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일 맞은 촛불대회, 촛불은 진화한다

제14차 범국민 촛불대회에 다녀와서

등록 2013.10.06 11:59수정 2013.10.06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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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저녁 7시, 서울역 광장에서는 제14차 범국민 촛불대회가 열렸다. 이날은 지난 6월 28일 국정원 시국회의가 결성되어 촛불집회를 주관하기 시작한지 꼭 100일째 되는 날이었다. 100일이면, 불과 3개월 정도에 불과하지만, 이 짧은 기간 동안에도 수많은 '대형 사건'들이 우리 정치와 사회를 강타했다. 이는 전적으로 부정선거 책임을 인정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극우세력의 기득권과 사회적 입지를 강화하려는 박근혜 새누리당 정권에 의해 조작되고 야기되었다.

그러나 촛불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무더위 속에서건, 비가 내리는 속에서건 지금까지 계속돼 왔다. 주말만 되면 시민들은 자발적으로 광장에 모여 촛불을 들었고, 촛불이 마무리되었을 땐 역시 자발적으로 자신들이 앉았던 자리를 말끔히 정리했다. 박근혜 정권 입장에선 '표현의 자유'와 '사상의 자유' 같은 경우, 때로는 은밀하게 때로는 물리적 방법을 동원해 틀어막을 수 있었지만, '집회의 자유'까지 그런 식으로 원천봉쇄할 수는 없었다. 왜냐면 '민주주의'라는 '껍질'마저 부정할 수 없는 이상 '공개적'으로 진행되는 촛불집회까지 틀어막을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 이 '어둠의 시대'에 촛불은, 우리 사회의 마지막 희망이자 우리 민주주의의 최후의 보루라는 중대한 사명을 떠안게 되었다. 이에 정권은 '눈엣가시'인 촛불을 향해 노골적인 폭력을 가할 수도 없는 속에서 수구관변단체를 동원해 촛불을 견제하는 한편으로, 경찰병력을 압도적으로 동원해 촛불을 포위하는 수법을 택했다. 그리고 촛불이 계속되건 말건 아예 무시해버렸다. 관제 어용언론들은 촛불집회 사실을 국민들에게 알리지 않는 방식으로 촛불의 확대를 막았다. 이렇게 촛불을 좁은 틈 속에 가두어버림으로써 저절로 지쳐 소멸되게 만든다는 깜냥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틈바구니 속에서도 지금까지 촛불은 꺼지지 않았다. 이는 우리 사회와 민주주의에 대한 '깨어있는 시민'들의 절박한 위기감 때문일 것이다. 처음엔 국정원의 대선개입과 부정선거를 규탄하고자 모였지만, 유신독재가 어떤 것인지, 공포정치와 공작정치가 무엇인지를 잘 아는 시민들은 국정원 규탄만이 전부가 될 수 없음을 시간이 흐를수록 직감하기 시작했다. 제14차 범국민 촛불대회 현장에는 바로 시민들의 그와 같은 '직감'이 공감대를 이루고 있었다. 이것은 촛불의 매우 중요한 변화를 예고하는 것이다.

이날 촛불대회에서 연단에 오른 사람들은 대부분 "끝까지 투쟁하자" "촛불은 계속될 것이다" "지치지 말자"고 외쳤다. 이처럼 촛불은 이제 장기전 모드로 돌입하고 있었다. 권력이 촛불의 확대를 막을 수는 있을지언정 촛불의 지속을 막을 수는 없는 상황 속에서, 가장 효과적인 저항 방법은 '촛불의 지속'이 될 수밖에 없다. 촛불이 켜져 있는 지금도 공포정치와 공작정치가 난무하는 판국에 만일 촛불마저 멈춘다면 그것은 완전한 '암흑시대의 도래'를 의미하는 것이다. 이는 '깨어있는 시민'들로선 결코 물러설 수 없는 절박한 사안이다. 이제 촛불은 '지속투쟁'으로 옮겨가고 있다.

또 이미 촛불은 박근혜 정권의 잘못된 사회정책과 음모정치를 비판하는 공론장이 된지 오래이다. 이미 이전 촛불에서부터 누차 박근혜 정권의 복지 공약 후퇴와 재벌 챙기기 정책, 그리고 철도민영화 등이 비판의 대상이 되었지만, 여기에 더해 14차 대회가 열린 이날부터 박근혜 정권에 의해 탄압받고 억압받고 소외받는 사람들이 연단에 오르기 시작했다.

박 정권에 의해 해직교사를 조합원으로 인정하는 규약을 고치지 않으면 노조설립허가를 취소하겠다는 협박을 받은 전교조 관계자분, 또 밀양 송전탑 공사 강행으로 단식 투쟁의 길로 내몰려 그곳에서 상경해 온 분들, 또 "커밍아웃"이란 언어를 종북 마녀사냥에 써먹는(그 저변에는 동성애자에 대한 차별관이 깔려있다) 한국의 우파를 비판한 동성애자분이 그들이다.


그리고 비록 연단에 오르지는 않았지만 자신들의 열악한 노동환경을 호소하는 유인물을 촛불집회장에 돌린 울산 건설플랜트노동조합 관계자분들도 이런 범주에 속할 것이다. 즉 이 시대 정권과 기득권에 의해 억눌림 당하는 사람들이 마음을 터놓고 자신들의 사정을 호소할 수도 하고, 울분을 토해낼 수도 있는 공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것이다.

촛불은 '연대'... "박근혜 하야"까지 외쳤다


사실 촛불은 '연대'이고, '함께'이다. 그런 만큼 앞으로도 박근혜 정권이 사회적 억압을 강화하면 할수록 촛불의 이런 성격은 더욱 확대될 것이고, 촛불의 내용은 풍부해질 것이다. 처음 촛불은 "국정원 해체"만을 외쳤지만, 이날 14차 집회에선 "박근혜 하야", "박근혜 사퇴"도 본격적으로 거론되기 시작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겠는가? 촛불에 참가한 시민들이 작금의 상황을 두고 '국정원 해체'만을 주장해서는 안 되는 엄중한 상황임을 체감하고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날 집회에서 이전 집회에서는 잘 볼 수 없던, "유신 부활과 국정원의 공포정치를 막아내자" "매카시즘 몰이 중단" "친일파 척결" 같은 이야기가 자주 흘러나온 것도 이런 점과 결부되어 있다고 보인다. 즉, 지금 촛불은 애초 내걸었던 '국정원 해체'의 목표에 더해 우리 사회 수구세력과의 전면전을 선언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9월 28일 제13차 촛불대회에서 영화 <천안함 프로젝트>가 방영된 것도 이런 점에서 이해해볼 수 있다. 사실 천안함 사건은 한국 수구세력의 '은폐된 허(虛)'가 아닌가? 물론 영화 <천안함 프로젝트>가 극장으로 가지 않고 광장으로 오게 된 것도 모두 수구세력의 허가 찔리는 것을 두려워 한 박근혜 정권 덕분이었지만 말이다.

이처럼 박근혜 정권이 수구세력에 편승하거나 혹은 그들을 보호하고자 억압을 확대하면 할수록 앞으로 촛불은 국정원을 넘어 수구세력과의 전면전으로 갈 수밖에 없고, 그렇게 되면 촛불의 목표 역시 수정될 수밖에 없다. 그것은 곧 박근혜 하야를 의미한다. 그런 점에서 14차 촛불대회는 이에 대한 예고편이었다.

또 지난 13차 촛불대회와 이날 촛불대회에 이르기까지 교학사판 극우 교과서가 연단에 오른 참가자들에게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이와 더불어 앞서 서술한 대로 이날 14차 촛불대회에선 "친일파 척결"이 자주 언급되었다. 다 알다시피 한국현대사학회의 극우 교과서는 새누리당 권력과 영합해 근현대사에 대한 인식을 수구세력의 입맛에 맞게 조작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다.

이런 극우 역사교과서에 대한 비판이 촛불집회에서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점은, 지금 촛불이 수구세력과의 전면전으로 나아가고 있음을 다시금 느끼게 한다. 어쩌면 촛불은 그 자체로 역사전쟁의 전면에 서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날 연단에 오른 인사들이 언급한대로 촛불은 일제에 항거한 독립투쟁과 군부독재정권에 항거해 민주주의를 쟁취한 민주항쟁의 역사적 흐름 위에 서 있기 때문이다. 이는 한국 수구세력의 역사적 배경과는 양립할 수 없는 흐름이다.

이처럼 촛불은 진화하고 있다. 특히 14차 촛불대회는 이점을 예고하고 있었다. 이날 집회 막바지에 발표된 '국민저항권 발동을 위한 촛불시민 누리꾼 3차 시국선언문'의 내용은 그래서 더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그 몇 대목을 아래에 인용해본다.

"법과 민주주의가 무너진 결과 대한민국은 정의와 진실과 원칙이 짓밟히고 거짓과 음모와 술수가 판치는 삼류 국가로 전락했다. 대한민국을 이렇게 치욕스럽게 만든 주범은 1219 부정선거의 주범 국정원과 경찰 그리고 새누리당이며, 이러한 범죄 행위에 대한 최고 책임자는 이명박과 박근혜이다. 우리는 이승만 독재와 3.15 부정선거에 저항한 4.19 시민혁명의 숭고한 정신을 기억하고 있다. 또한 박정희, 전두환 군사독재에 굴복하지 않은 유구한 민주화 투쟁과 80년 5월 광주의 민중항쟁 그리고 86년 6월 민주항쟁에 바친 피와 죽음의 역사를 잊지 않고 있다. 하지만 장구한 세월 동안 민주열사와 애국시민들의 희생을 바쳐 쟁취한 민주주의가 국정원과 경찰 그리고 새누리당에 의해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 하지만 박근혜 정권은 반성과 사죄는커녕 오히려 적반하장 격으로 민주주의의 회복을 요구하는 선량한 시민을 종북좌파 세력으로 매도하며 제2의 유신독재의 길을 걷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향후 어떤 선거도 국민의 신뢰를 얻을 수 없어 마침내 우리의 민주주의는 무덤으로 들어가게 될 것이다.

우리는 대한민국의 역사를 거꾸로 되돌리고 있는 반역의 무리들에게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경고한다. 일제강점기의 국권 회복을 위한 독립열사들과 민주화를 위한 시민들의 저항과 투쟁의 역사를 부정하고, 친일 종속적인 망언, 망동으로 민족정신을 훼손하는 자들은 이 땅에서 함께 살아갈 자격이 없다. 민족 분단의 비극과 모순을 극복할 의지도 능력도 없이 선량한 시민들을 향해 종북좌파 운운하며 시대착오적 매카시즘에 편승하여 오로지 자신들의 권력 유지에 급급한 세력에게 우리 대한민국의 미래를 맡길 수 없다. (중략) 우리는 (중략) 다음과 같은 행동 강령을 선포한다.

하나, 우리는 민주공화국 시민으로서의 권리와 책임을 다하기 위하여 헌법과 민주주의를 파괴한 세력을 바로잡기 위한 무기한 투쟁에 돌입한다.(중략)
하나, 국정원과 경찰 그리고 새누리당이 공모한 부정선거의 최대 수혜자이자 최고 책임자인 박근혜는 모든 책임을 지고 즉각 대통령직에서 물러날 것을 강력하게 촉구한다.
하나, 우리 촛불 민주시민은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대한민국의 역사를 전복하는 세력에 맞서 최후의 승리를 거두는 그날까지 어떠한 위협이나 억압에도 굴복하지 않고 끝까지 맞서 싸울 것임을 독립열사와 민주열사 앞에 맹세한다."

이날 서울역 광장의 밤하늘은 아무 말이 없었지만, 촛불에 참여한 사람들은 무언가 함께 느낄 수 있었다. 이제 촛불은 '지속투쟁'과 '수구세력과의 전면전'으로 진화하고 있었다.
#제14차 촛불집회 #지속투쟁 #유신독재 #박근혜 하야 #수구세력과의 전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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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공부하고 있는 시민. 사실에 충실하되, 반역적인 글쓰기. 불여세합(不與世合)을 두려워하지 않기. 부단히 읽고 쓰고 생각하기. 내 삶 속에 있는 우리 시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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