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기호의 <교사도 학교가 두렵다> 책 표지
따비
<오늘의 교육> 편집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엄기호는 <교사도 학교가 두렵다>(따비)라는 제목의 책을 펴냈다. 교사들이 반길 만한 제목 같지만 꼭 그런 건만은 아니다.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는 그는 동종업자(?)의 의리(?)상 교사들을 몰아세우지는 않지만 학교의 속살을 여지없이 파헤친 이 책을 읽고나면 학교(의 순기능)를 망가뜨린 죄에서 어느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만큼 그의 증언은 치밀하고 현장성이 강하다. 그는 책머리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나는 이렇게 교육에 대해, 학생들을 만나는 것에 대해 열정을 가지고 교육현장에 뛰어든 교사들이 어떻게 소진되며 고립되고 있는지를 이 책을 통해 보여주고 싶었다. 이를 통해 우리 교육현장이 얼마나 반교육적이며 교육이 불가능한 파국적 상태로 치닫고 있는지를 보여주고 싶었다. (…) 이 폐허를 응시해야 한다. 희망은 그 폐허에 대한 응시에서 나온다. 나는 그 폐허를 같이 응시하며 희망을 만들어가고자 하는 분들과 이 책을 같이 읽고 싶다.(11쪽) 그가 말한 '열정을 가지고 교육현장에 뛰어든 교사들'은 앞에서 소개한 윤지형의 책에 등장하는 주인공들과 다르지 않을 것 같다. 문제는 그들이 학교 현장에서 '소진되고 고립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또한 그로 인해 '교육이 불가능한 파국적 상태로 치닫고' 있다는 슬픈 현실이다. 그는 이 지점에서 폐허를 함께 응시하자고 제안한다. 그의 제안은 그 폐허에 일조한 것이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내 자신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서 설득력을 얻는다. 그가 그려놓은 학교(혹은 교사)의 사실화는 생각보다도 음습하고 부정적이다.
'사실 교사들이 잘 모르고 있는 것 중 하나가 학생들은 개별교사를 학교에 대한 총체적인 경험 속에서 만난다는 사실이다. 대다수의 학생에게 학교와 교사에 대한 경험은 부정적이고 상처투성인 경우가 많다. 대학생들에게 교사가 자신에게 어떤 존재였는지에 대해서 글을 써보라고 했다. 그런데 한 학생은 자기를 기억하는 교사가 한 명도 없을 텐데 자기는 교사를 기억해야 하느냐고 반문했다. 또 다른 학생은 자기에게 교사가 어떤 존재인지가 아니라 교사에게 자기가 어떤 존재였는지가 더 궁금하다고 했다.(98쪽) 이 책은 교실이라는 <정글>(1부), <교무실, 침묵의 공간>(2부), <성장 대신 무기력만 남은 학교>(3부)로 구성되어 있다. 소제목으로만 보아도 책의 내용이 대강 손에 잡히는 듯하지만, 우리 교육의 폐허를 진단한 기존의 다른 책과는 사뭇 다른 결이 느껴진다. 그 다른 결이란 앞에서 언급한 '어둡고 아픈 환부를 지루할 만큼 오랫동안 응시한 뒤에 찾아온 어떤 현상'과 무관하지 않을 것 같다.
책을 읽다가 덮고 싶은 충동이 들만큼의 크고 묵직한 아픔 뒤에 찾아온 평화 같다고나 할까? 물론 그 평화는 뭔가를 끝낸 이의 평화와는 거리가 멀다. 그보다는 이제야 비로소 출발점에 서 있는 자, 그럴 수 있는 용기를 얻은 자가 누릴 만한 평화라고 할 수 있겠다. 책의 말미에서 저자는 독자들에게 이렇게 권면한다.
'나는 이 글을 읽는 '가르치는 사람'들이 깊게 생각해보기를 바란다. 자신의 교직 인생에서 자신을 교사로 성장시킨 학생들이 과연 누구였는지를 말이다. 이 책에 나오는 교사들을 만나는 내내 내가 들었던 말이 그것이다. 그들은 전문계 고등학교에서 혹은 왕따가 된 학생이나 도무지 말을 듣지 않는 학생들을 만나면서, 한 편에서는 '멘붕'을 겪으며 자신의 경험과 언어의 한계와 부족함을 절감했다. 그들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 선배와 동료 사이에 지혜를 구하고 공부하면서 학생들을 '만나기' 위해 고군분투해 왔다. 그러는 과정에서 가르치는 이로서의 정체성을 세우고 성장해왔다고 그들은 말한다. 타자로서의 학생, 타자인 학생을 만나지 않고서는 교사로서 성장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301쪽) 가출했다가 보름 만에 돌아온 아이는 그 후 내게서 책 한 권을 빌려갔다. 느닷없이 읽을만한 책을 소개해달라고 한 것은 자신의 탄성을 유지하고 싶은 생각 때문이 아니었을까? 그때 내가 느낀 기쁨은 이런 것이었다. 타락하고 싶지 않는 사람은 이미 타락하지 않은 사람이라는 거. 그렇다. 타락은 마음을 놓아버린 자에게 나타나는 현상이다. 세상이 미쳐서 돌아갈수록, 아무것도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생각이 들수록, 우리는 책을 읽어야 한다. 정신을 굳건하게 붙잡고 있어야 한다. 방황에서 타락으로 가는 길은 생각보다도 가깝고 빠르기 때문이다.
나는 이 두 권의 책을 교사만이 아닌 학부모(시민)들도 꼭 읽어보길 권한다. 학교 현장에서 학생들의 영혼을 책임질 만한 올곧고 아름다운 교사들이 소진되고 고립되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학생들에게 돌아가기 때문이다.
다시 교육의 희망을 묻는다면
윤지형 지음,
교육공동체벗,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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ㄹ교사이자 시인으로 제자들의 생일때마다 써준 시들을 모아 첫 시집 '너의 이름을 부르는 것 만으로'를 출간하면서 작품활동 시작. 이후 '다시 졸고 있는 아이들에게' '세상 조촐한 것들이' '별에 쏘이다'를 펴냈고 교육에세이 '넌 아름다워, 누가 뭐라 말하든', '오늘 교단을 밟을 당신에게' '아들과 함께 하는 인생' 등을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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