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22일 게재된 사는이야기 <한가윗날 '단식 열흘째'인 그들과 나눈 악수>
오마이뉴스
이어 글쓴이는 다시 한번 시간을 건너뛰어서 미사의 마지막 순간으로 갑니다. 진행자가 참석자들에게 한 가지 부탁을 전하는 장면이죠. "그냥 가지 말고 가능한 한 단식 농성하고 있는 노동자들의 손을 잡고 위로와 격려를 해주면 좋겠다"는 말을 듣는 순간, 앞서 신부님들의 모습에 감동을 받은 글쓴이는 "흥분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줄지어 서서 노동자들의 손을 잡습니다. 그 짧은 시간을 글쓴이는 이렇게 기억합니다.
나도 내가 할 수 있는 한 가장 밝은 얼굴로 그들과 눈을 마주쳤습니다. 그리고 힘을 내시라고 말한 뒤에 옆에 있는 다른 노동자로 옮겨갔습니다. 그들도 한결같이 잔잔한 미소를 보이며 고맙다고, 열심히 투쟁하겠다고 말해주었습니다.그 시간은 정말 얼마 안 되었습니다. 하지만 나에게는 그 노동자들과 일일이 악수하는 시간이 그렇게 따뜻하고 흐뭇할 수가 없었습니다. 비록 그들과 똑같이 단식을 하며 부당한 현실에 맞서 강력하게 투쟁하지는 못하지만 그들 곁에 다가가서 손을 잡았다는 사실이 나에게 큰 감동을 주었습니다. 매초, 매분, 시간은 똑같이 흐르는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즐겁게 대화하는 시간은 너무 빨리 흘러가고, 재미없는 일을 하며 퇴근을 기다리는 시간은 너무 천천히 지나가는 것처럼 말입니다. 글쓴이는 이처럼 주관적인 정서에 따라 달라지는 시간을 글의 구성에 잘 녹이고 있습니다. 별로 의미 없는 시간을 빨리 흘려보내고, 중요한 순간만 찬찬히 묘사합니다. 시간을 다루는 기술이란 딴 게 아닙니다. 내가 느낀 것처럼 독자도 느낄 수 있게, 버릴 것은 버리고 택할 것은 택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글쓴이는 미사 현장의 모습이나 발언을 '멀리서' 보여주다가, 또 금세 글쓴이의 마음속을 '가까이서' 보여주다가 하면서, 독자들이 지루해하지 않게 계속 주의를 환기합니다. 현장을 객관적으로 전달하기만 하면 이 글은 현장기사가 될 것입니다. 또 자신의 주장만 거듭하다 보면 이 글은 좀 흔한(?) 주장글이 되고 말 것입니다. 하지만 글쓴이는 현장에서 보고 겪은 것과 자신이 느끼고 생각한 것을 적절히, 그리고 충실히 보여주면서, 이 글을 흔하지 않은 사는이야기로 훌륭히 써냈습니다.
글쓴이가 자신의 주장을 직접 드러낸 것은 마지막 문단에 있는 "날이 추워지기 전에 정부가 약속한 대로 국정조사를 실시하고 무고하게 해고당한 노동자들이 수 년 동안 몹시 원했던 정든 일터로 되돌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라는 문장 정도가 전부입니다. 하지만 독자들은 이 문장을 읽기 전에 이미 글쓴이의 마음을 잘 알게 되고도 남습니다. 사는이야기의 힘이란 바로 이런 것입니다.
흔히 노동문제 같은 무거운 사회 이슈를 가지고 글을 쓰다보면, 주의·주장만 넘치고 '이야기'는 부실하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는이야기의 목적은 이야기를 통한 공감이죠. 글쓴이처럼 자신이 겪은 이야기를 '선택과 집중'으로 충실히 전달하고 그 속에 자신의 정서를 차분하게 녹여낸다면, 굳이 핏대 세워가며 주장만 앞세울 필요가 없습니다. 논리적인 설득의 글도 필요하겠지만 이처럼 따뜻한 공감의 글도 분명 필요합니다.
하나 더 덧붙이자면, 전반적으로 문장이 참 좋습니다. "드디어 미사가 끝났습니다. 여러 교우들이 그들 곁으로 다가갔습니다. 순식간에 한 줄이 만들어졌습니다. 나도 빠른 걸음으로 그 대열에 끼어들었습니다" 하는 식으로 짧고 단순한 문장을 통해 사실을 선명하게 전달합니다. 전체적으로 비문을 찾아보기 힘든 탄탄한 문장이 좋은 벽돌이 되어 독자를 감동시키는 튼튼한 집을 지어냈다고 말할 수 있겠네요.
유정열 시민기자님의
<한가윗날 '단식 열흘째'인 그들과 나눈 악수>. 읽고 나니 저도 유정열 시민기자님과 악수를 한 것 같은 기분이네요. 공감을 무기로 세상을 바꾸는 사는이야기의 힘을 보여준 좋은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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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하는 사람. <사다 보면 끝이 있겠지요>(산지니, 2021) 등의 책을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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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서 또 가까이서... '밀당'으로 공감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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