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릉도에서 만난 '괴력'의 남 과 여

[울릉도 독도③] 배 멀미도 그의 열정을 막지 못했다

등록 2013.10.08 15:03수정 2013.10.08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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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에 살고 있던 한국형 바다표범 '강치'. 일본사람들의 손에 멸종된 강치를 복원하고자 하는 '보고 싶다 강치야! 사랑본부' 회원 100여 명과 함께 7월 14일부터 2박 3일 동안 울릉도·독도를 여행했습니다. - 기자 말

 김지운 pd
김지운 pd이민선

"기사님 잠깐만 세워주세요."


허걱! 무척 갑작스럽고 당황스런 멘트였다. S자 모양의, 보기만 해도 숨이 턱턱 막히는 고갯길을 오르는 중이었다. 아무리 살펴봐도 차를 세울 만한 장소가 아니었다. '운전의 신'인 울릉도 출신 버스 기사도 당황스러운지 "좀 가파른 길인데 예"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허나, 노랑머리 아가씨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기사님, 제발요, 잠깐만 세워주세요. 나리분지 전경만 얼른 찍고 올게요."

차마 거절 할 수 없는 간절한 목소리였다. 버스는 곧 멈췄다. 노랑머리 아가씨는 꽤 무거워 보이는 동영상 카메라와 카메라 다리를 들고 날 듯이 가볍게 버스에서 뛰어 내렸다. 그 틈에 나도 마치 그 아가씨와 일행인 듯한 제스처를 취하며 카메라를 들고 버스에서 뛰어 내렸다.

동영상 카메라는 곧 나리 분지를 향해 다리를 벌리고 섰다. 카메라 렌즈를 쫓아 가니 나리분지가 한 눈에 들어왔다. 현실에 있는 모습이 아닌, 화가가 상상 속에 있는 곳을 그려 놓은 듯한, 그런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아름다웠다. 노랑머리 아가씨 목소리가 어째서 그토록 간절했는지 알 것 같았다. 이 기막힌 풍경을 차마 놓칠 수 없었던 것이다.

카메라를 들었다. 뷰파인더를 통해서 보는 나리분지는 신비로운 느낌까지 들었다. 셔터를 누를 때 쯤 갑자기 세찬 바람이 불어 왔다. 순간 몸이 휘청거렸다. '산이 저 곳을 인간에게 쉽게 허락하지 않으려는 것인가!'... '찰칵'하는 셔터 소리가 유난히 경쾌하게 들렸다.


"기자님 다 찍었어요? 저는 끝났는데..."

노랑머리 아가씨가 내 옆에 와 있었다. 손에는 동영상 카메라가 들려 있고, 어깨에는 카메라 다리가 얹혀 있었다.


"네 다 찍었어요. 김 PD님 덕분에 멋있는 풍경을 찍게 됐네요. 고마워요."

노랑머리 아가씨는 여행 시작부터 끝까지 이런 식이었다. 거침이 없었다. 촬영을 위해서라며 불구덩이라도 뛰어들 기세였다. 배 멀미도 그의 열정을 누르지 못했다. 모두 배 멀미를 참느라 안간힘을 쓰고 있는데, 노랑머리 아가씨만은 멀쩡했다. 카메라를 메고 배 안팎을 누비며 무언가를 촬영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노랑머리 아가씨 이름은 김지운, KBS <굿모닝 대한민국> 소속 프로듀서다. 난 그 아가씨에게 '괴력의 PD' 라는 별명을 붙여 주었다.

'긍정의 매니저' 유정환 본부장

 유정환 본부장
유정환 본부장유정환
괴력을 소유한 사람은 김지운 PD뿐만이 아니었다. '보고 싶다 강치야! 사랑본부' 유정환 본부장 또한 괴력의 소유자였다. 2박 3일간의 울릉도, 독도 여행과 관련된 모든 것이 그의 어깨에 얹혀 져 있었으니, 괴력을 발휘 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는 어딘가로 이동을 할 때마다 인원파악을 했고 일정을 설명했다. 인원이 100명이 넘었으니 그의 머릿속은 늘 숫자로 가득했을 것이다. 빡빡한 일정을 챙기는 것도, 변화무쌍한 울릉도 날씨를 체크하는 것도 그의 몫이었다. 덕분에 그의 휴대폰은 잠시도 쉴 틈이 없었다. 우리가 관광을 하고 있는 사이에도 그는 이리저리 뛰어 다니며 분주하게 무엇인가를 준비하고 있었다.

하루 일정을 모두 끝낸 후, 술꾼들과 술을 마셔주는 것도 그의 몫이었다. 접대 차원이었는지, 정말로 술을 좋아해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내 눈엔 그 모습 또한 '괴력'으로 비쳐졌다.

밤 10시가 넘어, 술 약한 내가 눈이 반쯤 감긴 채로 숙소로 향할 때까지 그는 사람들 틈에 끼어 술을 마시고 있었다. 놀라운 것은 다음 날 아침, 그 누구보다 더 팔팔 하다는 것이다. 아직 잠이 덜 깬 게슴츠레한 눈으로 식당에 가면 유정환 본부장은 잠기운이 말끔하게 가신 시원한 얼굴로 나를 맞이했다.

"아~나 어떡해요, 휴대폰을 두고 온 것 같아요."

김지운 PD가 발을 동동 굴렀다. 참으로 난감한 순간이었다. 여행 마지막 날, 육지로 떠나는 배가 출발하기 불과 30여분 전이었다. 휴대폰을 숙소인 00리조트 로비에 두고 왔으니 찾아 달라는 소리였다.

"걱정 마세요. 제가 찾아 줄게요."
"쫌 있으면 배가 출발 할 것 같은데...될까요?"
"그럼요. 안 되는 게 어딨어요. 저만 믿고 커피나 한 잔 마시고 계세요."

참으로 믿음직한 멘트였다. 이 말을 듣고는, 그제야 안심이 됐는지 김지운 PD는 당황스런 표정을 거둔 뒤, 본래의 환한 표정으로 되돌아갔다.

사실 "휴대폰을 잃어 버렸다"는 소리를 들으며, 행여 유 본부장이 짜증이라도 내면 어쩌나 하고 내심 걱정 하던 참이었다. 3일간의 여행으로 피곤은 몸 구석구석에 쌓여 있을게 분명했고, 선착장 곳곳에 흩어져 있는 일행들 인원을 파악하느라 유 본부장 눈이 바쁘게 돌아가던 중이었다.

유정환 본부장의 맹활약 덕에 휴대폰은 배가 떠나기 약 3분 전에 김지운 PD 손에 쥐어졌다. 이 모습을 숨 죽여 지켜 본 후, 난 유정환 본부장에게 '긍정의 매니저'라는 별명을 붙여 주었다.

이런 일 외에도 그가 한 일은 훨씬 더 많았을 것이다. 내 눈에 띈 그의 일이 이정도일 뿐이다. 내 눈이 미처 찾지 못한 그의 일은 내 상상을 초월할 지도 모른다. 배 멀미도, 여행 이 주는 노곤함도 미처 느낄 틈이 없을 정도로 분주했을 게 분명하다.

멀미에 지쳐 있던 공연단, '공연'...소리 듣고는 갑자기

 ▲ 왼쪽 부터 테너 임산, 소프라노 이은숙, 소프라노 김영림, 베이스 박태종
▲ 왼쪽 부터 테너 임산, 소프라노 이은숙, 소프라노 김영림, 베이스 박태종이민선

경북도립교향악단 소속 단원들과 성악가들이 순간적으로 변신하는 능력도 놀라웠다. 공연을 시작한다는 말이 떨어지자마자 눈에 생기가 돌았다. 불과 몇 분 전까지, 멀미에 지쳐 물 먹은 미역줄기처럼 축축 늘어져 있었다는 사실이 거짓말 같았다.

그날(7월15일), 독도 앞 선상공연이 펼쳐졌다. 당초 계획은 독도에 들어가서 공연을 하는 것이었지만 파도가 높아서 계획을 변경, 독도 앞 좁은 선상에서 공연을 하게 됐다.

지금 생각해 보아도 그날 선상에서 펼쳐진 공연은 참으로 장관이었다. 무대는 좁았지만 객석은 넓었다. 관객 또한 그 어느 공연보다 많았고. 푸르다 못해 검은 독도 앞 바다가 모두 객석 이었고, 셀 수 없이 많은 갈매기가 모두 관객이었다. 그 자리에 서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감동'이었다.

공연도 완벽했다. 2시간 동안 출렁거리는 파도에 조리질 당한 다음, 육지에 발 한 번 디디지 못한 채, 출렁거리는 배 위에서 한 공연이었지만, 악단과 가수 모두 집중력을 잃지 않았다. 매 멀미와 싸우느라 지쳐서, 환경이 너무 열악해서, 공연을 망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은, 공연이 시작되자마자 모두 날아갔다.

그날, '보고싶다 강치야'를 부르며 독도지킴이 활동을 하는 테너 임산과 그의 부인 소프라노 이은숙, 베이스 박태종과 소프라노 김영림 씨가, 경북도립교향악단 반주에 맞춰 '보고싶다 강치야', '희망의 나라로' 등의 노래를 불렀다.

'감동'은 시간을 뛰어 넘는다는 말은 사실이었다. 내 몸으로 느꼈으니 분명 사실일 게다. 그날의 감동은 지금도 '현재 진행형' 이다. 독도 앞에서 펼쳐진 선상공연은  감동적인 시간으로 내 기억 속에 뚜렷하다. 지금도.

* 다음 편에 계속

덧붙이는 글 1,2 편 관련기사로 넣어 주세요.
#울릉도 #독도 #강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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