. 글쓴이처럼 자신이 겪은 이야기를 '선택과 집중'으로 충실히 전달하고 그 속에 자신의 정서를 차분하게 녹여낸다면, 굳이 핏대 세워가며 주장만 앞세울 필요가 없습니다. 논리적인 설득의 글도 필요하겠지만 이처럼 따뜻한 공감의 글도 분명 필요합니다.

하나 더 덧붙이자면, 전반적으로 문장이 참 좋습니다. "드디어 미사가 끝났습니다. 여러 교우들이 그들 곁으로 다가갔습니다. 순식간에 한 줄이 만들어졌습니다. 나도 빠른 걸음으로 그 대열에 끼어들었습니다" 하는 식으로 짧고 단순한 문장을 통해 사실을 선명하게 전달합니다. 전체적으로 비문을 찾아보기 힘든 탄탄한 문장이 좋은 벽돌이 되어 독자를 감동시키는 튼튼한 집을 지어냈다고 말할 수 있겠네요.

유정열 시민기자님의 <한가윗날 '단식 열흘째'인 그들과 나눈 악수>. 읽고 나니 저도 유정열 시민기자님과 악수를 한 것 같은 기분이네요. 공감을 무기로 세상을 바꾸는 사는이야기의 힘을 보여준 좋은 글입니다.
#쌍용차 #추석 #대한문 #단식농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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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하는 사람. <사다 보면 끝이 있겠지요>(산지니, 2021) 등의 책을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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