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넷 아빠는 왜 '울보'가 됐을까요

[단식 투쟁 동행기②] 밀양 주민 상경 단식, 12시간 동행 취재

등록 2013.10.08 16:50수정 2013.10.08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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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대한문과 서울 시청 앞에서 7일째 단식 농성을 하는 이들이 있다. 밀양의 765KV 초고압 송전탑에 반대하는 밀양의 젊은 농부 김정회, 박은숙씨 부부와 밀양 765㎸ 송전탑 반대대책위 상임대표인 천주교 부산교구 조성제 신부. 지난 5일 토요일, 단식 4일째를 맞는 김정회씨 부부를 12시간 동행 취재했다. - 기자 말

 오후 1시 58분 대한문
오후 1시 58분 대한문빈진향

오후 1시 58분 대한문 앞에는 수문장 교대식이 한창이다. 무척 혼잡하다. 오전부터 자리를 지킨 김정회씨는 혼란한 틈 속에 있는 것이 아직도 적응이 안 된다(관련기사 : "대화하면 안 굶어도 되는데, 공권력만 투입").

덕수궁 매표소를 가려면 수문장 교대식 때문에 임시로 쳐놓은 울타리와 김정회씨 사이의 좁은 통로를 지나야 한다. 김정회씨와 쌍용차 분향소 앞을 가까스로 지나는 관광객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불편함 먼저 떠올릴까? 그러면 이 불편함이 누구 때문이라고 생각할까? 쓸모없는 화단을 경찰들이 에워싸고 24시간 지키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을까? 사방이 가로막혀 꼼짝할 수 없다. 수문장 교대식은 약 30분 정도 진행된다.

70대 초반 어르신 서너 분과 나눈 밀양 이야기

 오후 2시 13분
오후 2시 13분빈진향

 오후 3시 2분 시청앞
오후 3시 2분 시청앞빈진향

70대 초반으로 보이는 어르신 서너 분이 모여들어 잠시 이야기판이 벌어졌다. 어르신 한 분이 송전탑을 왜 반대하는지, 보상받으면 되는 거 아니냐고 따지듯 물었다. 일행 중 다른 분이 분위기가 격렬해지는 걸 걱정해서 그냥 가자고 막아서는데, 김정회씨가 "제가 지금 할 일이 없으니까, 답변을 드릴게요. 선생님과 제가 생각이 다르니 선생님도 제 말에 반박하세요. 이렇게 토론하면 좋은 거 아닙니까?"라며 붙잡았다.

"저희가 왜 반대하냐면 밀양 주민의 생명과 재산에 엄청난 피해가 납니다. 건강은 십년, 이십년 후에 나타나는 피해고, 당장에 재산권 행사가 안 됩니다. 땅을 천 평 가지고 있으면 평당 십만 원만 해도 1억 아닙니까, 그런데 1억이라는 재산이라도 살 사람이 없으면 재산이 아니지 않습니까? 송전탑 때문에 시세보다 낮게 내놔도 땅을 사겠다는 사람 없고 재산가치 없다고 농협에서 담보 대출도 안 해줍니다.

국민들은 몇 사람의 이권 관계 이런 걸로는 귀를 기울이지 않아요. 언론에서는 우리가 정당한 주장을 해도 실어주지 않습니다. 정부와 한전이 언론을 장악하고 있어서 한전 측 입장만 이야기합니다. 우리는 알리고 싶어도 알릴 방법이 없고 그러니 단식을 하는 겁니다. 이렇게라도 저희 말 좀 들어달라고요."


잠자코 듣고 있던 다른 어르신이 대화에 끼어들었다.

"제가 철탑 측량사에요. OO건설에서 27년 근무했거든. 다른 데는 다 세워졌다는데, 다른 데는 문제없는데, 왜 그래요, 밀양은?"
"다른 지역은 (송전탑이) 높은 산으로 가서 주민 피해가 없게 됐는데 밀양은 권력자의 땅이 있어서, 뭐가 어때서, 꼬불꼬불, (노선이 정해져) 동네 앞산, 뒷산, 심지어 면사무소 앞에까지 지나가게 되었습니다. 합리적으로 노선을 정하면, 대통령이 걸리든 누가 걸리든 원칙대로 하면 문제가 없지 않습니까?"


"철탑이 마을로 가면 안 되지. 근데 얼마나 가까워요?"
"우리 집에서 보면 (서울시청 신청사 입구에서 광장 맞은편 길 건너의 프라자 호텔을 가리키며) 저기 저 호텔 정도 느낌입니다."

처음 문제제기를 한 어르신과의 토론은 서로의 입장을 좁히지 못하고 끝났다.

"나도 고향이 경상도에요. 경상도 사람 멋있다고 자부하는 사람입니다. 재산 피해가 심하다…. 그래도 몇 사람의 이권 가지고 매스컴에서도 들어주지 않는 걸로 이러는 건…."

이 분의 말을 듣고 있으려니 '대승적으로 이해해달라'던 전 산업자원부 장관, 국무총리의 모습이 떠오른다. 보수 언론이 사람들을 학습시키는 것이 참 무섭게 느껴졌다.

"그니까 현장을 가 봐야 해. 이건 한전만 알어, 한전만."

자리를 떠나면서 철탑 기술자로 수십 년 일했다는 그 분이 남긴 말씀이 실제로는 어떤 의도였는지 모르겠지만, 내겐 의미심장하게 들렸다. 송전시설 경과지 선정에서부터 사업추진, 공사를 진행하는 데 관련한 모든 권력과 정보를 한전이 쥐고 있다. 피해 주민의 이해를 구하거나 합리적인 토론과 절차를 거치지 않고 무조건 밀어붙이면 된다는 한전의 고압적인 자세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3시 11분 시청앞
3시 11분 시청앞빈진향

김정회씨가 휴대폰 메시지를 보여준다. 청년포럼 문화재단에서 농활을 와서 그의 당근밭에서 당근을 거두고 있다며 즐거워한다. 지난 여름 부부가 당근밭에 잡초를 제거하느라 땡볕에 땀을 뻘뻘 흘리던 모습이 떠오른다.

 오후 3시 17분
오후 3시 17분빈진향

머리 위에서 이글거리는 태양, 파라솔 밑에 겨우 몸을 숨기고 있다. 나는 김정회씨 등 뒤의 그늘에서 햇볕을 피한다.

한 곳에 꼼짝 않고 있으려니 외부 자극에 예민해지는 건가, 가을 햇빛이 이렇게 무서운 줄 몰랐다. 그늘에서 벗어나 조금만 있어도 머리가 아프다. 세 끼 꼬박 챙겨 먹는 나도 이렇게 힘든데 며칠째 굶었고 앞으로 얼마나 더 견뎌야할지 모르는 이들, 괜찮을까?

대한문 앞으로 가는 길에 확인한 밀양 소식
(긴급) 126 김옥숙 할머니ㅡ여수동ㅡ혈압상승(200)으로119 후송(오후 3시 41분)

오후 4시 20분. 시청앞은 그늘이 별로 없고 한 곳에 계속 앉아 있는 게 지루해 잠시 대한문에 계신 조성제 신부님을 찾아가 이야기를 들었다. 그에게 밀양 송전탑 반대 투쟁과 단식에 동참하게 된 계기를 물었다.

"밀양 싸움에 실질적으로 결합하게 된 거는 만 2년, 이치우 할아버지 돌아가시면서 본격적으로 함께하게 되었죠. 지난 5월, 공사가 다시 시작되었을 때 이것은 한전과의 싸움이 아니라 정부와의 싸움이라고 느끼게 되었어요. 경찰이 말로는 중립이라고 하면서 주민들을 겁박하고 그러는 걸 보니 진짜 중립이 아니구나, 하는 걸 알았죠.

원래 단식이라는 게 목숨을 담보로 뉘우치고 회개하는 거에요. 지금 하는 공사, 한전이나 정부는 결국 탐욕 때문인데, 정당하지도 않고, 정부의 에너지 정책으로 볼 때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니고 합법하지도 않아요. 이런 구조에 대해서 우리 종교인들이 알게 모르게 방관해왔던 거에 대한 뉘우침. 탐욕으로부터 시작된 그 뒤에는 죽음의 문화, 죽음의 뿌리가 있기 때문에, 선의를 이렇게 모으면 그런 것도 한풀 꺾이지 않을까 하는 바람입니다."

 오후 4시 49분 대한문으로
오후 4시 49분 대한문으로빈진향

오후 8시까지 1인 시위를 이어가는데 이날은 대한문에서 5시부터 밀양 송전탑 공사 강행을 규탄하는 문화제를 한다고 해서 대한문으로 향한다.

'모이자, 밀양의 친구들' 문화제, 흥겨운 타악으로 문화제 시작

 오후 4시 21분 대한문
오후 4시 21분 대한문빈진향

 오후 5시 2분 대한문
오후 5시 2분 대한문빈진향

 오후 5시 대한문
오후 5시 대한문빈진향

 오후 5시 4분 대한문
오후 5시 4분 대한문빈진향

 오후 5시 4분
오후 5시 4분빈진향

문화제는 밝고 즐거운 분위기였다. 문화제에 참여한 사람들의 표정을 보니 조성제 신부님이 말씀하신 '선의'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우리는 외부세력이 아니다, 밀양의 친구들이다!

 오후 5시 17분 대한문
오후 5시 17분 대한문빈진향

백기완 선생님도 오셨다. 오후 5시 40분에 하승수 녹색당 공동위원장이 발언했다.

"송전선 문제는 아주 간단합니다. 우리나라는 바닷가 화력, 원자력 발전소를 많이 짓고 그걸 대도시로 보내기 때문에 송전탑이 많이 필요합니다. 서울에서 전기를 많이 쓰니까, 서울에서 전기를 생산하고 아껴쓴다면 밀양의 초고압 송전탑이 왜 필요하겠습니까? 서울의 전기 자급률이 3%입니다. 지금 서울시가 그걸 20%까지 늘린다고, 원전 하나 줄이기를 하고 있습니다.

원래 밀양의 송전선은 수도권으로 끌어오려고 계획을 세웠다가 그게 취소가 되었습니다. 그러면 그 단계에서 접었어야 하는데 막무가내로 추진을 하려니 이제는 대구, 경북 지역 때문이다, 하는데 대구는 전기소비 많이 안 늘어나는 지역입니다.

우리는 밀양 어르신들이 막아주는 걸 고맙게 생각해야 합니다. 신고리 원전 3호기 때문에 밀양 송전탑이 필요하다고 하는데 신고리 3호기는 제어 케이블이라고 하는 핵심부품이 문제가 되었습니다. 제어 케이블이라는 것은 원전에 사고가 위험이 있을 때 신호를 보내주는 핵심부품인데 요구하는 품질을 못 맞춰서 시험 성적서를 위조했습니다. 그 부품을 교체하려면 2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러면 내년 8월에 가동을 못하죠. 그런데 8월에 가동을 시작한다는 것은 불량부품을 사용한다는 이야기 아닙니까? 내년 8월에 그 원전 가동하면 우리는 원전 사고 위험으로 빠져드는 겁니다.

신고리 3호기는 처음 가동하는 새로운 모델입니다. 아랍에미리트에 수출했는데 (우리 자체 기술을) 못 믿겠다고 해서 우리나라에서 먼저 가동하기로 계약을 한 겁니다. 그래서 빨리 가동시켜야 한다는 게 정부 논리입니다. 그럼, 우리 국민은 사고 나도 됩니까? 위조부품 교체하려면 2년이 걸립니다. 토론할 시간 많습니다. 공사중단하고 TV 토론하자는 게 주민들의 요구입니다. 정말 정부가 우리를 설득할 수 있다면 받아들이겠다 합니다.

밀양 주민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밀양주민이 쓰는 전기 때문도 아닙니다. 대한민국이라는 국가가 대기업과 대도시에서 쓸 전기를 어떻게 생산하느냐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고 밀양 주민들에게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하는 겁니다."

 오후 6시 17분
오후 6시 17분빈진향

마지막 발언 순서는 김정회씨 부부다. 송전탑 반대 운동하면서 '울보'가 되었다는 김정회씨. 10월 2일 단식 첫날 기자 회견할 때 호소문을 읽을 때마다 '우리 어린 진서가…'에만 가면 감정이 북받치던 그. 발언하면서 밀양 소식을 전하며 눈물을 글썽이는 그를 보며 괜히 내가 조마조마했다.

"밀양의 할머니들을 도와주십시오!"

그의 외침이 두고두고 마음에 남는다.

 오후 7시 35분 서울역 광장
오후 7시 35분 서울역 광장빈진향

오후 7시 35분 국정원 규탄 촛불 집회가 서울역 광장에서 열린다고 하여 문화제가 끝나자마자 광장으로 왔다.

발언을 마치고 다시 택시를 타려고 길을 건너는 데 어디선가 들려오는 소리, "우리나라에는 떼법이라고 있습니다. 지금 밀양을 보십시오. 떼만 쓰면 되는 줄 알고…" 마침 밀양에 대한 이야기가 서울역 주변에 쩌렁쩌렁 울렸다.

그제야 우리가 택시를 탔을 때 서울역 집회 장소에 간다니까, 택시 기사가 서울역 광장인지, 맞은편인지 물은 이유를 알겠다. 서울역 근처의 다른 곳에서는 또 다른 사람들이 모여 집회를 벌이고 있는 모양이다.

앰프 성능이 얼마나 좋은지, 국정원을 규탄하는 집회에서 하는 발언은 들리지도 않고 북적거리는 도시의 소리를 다 삼키며 서울 하늘을 가득 채우는 듯했다. 조금 충격을 받은 듯, 얼이 빠진 사람처럼 박은숙씨가 말했다.

"이래서 서울 사람들은 우리가 막무가내로 떼쓴다고 하는가 봅니다."

 8시 17분 서울 광장
8시 17분 서울 광장빈진향

낮부터 시작된 하이서울 페스티벌의 공연은 이제 끝나가고 있었다. 부부가 천막으로 들어가고 나는 주변을 어슬렁거렸다. 천막 한쪽 끝에서는 전교조 해체 위기에 맞서 길거리로 나온 선생님들이 늦게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텐트 뒤로 달리는 차들을 보며 지난밤 자동차 소리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는 박은숙씨의 이야기를 떠올린다. 차 소리가 얼마나 크게, 가깝게 들리는지 마치 천막으로 돌진하는 것처럼 느껴졌단다. 길고 고단한 하루를 보낸 그들이 몸을 누인 광장 한켠의 초라한 비닐 천막을 보고 있으려니 가슴이 아렸다.

유기 농사를 짓는 그들의 농장은 얼마나 아름답고 평화로웠던가, 구불구불 산길을 올라 찾아간 산 좋고 공기 좋은 곳에 있는 그들의 황토집을, 자연 속에서 뛰어노는 아이들의 모습을 나는 얼마나 부러워했던가.

"여기 살면 애들 아토피는 걱정 없겠어요."

우리 둘째랑 동갑인 진서를 보며 이런 말을 했었고, 그녀는 내게 아토피에 좋은 친환경적인 처방을 말해주었다.


밀양의 젊은 농부 김정회·박은숙씨와 네 명의 아이들, 이 여섯 식구가 지금처럼 화목하고 아름답게 잘 살아가기를, 지난 여름 이들의 가족사진을 찍으며 나는 속으로 이런 바람을 가졌다.

지금 이 순간에도 나는 희망의 끈을 놓고 싶지 않다. 이들이 곧 자신의 집에서 발 뻗고 편히 잘 수 있기를…. 어머니, 아버지랑 함께 있고 싶다던 여섯 살 꼬마에게 더 큰 상처 남기지 않기를.
덧붙이는 글 이 글은 <딴지일보>에서 실릴 예정입니다.
#밀양 송전탑 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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