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겉그림〈화학에서 영성을 만나다〉
더숲
"다른 무엇보다도 중요한 물의 특성은 고체 상태인 얼음일 때는 그렇지 못하지만, 액체 상태인 물에서는 다른 물질과 섞여서 그들을 녹일 수도 있고, 그릇이 어떤 모양이든지 자신의 모양을 바꾸어 그 속에 담길 수 있다는 점입니다."이는 평생토록 화학을 가르쳐 온 황영애 교수의 <화학에서 영성을 만나다>에 나오는 내용이죠. 고체 상태와 기체 상태, 그리고 액체 상태에 따라 결정체가 다른 물은 그 모양새도 자유자재라고 하죠. 그만큼 융통성 있게 자리를 내주어 누구와도 섞일 수 있는 특성이 있다고 하죠.
사람이 그처럼 물과 같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얼음처럼 차갑고 굳어 있는 것 같지만 그 내면 깊은 곳에는 사람을 품는 잔잔함과 포근함이 깃들어 있는 것 말이죠. 또 뭔가 막히면 딱딱하게 버티고 서 있는 게 아니라 에둘러 돌아갈 줄 아는 것 말이죠.
이 책은 그렇듯 화학을 통해 인간의 삶과 영성을 이해하도록 하고, 종교를 통해 화학을 배울 수 있도록 돕고 있죠. 이를테면 화학결합 가운데 공유결합과 이온결합이 있다는데, 전자를 남자와 여자 사이의 결합으로, 후자를 부모와 자식 사이의 결합으로 설명하는 게 그것이죠.
요즘에 나오는 생선과 관련하여 일본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의 방사성 동위원소들도 회자되죠. 그것들이 위험한 이유는 필수원소들이 들어갈 자리를 위험한 원소들이 꿰차는 형국이라고 하죠. 이른바 자연상태의 세슘은 Cs-133이지만 방사성을 가진 것은 Cs-137로서 생물체는 그걸 구별하지 못한다는 것이죠. 그러니 방사성물질이 필수원소로 가장하여 체내에 들어와도 아무도 모를 수 있다는 것이죠.
"필수원소로 가장한 독성원소들을 흡수하는 것이 생물체에 치명적이듯 선의 가면을 쓰고 다가오는 악을 분별하지 못함으로써 인간의 영혼이 받게 되는 위험도 그 정도가 결코 덜하지 않습니다. 실망과 좌절에 빠져 극단적인 선택으로 불행하게 인생을 끝맺음한 이 시대의 많은 사건들이야 말로 악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한 결과일 것입니다. 그 상황에서 자신의 선택이 가장 옳다고 느끼게 했으니 악은 얼마나 교묘한지요?"(125쪽)황영애 교수는 그와 같은 독성원소들을 '중독성 기도'에 빗대기도 하죠. 기도를 지나치게 많이 하면서 사람들의 관심을 받는데, 그것이 자칫 자기 자랑과 허영심을 채우는 것으로 전락하는 경우 말이죠. 이를테면 처음에는 하나님과 이웃 사랑으로 시작한 봉사가 어느새 자기 자신을 내세우는 일처럼 되는 경우가 그것이죠.
화학물질에 '촉매'라는 게 있다고 하죠. 이른바 다른 두 물질 사이의 화학 반응을 도와주지만, 정작 자신의 성분을 가진 생성물은 얻지 못하는 게 그것이라고 하죠. 그런데 그 촉매에는 자기 역할을 다 한 뒤에 그 수명을 다하는 균일계 촉매도 있고, 반대로 자기 역할을 다 한 뒤에도 훼손되지 않은 채로 회수할 수 있는 불균일계 촉매도 있다고 하죠.
"수소와 프로필렌은 금속에 결합하게 되면 결정적으로 활성이 높아집니다. 이렇게 높은 활성을 갖게 된 두 물질은 자기네들끼리 만났을 때보다 생성물인 프로판(C3H8)을 훨씬 쉽게 생성할 수 있습니다. 수 백도, 수 백 기압의 조건에서야 일어날 수 있는 반응이 촉매의 활약 덕분에 거의 실온에 가까운 낮은 온도와 대기압 정도의 낮은 기아에서 일어날 수 있는 것이지요."(176쪽)
그와 같은 촉매를 떠올리면서 황교수는 5년 전 쯤 맡은 '대리모'의 모습을 떠올렸다고 하죠. 세례식 있던 그 날 30대 후반의 한 여성을 만났는데, 세 살 때 부모가 이혼하여 엄마와 헤어진 후 아버지와만 살았다던 그 여성, 하지만 아버지의 학대로 고 3때 집을 나와 월세와 식비와 모든 용돈을 홀로 감당했다던 그 여성을 위한 대리모가 된 것이죠.
황 교수는 당시 일본어 번역을 하면서 아파트 전세로 살고 있던 그녀를 위해 모든 만남의 비용을 본인이 부담했다고 하죠. 대모인 그녀는 그때마다 '잘 먹겠습니다.'는 말만 할 뿐 한 번도 음식값을 낸 적이 없었다고 하죠. 급기야 황교수는 그녀의 생일날을 맞이해 자신의 서운함을 토로했고, 그것으로 두 사람 사이의 만남은 끝이 났다고 하죠. 그 무렵 촉매에 관해 묵상할 기회가 있었는데, 황교수는 자신이 균일계촉매가 되지 못한 게 너무나 아팠다고 하죠.
이 책은 그렇듯 화학적인 지식을 통해 삶의 지혜를 얻게 해 주죠. 더 나아가 화학 이야기를 통해 흥미로운 인생의 의미도 깨닫게 해 주죠. 그 뿐만 아니라 이 책은 오늘날 유행처럼 화두가 되는 '힐링'(healing)의 차원을 넘어 진정한 '영성'(spirituality)의 차원을 이야기해 주고 있죠. 이 책을 통해, 아프면 아픈 대로, 슬프면 슬픈 대로, 주저앉지 말고 그 안에서 깊은 의미를 깨달을 수 있다면 더욱 좋을 것 같네요.
화학에서 영성을 만나다 - 평생 화학을 가르쳐 온 한 교수가 화학 속에서 만난 과학과 영성에 관한 이야기
황영애 지음, 전원 감수,
더숲,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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