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조 7380억 달러를 돌파한 미국 재정적자
political calculation2013
둘째로, 달러 패권에 심각한 균열을 가져왔다. 16조7000억 달러, 대략 1경7000조 원을 넘어버린 미국 재정적자는 그 천문학적인 규모 자체로 미국의 부채 상환 능력을 의심케 하고 있다. 게다가 전혀 회복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 미국의 경기현황도 대외 신인도 추락에 한몫 하고 있다. 미국 경기 현황이 좋지 않다보니 본격적인 '양적 완화' 출구전략의 시행 시기는 계속 늦춰지고 있다.
미국 달러를 대체하는 기축통화가 필요하다는 주장은 미국 연방정부 폐쇄사태를 계기로 한층 노골화되고 있다. 특히 중국은 관영 신화통신 논평을 통해 "탈미국화 개혁의 핵심으로 달러를 대체할 새로운 기축통화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달러 패권은 미국 내부에서도 균열되고 있다. 미 연방 내 13개 주 정부와 의회들이 "계속되는 달러 가치 하락과 연방준비제도이사회의 통화정책에 대한 불신"을 이유로 금과 은을 법정 화폐로 만들고자 하고 있다. 이른바 '금본위제'를 채택하는 것이다. <미주한국일보> 2012년 2월 4일 보도에 따르면, "게리 허버트 유타 주지사가 금과 은을 법정 화폐로 승인하는 '유타 안전 화폐법'에 서명해 통과시킨데 이어 미네소타·테네시·아이오와·사우스캐롤라이나·조지아 등 총 13개 주가 금본위제 추진에 가세하고 있다"고 한다.
이들 13개주의 '금본위제' 복귀 시도가 현실화될 가능성은 아직 낮다. 금값이 워낙 비싼데다, 주 정부가 보유하고 있는 금의 양도 충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 연방에 속한 50개 주 가운데 13개 주가 동일하게 달러 체제에서 탈피하려는 흐름을 보이고 있다는 점은 결코 가볍게 볼 문제는 아니다.
공화당 내 극우 정파인 '티파티' 소속 오린 해치(유타) 하원의원은 10월 5일 <워싱턴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행정부는 상환해야 할 곳과 아닌 곳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라며 실제로 "부분적인 디폴트"를 고려해야 한다는 주장을 내놓기도 했다. 사실 "부분적인 디폴트"는 쉽게 말해 '어떤 이에게는 빚을 갚고, 다른 이에게는 빚을 갚지 않겠다'는 것으로 말장난에 불과하다. 빚 갚는 우선순위를 규정할 법적 근거도 없거니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부분적인 디폴트'는 사실상 '전면 디폴트'를 염두에 둔 주장과 다를 것이 전혀 없다. 미국 연방 정부가 국가부도를 공식선언한다는 것은, 미국 스스로 달러 패권을 포기하겠다는 것과 같은 의미다. 이런 사실을 모를 리 없는 하원의원이 국가부도를 선언하자는 주장을 내놓았다는 사실은 충격적이다.
협상 전망은?지금까지의 협상 과정을 보면, 미국의 당면 대응은 어느 정도 윤곽이 드러나고 있다. 먼저 미국 독점자본의 이해관계를 충실하게 대변하고 있는 민주·공화 양당의 주류 정치인들은 보험업계와 제약업계·의료장비업계 등 일부 세력의 희생을 담보로 국가부도를 막고 미국의 패권을 유지하기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구체적으로, 미국 주류 정치권은 오바마 케어로 알려진 건강보험개혁을 예정대로 추진하면서 사회 안정에 힘쓰는 한편, 자동 삭감된 예산의 규모를 줄여서 국방예산을 일정하게 증액하는 효과를 내는 방향으로 타협을 시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같은 방안은 10월 13일(현지시각) <뉴욕타임즈>가 "상원 지도부간 협상의 쟁점은 연방 정부의 대규모 예산 자동 삭감, 이른바 '시퀘스터(sequester)' 축소 여부"라고 보도한 사실을 통해 추측해볼 수 있다.
물론 타협은 쉽지 않다. 희생을 강요당한 세력의 저항이 거세다. 공화당이 주도하는 하원은 연방정부가 국가부도에 이를 수 있다고 경고한 10월 17일을 이틀만 남겨놓은 시점에서도 '오바마케어 예산'을 삭감하고, '의료장비에 부과되는 세금'을 2년간 유예할 것을 계속 주장하고 있다. 이들의 이해관계를 적극 반영하고 있는 정치세력은 다름 아닌 공화당 내 극우 '티파티'다. '티파티'는 공화당 소속 하원의원 232명 중 45명을 차지하고 있으며, 석유화학과 정유, 종합상사 등을 망라한 거대 기업 코흐 인더스트리(Koch Industries) 등이 적극 후원하고 있다. 이 기업의 소유주인 코흐 형제는 각각 360억 달러의 재산을 보유하고 있는 미국 4위 거부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은 숱한 정치·경제·군사적 위기를 겪어왔지만, 현재의 위기는 일찍이 겪어보지 못했던 패권의 위기다. 패권국이 스스로 그 지위를 내려놓은 역사는 없다는 점에서, 미국의 향후 선택이 주목된다. 미국 입장에서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자신의 패권을 연장하는 것이 그들의 생리에 맞다.
미국 정치권이 타협에 성공한다 하더라도 재정위기가 해소된 것은 아니다. 미국의 패권이 담보되는 것도 아니다. 앞으로 미국이 선택할 수 있는 방향은 두 가지로 요약된다. 하나는 군사력을 확대하기 위해 재정적자를 더 늘리는 것, 또 다른 하나는 달러 신뢰 회복을 위해 재정적자를 감축하는 것이다. 어떤 경우든 미국의 선택은 결국 '자해'행위다. 첫 번째의 경우는 재정위기를 심화함으로써 달러 패권에 치명상을 준다. 두 번째 경우는 군사력 약화로 귀결된다. 어떤 경우든 미국의 선택은 패권 붕괴를 초래한다. 경착륙이냐, 연착륙이냐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