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무겁게 하는 책가방과 아이를 즐겁게 하는 기타 가방가방안에는 공부할 책들이 가득하고 조르고 졸라 생일 선물로 받은 기타 가방엔 먼지가 내려앉는 중이다. 책가방의 무게가 가볍게 느껴지는 날, 아이는 기타 가방의 먼지를 털어내고 기타줄을 만져줄 모양이다.
한진숙
엄마라는 직함을 달고 나면 내 아이가 매일매일 크는 것처럼 너무 자연스럽게 공부 재능을 기대한다. 아이는 어릴 적 청음 능력이 있어서 한 번 들은 피아노 선율을 엇비슷하게나마 건반으로 치곤 했다. 하지만 그것을 발견했을 때 기쁨은 '어머, 이런 재주가!'하며 손뼉 한번 치는 정도. 엄마라는 사람들이 원하는 공부 재능을 발견했을 때의 희열과는 비교하기 어렵다.
다른 재능을 원한다는 무언의 표시로 음악 상장을 현관문에 게시하지 않았다. 우리집은 상장을 받아오면 일 주일 동안 현관문에 걸어 놓고 온 가족이 알아봐주는 기간을 둔다. 거기에 걸려야 자랑거리다. 아이는 내 의도를 알았을까? 지 상장 어디 있는지 물어보지도 않는 걸 보니 저도 관심 없나 보다.
이 아이가 공부에 재능이 있나 없나 고민하는 사이 2학기 중간고사가 다가왔다. 한 달 전인데 아이는 수학 공부한다고 부산하다.
"공부해야겠어. 저번 점수는 정말 아니었어.""당연하지. 근데 어떻게 그런 장한 생각을?""학교 진로지도 시간에 선생님이 하는 얘기 듣고 정신이 번쩍 났어. 이대로는 안 돼, 정말이야, 엄마."아이의 정신을 번쩍 나게 했다는 그 선생님 말씀을 아이의 말을 빌려 요약하자면 이랬다.
너희들 중 1%만 원하는 고등학교에 갈 수 있고 99%는 다 그저그런 학교에 간다. 1학년 성적보다 2학년 성적이 나아야 하고 3학년 성적은 더 좋아야 한다. 도덕, 음악, 체육 이런 거 점수 아무리 높아도 영어, 수학 점수 낮으면 소용없다. 반영 정도가 엄청 차이 난다. 선생님 말씀대로라면 도덕 점수는 상위권이고 음악은 상장까지 받을 정도지만 우리 아이는 영어, 수학을 못하므로 그저그런 학교에 가는 99%에서 벗어날 길이 없는 거다. 여기서 그저그런 학교란 뺑뺑이로 가는 일반 고등학교를 말하는 거란다.
집에서 부모가 아이를 자극하지 않아도 아이는 충분히 자극받고 있다. 아이들의 불안감을 부추기든 승부욕을 발동시키든 공부하게 만들 수만 있다면 학교는 어떤 방법이라도 상관없는 듯하다. 그 진로교육에서 선생님이 그런 위협적인 현실 정보 전달보다 아이들에게 "왜 공부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질 수는 없었을까?
"공부는 해서 뭐에 쓸 건데?"라는 질문을 가슴에 품은 아이는 주인의 삶을 사는 첫 발자국을 뗄 수 있을 것이다. 그 결과가 어떠하든 본인의 결정과 선택으로 자신의 삶을 꾸려가는 힘, 그것이야말로 내가 아이에게 원하는 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가 공부하고 싶다는 말은 엄마들한텐 그 어떤 밀어보다 달콤하다. 이걸 어쩌지? 이때를 놓치면 안 되는데…. 조바심으로 몸이 둥둥 뜨는 느낌이다.
"문제집이나 사러 가야겠다." "아직도 안 샀어? 공부하려는 거 맞냐?""히히…. 자꾸 까먹어…."달콤한 기분이 푹 사그라든다. 문제집을 자꾸 까먹어서 안 사고, 피곤해서 안 사고, 바빠서 못 사는 사이 시험은 보름 앞으로 다가왔고 며칠 공부하던 아이는 공부할 문제집이 없다는 이유로 대놓고 컴퓨터와 스마트폰 삼매경으로 고고씽! 참다 참다 내 눈에 쌍심지가 켜질 무렵 아이 친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비보가 날아들었다. 갑작스러운 와병 소식과 단기간의 투병 그리고 영면.
"내 공부잖아..." 그 새 한뼘 큰 아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