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의 진격... '증세 카드' 꺼내 든 일본

일본 소비세 인상 공식 발표... 아베, '정권의 무덤' 피할까

등록 2013.10.02 15:22수정 2013.10.02 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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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아베 신조 총리의 소비세 인상 기자회견을 방송하는 NHK뉴스 갈무리
일본 아베 신조 총리의 소비세 인상 기자회견을 방송하는 NHK뉴스 갈무리 NHK

일본이 마침내 '증세 카드'를 꺼냈다.

일본의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는 1일 기자회견을 열어 현재 5%인 소비세율을 내년 4월부터 8%로 올리겠다는 계획을 공식 발표했다. 일본의 소비세 인상은 지난 1997년 3%에서 5%로 올린 후 17년만이다.

일본의 재정 악화를 해결하기 위해 소비세율을 내년 4월 8%, 2015년 10월 10%로 단계적 인상하는 계획은 지난해 이미 국회를 통과했지만 경기 회복에 타격을 줄 수 있다는 논란도 만만치 않아 아베 총리는 각종 경제지표를 검토하며 '타이밍'을 기다려왔다.

아베 총리가 소비세 인상을 전격 발표한 것은 최근 일본 경제가 상당히 호전된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전날 일본은행이 일본 제조기업의 체감경기를 나타내는 단기경제관측지수(단칸 지수)를 발표한 결과 시장의 예상을 크게 웃돌면서 아베 총리의 결정에 힘을 실어줬다.

일본 방송 NHK 홈페이지에 공개된 기자회견 전문에 따르면, 아베 총리는 "성장과 재정 건전성은 서로 양립할 수 있다는 것이 숙고 끝에 내린 나의 결론"이라며 "소비세 증세로 거둔 세금은 오직 사회보장 제도를 유지하고 강화하는 데 사용하겠다"고 밝혔다.

경제 회복과 올림픽에 자신감 얻은 아베 총리

아베 총리의 결정이 주목을 받는 것은 그동안 소비세 인상이 곧 '정권의 무덤'으로 통했기 때문이다. 소비세 인상을 시도했던 일본의 역대 정권은 모두 다음 선거에서 패배했다. 소득세, 법인세 등 직접세 위주로 운영되는 일본에서 소비세와 같은 간접세 인상에 대한 저항은 대단하다.


그러나 일본의 재정 건전성은 사상 최악이다. 국가 부채가 무려 국내총생산(GDP)의 200%가 훨씬 넘는 1000조 엔(약 1경882조 원)에 달한다. 비록 정권을 장담할 수 없더라도 극한으로 치닫는 일본의 재정적자를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다는 것이 아베 총리의 입장이다.

더구나 일본의 엄청난 재정적자는 글로벌 경제의 불안 요인으로 꼽히고 있다. 외국인 투자가 갈수록 줄어들자 아베 총리는 재정 건전성을 회복하기 위한 공약으로 소비세 인상을 내걸었다.


기자회견 전문에서 아베 총리는 "일본은 소비세 인상을 국제적 공약으로 내세웠고 국회에서 법안을 통과시켰다"며 "지금 와서 입장을 바꾸면 일본 정부와 국채의 대외 신인도가 떨어지고 대응하기 힘들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물론 아베 총리가 어려운 결단을 내린 가장 큰 배경은 '아베노믹스'로 인해 일본 경제가 눈에 띄게 회복되고 있는 덕분이다. 더구나 2020년 하계올림픽까지 유치하면서 소비세 인상의 후폭풍을 견뎌낼 수 있다는 아베 총리의 자신감은 더욱 커졌다.

다만 아베 총리는 "2015년 10월 소비세를 10%로 2차 인상하는 것은 앞으로의 경제 회복 상황을 종합적으로 판단하여 적절한 시기에 공식화하겠다"며 신중한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

소비세 인상은 '정권의 무덤'... 아베 정권은?

그러나 소비세 인상이 '아베노믹스'의 효과를 둔화시킬 것이라는 우려는 여전히 크다. 일본은 앞서 1997년 소비세를 3%에서 5%로 인상하면서 장기 디플레이션과 재정 악화를 경험한 뼈아픈 경험이 있다. 당시 국내총생산(GDP) 성장률도 마이너스로 돌아섰다.

이번 소비세 인상에 따른 가계 부담 비용은 연간 6조 엔(약 66조 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아베 총리는 소비세 인상의 후폭풍을 최소한으로 막기 위해 5조 엔(약 55조 원) 규모의 세출 정책도 함께 발표했다.

2020년 하계올림픽을 준비하기 위해 교통과 물류망을 정비하고 저소득층 2400만명에게 보조금을 차등 지급하는 계획 등이 포함됐다. 또한 임금을 인상하고 투자를 확대한 기업을 위해 9000억 엔 규모의 감세도 결정하는 등 내수 확장에 총력을 기울인다는 전략이다.

하지만 세출 정책의 혜택이 가계보다는 기업에 더 치우쳐 있다는 지적이 많아 효과가 크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더구나 일본은 외국인 투자를 늘리기 위해 법인세 인하를 추진하고 있지만 전망이 불투명하다.

최근 일본은행이 발표한 일본의 실효 세율은 35.64%로 한국, 중국보다 10% 이상 높다. 싱가포르의 실효 세율은 17.0%다. 일본이 주변국과의 외국인 투자 유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법인세를 대폭 인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그러나 소비세 인상에 이어 곧바로 법인세 인하 카드까지 꺼내 들면 가계의 반발이 더욱 커질 것이 뻔하다. <아사히>는 '기업 경쟁력 강화의 효과는 장기간에 걸쳐 나오지만 소비세 인상의 반응은 단기간에 나와 아베 총리가 이를 무시하기 힘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또한 소비세 인상이 일본의 재정적자를 해결할 수 없다는 지적도 있다. 게이오대의 이케노오 카즈토 교수는 <아사히> 인터뷰에서 "소비세 인상이 재정적자를 완화할 수 있겠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은 될 수 없고 결국 추가 부담이 필요할 것"이라며 "누구도 고통받지 않는 '마법의 지팡이' 같은 정책은 없다"고 단언했다.

일본 언론 "소비세 인상, 방향은 옳다"

결국 소비세 인상의 후폭풍에서 '아베노믹스'를 지켜낼 수 있는 것은 아베 총리가 원하는 대로 일본 기업이 투자를 확대하고 임금을 인상하며, 소득이 높아진 가계가 소비 활성화에 나서는 경제의 선순환 고리가 이어지는 것이다.

후폭풍은 벌써 시작됐다. 이날 도요타자동차는 '소비세 인상에 따른 가계의 소비 위축을 우려해 내년 판매량이 상당히 떨어질 것으로 전망하여 생산량을 하향 조정한다"고 발표했다. 

<아사히>는 '소비세 인상은 일본의 세제 개혁 사상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대형 증세'라며 '모든 국민이 폭넓게 부담하고 세수도 안정된 소비세가 사회보장의 재원에 가장 어울린다'고 평가했다. 다만 '현재 일본 기업은 많은 수익을 올리고도 쓰려고 하지 않는다'며 법인세 인하는 반대했다.

<요미우리>도 '저출산 고령화의 일본 사회에서 소비세를 인상하는 것이 옳은 방향'이라면서도 '일본 경제가 겨우 회복하기 시작한 가운데 소비세 인상이 효과를 거둘 수 있을지 불투명하다'고 전망했다.

수많은 논란 속에서 결정된 소비세 인상이 일본 경제의 가장 큰 고민인 재정악화를 해결하는 실마리가 될지, 아니면 '아베노믹스'의 불씨를 꺼뜨리며 아베 정권마저 무너뜨릴지 주목된다. 그러나 모두가 꺼려왔던 '증세 카드'를 꺼내 든 아베 총리의 결단력만큼은 박수를 받고 있다.
#일본 소비세 인상 #아베 신조 #일본 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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